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8시 30분. 마감시간 30분 전. 혜린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어 입구 쪽을 바라본다.
'오늘은...'
부우웅. 계산대 옆 핸드폰의 울음소리. 시답잖은 광고 문자다. 혜린이 다시 고개를 돌려 입구 쪽을 바라봤을 때 엘리베이터에서 울트라맨의 눈 모양을 닮은 흰색 선글라스와 카키색 야상을 입은 남자가 내리는 것이 보였다. 그는 곧장 최단거리를 이용해 가게 쪽으로 걸어왔다.
'딸랑'
문에 걸린 출입 종이 혜린보다 먼저 남자에게 인사를 건넨다.
'오늘도.'
혜린은 남자가 항상 앉는 창가 자리 쪽으로 메뉴판과 물병을 가져다주었다. 남자는 언제나 메뉴판을 그렇듯 만지지도 펼치지도 않는다. 남자는 혜린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주문한다. 짙은 선글라스에 가려져 남자의 눈은 보이지 않지만 혜린의 얼굴을 뚫어질 듯이 바라보는 남자의 얼굴은 조금 부담스럽다.
"연어덮밥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아 저기요."
"네?"
"오늘은 곱빼기로 주세요."
남자가 처음 가게에 방문한 건 벌써 한달 전. 그 이후로 매일 저녁 혜린의 가게를 찾는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메뉴. 일요일에는 영업을 하지 않으니까 최소한 연어덮밥 24그릇을 연속해서 저녁으로 먹는 것이다. 그는 항상 식사가 끝나면 카운터로 와서 계산하지 않고 자신이 먹은 자리에 현금을 올려두고 말없이 사라진다. 혜린은 그가 처음 가게에 왔을 때를 떠올려봤다. 오늘처럼 가게에 들어와 메뉴판을 보지도 않고 연어덮밥을 주문했다. 아마 식당 이름이 '연어 식당'이라 연어덮밥이 당연히 메뉴에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남자의 행동은 거의 일정하다. 주문할 때는 혜린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음식을 기다리며 멍하니 정면을 응시한다. 식사가 끝나면 돈을 올려놓고 퇴장한다. 조금 음침해 보이지만 진상 부리지 않는 깔끔한 고객이다.
오늘 사장님은 급한 볼일이 생겼다며 혜린에게 마무리를 부탁하고 일찍 퇴근했다. 하루 종일 홀 서빙과 주방일을 함께하느라 혜린의 체력은 거의 바닥을 치는 중이었다.
'그래도 저 손님이 마지막이니까.'
신기하게도 연어 덮밥남이 가게에 들어오면 그 후엔 손님이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우연일지도 모르지만, 24일 연속으로 마감 언저리에 손님이 없었던 적은 없었다. 최소한 음식을 포장해가는 손님이라도 있었다. 혜린은 단순한 우연이라 단정 지었다. 연어 덮밥남은 혜린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그녀가 일하는 오픈 주방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하얀 선글라스 뒤 그 남자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상상하니 왠지 찝찝하다.
‘변태 사이코는 아니겠지...? 갑자기 칼을 꺼낸다거나...'
혜린은 남자가 빨리 먹고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일부러 연어를 더 많이 썰어 밥 위에 올렸다.
"맛있게 드세요."
혜린은 장국과 덮밥을 남자의 식탁 위에 조심히 내려놓았다. 잠시 덮밥을 바라보던 남자가 혜린을 쳐다본다.
"저기요. 이게 곱빼기가 맞습니까?"
"네?"
남자의 질문에 혜린은 괜히 긴장했다. 남자는 덮밥 그릇을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혜린은 가게의 입구를 쳐다봤지만 가게로 들어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저기요. 이게 곱빼기가 맞습니까?"
남자는 같은 톤으로 같은 질문을 혜린에게 다시 던졌다.
"네. 곱빼기 맞아요 손님. 자주 오셔서 양을 좀 더 드렸어요."
혜린은 최대한 밟은 표정으로 남자에게 설명했다. 연어 덮밥남의 입꼬리가 심하게 위로 올라갔다.
"크크크크크."
연어 덮밥남은 괴상하게 웃으며 밥을 떠먹기 시작했다.
