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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환 에세이)유니클로의 방식

신발해서 우째 살라고 7회 - 유니클로 시스템

한국은 신발 생산 수출국으로서의 경쟁력이 점점 약화되고 있었다. 그러나 일본으로부터의 주문은 계속 늘어갔는데 소량 다품종과 품질 지향이라는 특징을 가진 일본 소비자들에 맞게 기획해서 샘플을 만들어 제공했고 생산 공장도 소량 다품종의 주문을 깔끔하게 소화할 수 있도록 전문화하면서 수준을 높여갔다.


그러던 중 동갑이라 편히 친하게 지내던 후쿠오카 지사의 E군으로부터 재미있는 제안이 왔다. “규슈 지역을 중심으로 의류 수입 판매를 하는 회사가 있는데 사장이 신발에도 관심이 많아 수입처를 찾고 있다. 캐주얼 의류와 매치시킬 수 있는 제품들을 제안하고 제대로 공급할 수 있으면 단기간에 매출을 크게 늘릴 수 있을 것 같다.”라는 것이었다. E군이 추가로 소개한 내용은 그 회사의 매장이 현재 약 100군데 정도인데 영업이 너무 잘되어 매년 매출이 2배씩 늘어가고 있고 매장을 곧 전국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라는 것이었다.


E군이 소개한 회사의 브랜드가 지금의 ‘유니클로’다. 회사명은 패스트리테일링이었고 당시는 상품의 카테고리를 두개로 나눠서 ‘Rock&Roll Cafe’와 ‘Unique Clothing Warehouse’(후에 ‘UNIQLO’로 개명)의 2가지 브랜드명으로 영업 중이었다.


이 회사를 소개받고 규슈에 있던 매장 몇 군데를 방문해서 봤는데 기존 일본의 매장들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운영하는 것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첫 번째, 회사명에서 보듯 상품의 기획, 생산, 판매를 한 회사가 다하여 모든 프로세스가 엄청나게 빠르게 진행되는 것이었다. 지금은 일반적인 용어가 된 ‘SPA 시스템’이었다. 시장의 수요를 파악한 후 제품이 매장에 진열되기까지 경쟁할 수 없을 정도의 압도적인 스피드였다. 철저하게 분업화되어 있는 일본의 상거래 관행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형태였다.


두 번째, 소비자 가격은 수입 원가의 2배로 정해져 있었다. 당시 일본의 소매가는 수입상 도매상이나 지역 도매상 등을 통해 형성되는 모든 비용을 다 포함하여 정해지는 구조인데, 보통 수입원가의 4,5배를 곱한 가격이었다. 그런데 직접 기획개발, 수입, 판매라는 ONE STOP 시스템이다 보니 수입원가의 2배라는 가격구조가 가능했고, 그러다 보니 저렴한 가격으로 인해 판매량도 절대적으로 늘어가는 선순환을 만들고 있었다.


세 번째, 매장에는 상품 외는 특별한 인테리어가 없었다. 약 165㎡(50평)의 매장에 그저 상품들만 빽빽하게 진열되게 했다. 굳이 표현하면 펑키 한 인테리어 컨셉이라고 할까? 지금도 ‘유니클로’ 매장이 인테리어 보다는 상품을 진열, 적재하는데 집중되어 있는데 당시의 매장은 상품 자체가 인테리어인 컨셉이었다. 그러다 보니 매장에 투입되는 자금을 최소화해서 추가로 매장을 확장시키기가 용이하게 되었다.


네 번째, ‘유니클로’의 상품운용 방식은 당시로서는 매우 특이하다는 것이었다. 신상품은 거의 일주일 단위로 입고되어 새롭게 진열이 되었고 기존 상품 중 판매가 부진한 것은 강제로 철수시켜 신상품에게 공간을 내주어야 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매주 새로운 상품을 경험하게 되고 그것도 1,2주면 다 팔려 살 수가 없다는 인식을 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자연히 매장을 방문하는 고객은 늘게 되고 구매로 전환되는 비율도 늘고, 선순환 구조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야말로 인산인해인 매장에서 고객들을 파악하고 상품들을 분석해서 몇 가지 신발 샘플을 제안해보았다. 예상대로 순조롭게 첫 오더를 받아 납품을 하였고 이후부터는 점점 발주가 늘어나 어느덧 주력 바이어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일본의 미쓰비시상사가 개입되면서 SK와의 거래가 중단됐고 업무를 담당하던 E군도 퇴사하면서 ‘유니클로’와는 아쉬운 작별을 하게 되었다.


1992년 말 SK를 퇴직할 무렵 E군으로부터 다시 연락이 왔다. E군은 SK 후쿠오카 지사를 그만두고 ‘유니클로’에 입사해 구매업무를 맡고 있었다. 내가 SK를 그만둔다는 얘기를 듣고 ‘유니클로’에 신발공급을 요청하였다.


ABC-MART와 거래하기로 결정한 상황(물론 ABC-MART와 독점계약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에서 제안은 고마웠지만, 수락하기에는 도의적으로 용납이 되지 않아 정중히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 후에 SK를 나와 신발 수출 무역회사를 차리고 1년여 후 SK에서 같이 근무하던 C씨를 회사 본부장으로 영입했었고 2년 후 C씨가 본인의 사업을 할 수 있도록 ‘유니클로’를 소개하여 신발을 납품할 수 있게 했다. 그때가 ‘유니클로’와의 인연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는데 2013년 다시 야나이 회장을 만나게 되었다.


신발 사업을 하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사업적 영감을 받았지만 그 중에서도 ‘유니클로’의 운영방식은 특별한 영감을 주었다. ‘유니클로’의 경영 방식과 상품 운영의 노하우는 초창기 ABC-MART코리아에 고스란히 접목하였다. 


1962년 부산에서 출생한 안영환 대표이사는 30년 넘게 신발업계에 몸담은 신발전문 경영인이다. 1988년 ㈜선경(현 SK네트웍스) 신발사업부에 입사, 평사원을 거쳐 2002년 국내 신발멀티숍의 새 지평을 열었던 에이비씨마트코리아를 창업했다. 2011년 3월까지 에이비씨마트코리아 대표이사를 지내고 2016년부터 현재까지 슈마커그룹(SMK T&I, JD스포츠코리아)의 대표이사로 재직 중에 있다. (안영환 대표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younghwan.ahn.94)


원 기사 : 미디어패션쇼(www.fashow.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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