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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주 Aug 16. 2023

하늘바다 행복편지

기막힌 우연


                                              
 



1999년 봄이었다. 군종병으로 전역을 앞둔 나에게, 어느 일요일 아침 군종 신부님의 급한 호출이 있었다. 
  
 "레오가 이상하다…."
  
  레오는 '동물의 왕 레오'라는 일본 만화의 백사자의 이름을 딴 유기견의 이름이었다. 성당에서 키우는 개라고들 불렀지만 사실 출신이 불분명하고 포병대대 병사가 취사반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는 걸 잡아다가 성당에 맡겨 둔 개였다. 레오가 어디서 얼마나 어떻게 거기로 오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병사들은 레오가 초코파이를 좋아하기 때문에 북한에서 남파된 개일지 모른다고 추정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돌보는 내가 이리 오라고 손짓을 해도 녀석은 '내가 언제 니들이 주는 밥 먹고 살았냐?'는 눈빛으로 외면하는 게 그의 매력이라면 매력이었다.  

 하지만 호출이 온 이 날은 달랐다. 성당 성가대도 아닌 녀석이 주일 아침부터 마당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노래’라기보다는 ‘하소연’에 가깝다는 말이 맞겠다.
 수놈이 출산을 할 리도 만무하고 왜 저렇게 울어대나 유심히 보니, 녀석의 응가가 엉덩이 쪽 긴 털에 뭉쳐서 변비를 유발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주일 미사는 가까워 오는데 레오는 아파서 죽겠다고 하지, 이때 당신의 해결사 군종병이 나서야만 했다. 아자~~!
  일단 주방에서 위생 비닐장갑을 꺼내 양손바닥에 안착시킨 후, 수술칼보다 예리한 주방 가위를 들고 녀석에게 다가갔다. 이발이라고 불러야 할지 의료행위라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날따라 일찍 성당에 온 병사를 불러 모종의 구조 작업을 실시하였다.
 사람 관장도 해 본 일이 없는데 개 관장부터 하다니! 먼저 병사에게 레오를 움직이지 않게 꽉 잡고 있게 하고, 내가 뭉쳐 있는 응가 덩어리를 가위로 잘라내어 세척을 실시했더니, 레오는 금세 자신이 언제 울었냐는 듯이 지 밥그릇에 머리를 박고 급속도로 흡입하기 시작하였다.  
  그날로부터 약 12년이 흘렀다. 여전히 나는 강원도에서 군복을 입고 전역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에는 군종병이 아닌 군종신부였다. 아무 문제없이 너무도 평온했던 어느 날. 이번에는 군종병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왔다.  
  
 "신부님, 박 사장이 이상합니다."
 "엉? 박 사장?!"
  
 박 사장은 성당 마당에서 키우는 검은 개의 이름이다. 좀 늙긴 했지만 병사들이 주는 초코파이를 간식으로 먹으면서 무럭무럭 잘 크고 있었는데 '왜 전역을 앞두고 하필 이러나' 싶었다. 일단 군종병에게 위생장갑을 끼고 관장을 해보라고 했지만, 박 사장 엉덩이에는 레오처럼 긴 털이 없어 응가로 막히지는 않았다고 전했다. 며칠 전 먹은 돼지 족발이 박 사장의 배에서 횡포를 부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틀 동안 응가 자세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으니 수술이라도 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고 내심 걱정이 되었다. 이렇게 전설의 관장 해결사가 다시 귀환해야 하는가.
 차분한 얼굴로 박 사장에게 접근하여 꼬리를 들춘다. 녀석은 얼마나 힘이 좋은지 군종병 둘이 잡고 있어도 흔드는 엉덩이를 멈추게 할 수 없었다. 가까스로 호리병 모양의 사람이 쓰는 관장약을 꽂아 보지만 ‘으악~~!’ 그 순간 내 손에 묻고 난리가 아니었다. 
 좋다! 세월이 좋아졌으니 가위나 관장약 따위로 되지 않는다면, 자매들에게 좋다는 '아락실'을 먹이도록 하자. 한약 맛을 거부할 수도 있으니 튀김만두 속에 넣어 녀석에게 두 봉이나 먹였다.  그러나 숲 속에 울리는 박 사장의 신음소리는 그 후로도 멈추지 않았다. 병원에 가기 전에 방법은 이제 하나였다.  이것까지는 쓰지 않으려고 했는데 마지막이다! 너무 맛있어서 혼자서는 병사도 먹어 보기 힘들다는 '요플레 200g'짜리를 사서 한 통 전체를 먹여 보았다. 
  
 ‘ 역시 요플레! ‘
  
 현장을 목격한 군종병의 말에 따르면, 박 사장은 응가를 한 대아 쏟아 내고  바로 개밥을 삽시간에 흡입했다고 한다. 또다시 12년 후 요플레가 필요할지는 모르지만, 더 이상 이런 기적은 체험하고 싶지 않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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