"맛... 맛있게 드세요."
혜린은 카운터에 놓여있던 핸드폰을 집어 들고 재빨리 주방으로 뛰어들어갔다.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한다.
'뭐야... 침착해... 그냥 특이한 사람이야... 아무 일 없어...'
혜린은 남자의 행동을 예의 주시하며 가게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사는 사장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사장님 가게로 빨리 와주세요. 제발요. 무서워요.'
혜린은 냉장고에서 얼음 몇 개를 꺼내 입에 넣은 뒤 물을 들이부었다. 그때 가게 쪽으로 남색 정장을 입은 남자 한 명이 걸어 오는게 보였다. 혜린은 조금은 안심하는 마음으로 주방에서 나왔다.
"어서 오세..."
정장을 입은 남자가 가게로 들어오는데 종소리가 나지 않는다. 남자는 들어오자마자 가게의 문을 먼저 잠근다. 정장남이 혜린에게 다가온다. 가까이서 보니 정장남의 눈은 사람의 눈이 아니다. 유난히 길고 하얀 얼굴에 생선의 눈알이 붙어있다.
"까악!!"
혜린은 소리를 질러 버렸다. 정장남은 표정의 변화 없이 혜린을 바라보며 말한다.
"가게 불 좀 꺼주세요. 도련님 테이블만 제외하고."
"야야. 괜찮다."
정장남은 혜린에게 고개를 까닥였다. 불을 끄라는 신호임이 확실했다. 혜린은 재빨리 모든 불을 껐다. 연어 덮밥남의 식탁만 제외하고.
"고맙습니다."
정장남은 연어 덮밥남이 식사하는 자리의 뒤쪽 테이블로 등을 마주하고 앉았다. 연어 덮밥남이 마지막 밥 한 숟가락을 입에 집어넣고 삼켰다.
"잘 해결했니?"
"이제 돌아오셔도 된답니다 도련님."
"알겠다. 오늘 바로 돌아가자."
연어 덮밥남이 선글라스를 벗었다. 그 역시 동그란 생선 눈알이 얼굴에 붙어있었다.
"아가씨."
연어 덮밥남이 한 손에 사시미 칼을 들고 있는 혜린을 불렀다.
"그동안 신세 많이 졌습니다. 우리 참치 제국이 연어 놈들의 습격 때문에 잠시 인간 세계에 몸을 숨기는 중이었는데, 아가씨의 음식 덕분에 정체를 들키지 않고 이제 다시 돌아갈 수 있습니다."
혜린은 남자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머릿속에는 인간의 형상을 한 생선이 입을 뻐끔거리는 이미지뿐이다. 그때 정장을 입은 남자가 혜린에게 다가왔다. 혜린은 소리를 지르며 본능적으로 사시미 칼을 세게 움켜쥐었다. 그의 손이 순식간에 움직였고 혜린은 사시미 칼을 빼앗겼다. 남자가 가까이 서있으니 생선 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혜린은 울기 시작했다.
'죽기 싫다...'
정장을 입은 남자가 사시미 칼을 바닥에 던지며 말했다.
"수조 좀 빌립시다."
혜린은 눈을 감은 채로 가게 구석에 위치한 수조를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정장을 입은 남자는 주방을 나와 연어 덮밥남 뒤에 섰다. 연어 덮밥남이 울고 있는 혜린을 보며 말한다.
"아가씨. 놀라게 해서 미안합니다. 식탁 위에 선물하나 놓고 갑니다."
말을 끝내자마자 연어 덮밥남과 정장남은 작은 수조를 향해 몸을 날린다. 물 한 방울 튀지 않고 그들은 물속으로 사라졌다. 혜린은 감았던 눈을 뜬다. 땅에 떨어진 사시미 칼도 그대로, 식탁 위의 그릇도 그대로다. 혜린은 연어 덮밥남이 말한 '선물'이 궁금했다. 식탁 위에 하얀색 박스가 놓여 있다.
'뭐지?'
참치 제국 도련님이 혜린을 위해 놓고 간 선물은 최신형 아이폰 XS MAX 스페이스 그레이 컬러 512gb 모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