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수진 Jan 06. 2019

오페라하우스까지 같이 걸어줄래요?

이제 더 이상 떠남이 두렵지 않은 여행자가 보내는 세 번째 러브레터

@국립오페라하우스, 체코 프라하


매일 밤 12시, 이 길을 따라 꿈꾸던 시대로 갑니다

이건 제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의 이야기입니다. 


작가 지망생인 '길(오웬 웰슨)'은 약혼녀 '이네즈(레이첼 맥아담스)'와 함께 파리로 여행을 왔는데도 집필할 책에만 몰두합니다. '길'은 반복되는 싸움 끝에 홀로 파리의 밤거리로 나서게 되죠. 쓸쓸한 그의 앞에 홀연히 클래식 카 한 대가 나타나고, 그는 엉겁결에 그 차에 올라타게 됩니다. 놀랍게도 그 차가 향한 곳은 그가 동경하던 '마크 트웨인', '피카소' 등이 사는 1920년대의 파리였습니다. 


그저 길을 걷고 차를 탔을 뿐인데 내가 동경하던 그 시절로 넘어가게 된다니. 말 그대로 꿈같은 이야기죠. 영화 속 칠흑 같은 파리의 밤 하늘과 신문지로 무심히 싼 꽃다발을 안고 걷는 파리 여인의 뒷모습은 유럽을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제 마음을 설레게 했습니다. 울퉁불퉁한 돌길을 구르는 차바퀴의 마찰음까지 오롯이 마음에 새기고픈 제 인생 영화에요.


영화 속으로 걸어 들어가다

제가 가장 먼저 결정한 프라하의 여행지는 '프라하 국립 오페라 하우스'였습니다. 턱시도를 입은 남자와 숄더 리스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자연스레 팔짱을 끼고 오페라 하우스 계단을 오르는 사진이 제 마음을 흔들었기 때문입니다. 어찌나 설렜는지 햇빛이 강하다는 유럽의 여름에 맞춘 여행 가방을 싸면서도 오페라 하우스에서 입기 위한 긴 팔 재킷을 챙겼죠.


숨을 한 번 크게 들이 쉬고 오페라 하우스의 문을 엽니다. 높은 천장에 커다란 대리석 기둥, 1층 중앙부터 공연장으로 이어지는 넓은 계단. 다소 빛바랜 노란 전등은 마치 그 옛날 유럽의 하우스 같죠. 로비 한쪽에는 웨이터가 손님들의 글라스에 와인을 따라주고 있습니다. 여러 무리의 사람 속에 고등학교 때 읽은 첫 번째 영어 소설의 저자인 마크 트웨인이 섞여 있을 것만 같습니다.


세 시간여의 긴 공연이 끝나고 밖으로 나간 순간, 마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속 '길'이 된 기분에 휩싸였습니다. 내가 동경하던 영화 속 밤 거리에 뛰어 들어온 느낌. 어디선가 클래식 카 한대가 다가와 나에게 손을 흔들 것만 같은 기분.


나와 함께 걸어줄래요, 당신?

유럽의 밤하늘은 어쩜 이리도 아름다운가요. 짙은 군청색 브러시로 거침없이 바른 듯한 하늘에서 도무지 눈을 뗄 수가 없었어요. 색깔 자체는 눈이 시리도록 새파란데, 그 색이 자아내는 분위기가 따뜻한 탓에 뭐라 말할 수 없는 감정이 저를 뒤덮었습니다. 길을 따라서 있는 가로등 불빛을 따라 노란빛의 길이 생겨나는데, 그 길을 따라 걷고 또 걸었어요. 지금 이 시간과 감정을 오롯이 기억하고 싶어서요.


처음으로 혼자 여행 왔다는 사실이 사무치게 원망스러워졌습니다. 제가 본 광경과 이날의 온도, 얼굴을 스치던 공기의 질감을 함께 기억해줄 사람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이때 누군가 제 옆에 있었다면 울컥하고 손을 잡아버렸을지 모릅니다.


이 글을 읽고 있을 당신, 나랑 같이 오페라 하우스까지만 걸어줄래요? 

매일을 영화처럼 살고 싶은 몽상가 김수진 올림.

매거진의 이전글 출근길, 커피 한잔하셨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