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수진 Jan 05. 2019

출근길, 커피 한잔하셨나요?

이제 더 이상 떠남이 두렵지 않은 여행자가 보내는 두 번째 러브레터

@프라하성, 체코 프라하


대한민국 직장인 = 커피 사피엔스

직장인 여러분, 오늘 아침 출근길에 커피 한잔하셨나요? 점심 식사 후 오후를 견디기 위해 한 잔 더 드시지는 않았고요? 완료하지 못한 기획안 앞에 졸음이 쏟아지는 오후 4시, 야근을 피하기 위한 마지막 스퍼트를 내고자 텀블러에 세 번째 커피를 담은 건 당신뿐만은 아닐 겁니다. 우리나라 직장인들은 졸음을 쫓기 위해,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습관적으로 등 저마다의 이유 탓에 오늘도 커피를 들이켭니다. 커피 없이는 살 수 없는 인류라는 뜻의 '커피 사피엔스'라는 신조어가 생겨날 정도죠.


관세청과 커피 업계에 따르면 2017년 일 년간 우리나라 국민이 마신 커피는 265억 잔이라고 합니다. 1인당 연간 512잔을 마신 것으로 ‘커피 공화국’이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죠. 저도 퇴사 전까지는 적어도 하루 한 잔, 미팅이 많은 날에는 하루 석 잔까지 마셨으니 이 기록에 꽤 기여한 셈입니다. 


이쯤 되면 제가 커피를 좋아하는 게 아닐까 싶으시겠지만, 답은 절대 NO입니다. 저는 '커피를 마신다.', '커피를 즐긴다.'라기보다는 '커피를 몸에 때려 붓는다'라는 표현을 사용하곤 하죠. 매일 아침 어떻게든 내 몸을 사무실 책상 앞으로 갖다 놓기 위해 벤티 사이즈의 아메리카노를 숨 쉴 틈 없이 들이킵니다. 입으로 마신다기보다는 혈관에 카페인을 집어넣는 일에 가깝습니다. 매번 이렇게 커피를 마시니 맛과 향을 제대로 알 리가 없죠. 커피 원두가 어느 나라 것이든, 어떻게 블렌딩을 했든 상관없습니다. 내 잠을 깨워준다면, 그걸로 됐습니다.


이런 커피 맛도 모르는 여자가 프라하 여행을 통해 아이스 라테의 깊은 맛을 깨달았습니다.


프라하성 꼭대기에 위치한 스타벅스 이야기

프라하성 꼭대기에 위치한 스타벅스는 인생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존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하도 많은 관광객이 그곳에서 위험천만한 사진을 찍는 탓에 이제는 촬영이 금지됐지만, 아직도 많은 이들이 그곳을 방문합니다. 사실 전 사진에 큰 관심이 없을뿐더러 사람이 바글거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에 가지 않기로 마음먹었었습니다. 


이날 저는 아침 일찍부터 바쁘게 성 구석구석을 돌아다녔습니다. 정각마다 진행되는 근위병 교대식을 관람하고, 성 비투스 대성당에서 종교 미술의 극치인 스테인드글라스를 구경했습니다. 유럽 최초의 무도회장이었다던 건물도 들어갔다 왔죠. 어찌나 성이 넓은지. 알록달록한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던 황금소로까지 보고 나자 저와 동행은 녹초가 됐습니다. 프라하성이 이토록 아름다운데도 유럽의 여름 더위를 이겨낼 수가 없더라고요. 저희는 '지금 필요한 것은 카페인뿐!'이라 외치며 결국 스타벅스로 향했습니다.


눈으로 마신 스타벅스 아이스 라테 한 잔

역시나 스타벅스 앞은 프라하 전경을 배경으로 사진을 남기는 관광객들로 가득했습니다. 그곳에 잠시 서서 밖을 볼 여력조차 없었던 저희는 경주마처럼 스타벅스 안으로 직진했죠. 그리고 외쳤습니다. 아이스 라테 빅 사이즈, 원! 헉헉대며 테이블에 앉아 마치 서울의 김 대리(필자)처럼 커피를 쭉 들이켰습니다. 한참을 마시다 보니 목마름도 가시고 정신이 들더라고요. 역시 카페인이야 감탄하며 고개를 드는데 코앞에 이처럼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이곳에서 그리도 커피를 싫어했던 저는 아이스 라테 한 잔을 추가 주문했습니다. 그리고 동행들에게 고백했죠. 


"나 사실 아이스 라테를 좋아하나봐."


참 우스운 일입니다. 당시에는 유럽의 우유가 맛있는 거다, 그저 목마른 것뿐이라며 동행들과 한참을 이야기했는데, 지금 보니 이 풍경에 취했던 것 같습니다. 그저 값싼 커피 한 잔을 시켰을 뿐인데 이처럼 아름다운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니, 체코인들은 참 행운아들입니다.



내 눈을 가리는 일상이란 굴레에 대하여

라떼 두 잔으로 마음과 배를 채우고 스트라호프 수도원으로 이동하는 길,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간 저는 제 일상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사소한 즐거움들을 '지치는 일상'이라는 큰 카테고리 안에 욱여넣고 무조건 싫어해왔던 건 아니었을까요? 돌이켜보자면 회사 점심시간에 근처 스타벅스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는 것이 꿈이었던 취업 준비생 시절도 있었는데 말이죠.


여행을 마치고 서울에 돌아가면 이렇게 내가 놓치고 있었을 일상의 또 다른 즐거움을 찾아보기로 결심했습니다. 이제는 눈 감고도 반복할 수 있는 매일이지만 매 분 매 초를 샅샅이 뒤지다 보면 하나쯤은 찾게 되지 않을까요? 어릴 적부터 숨은 그림 찾기에 꽤나 재능을 보였던 저는 더욱 잘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또한 일상 속 숨겨진 즐거움을 발견하길 바라며,

똑같은 하루도 다르게 사는 일상 여행자가 되고픈 김수진 올림.

매거진의 이전글 안녕하세요. 여행자 김수진입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