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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혜 Aug 01. 2019

점심은 혼자 먹고 싶어요

혼자 점심을 먹을 자유

방송일을 할 때에는 작가팀이 거의 함께 밥을 먹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식사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고민하진 않았다.

더구나 원하지 않아도 함께 점심을 먹었던 건 회사의 법인카드로 식사를 결제해야 했기 때문이다.     


회사에 입사 후 점심을 어떻게 해결할까를 고민하다가 인사팀 직원들과 함께

밥을 먹었는데 그 자리에는 나의 상사도 있었다.

그런데 우리 팀의 몇몇이 도시락을 싸오거나 편의점 도시락을 각자의 자리에서 먹는 것을 발견했다.

그렇지 않아도 정해진 점심 금액이 없기 때문에 함께 먹으면 7~8천 원, 거기에 커피까지 먹으면 1만 원 이상의

사비를 매일 지출해야 하는 게 부담스러웠던 나는 잘됐다 싶어서 도시락을 싸가지고 와 자리에서 먹기 시작했다.


귀에 이어폰을 꼽고 그동안 못 봤던 예능을 보면서 점심을 먹는 그 시간이

오로지 나를 위한 시간 같아 너무 행복했다.     


그런 나에게 태클을 건 사람은 어김없이 나의 상사였다.

내가 언젠가부터 자기와 함께 밥을 먹으러 가지 않자 나에게 왜 같이 밥을 안 먹느냐고

왜 도시락을 싸오냐고 물었다.

나는 점심 값이 부담되고 도시락을 싸오면 아낄 수 있어서라고 말했더니 그 상사는

“그래?”하고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밥을 먹으러 갔다.

    

그 이후로 점심시간마다 전자레인지에 준비해 온 도시락을 돌리는 나를 보며 떨떠름한 표정과 말투로

다른 팀원들을 데리고 밥을 먹으러 가곤 했다.

정말 눈치 보여서 원..

내가 내 도시락을 먹으면서 이렇게 눈치를 봐야 할 일인가.

회사 규정에는 점심 도시락을 싸오면 안 된다는 말은 없었는데.  


나의 상사는 팀원을 가족같이 생각해서 모든 다 함께 하기를 원한다.

밥도 같이 술도 같이 그냥 다 같이.


워크숍을 갔을 때 회사로 돌아오는 차량이 상사의 차량으로 배정이 됐는데

함께 조를 이루며 강의를 듣던 다른 팀 이사님이 우리 동네를 지나간다고 태워주시겠다고 했다.

나는 너무 당연히 그리고 흔쾌히 이사님께 신세를 지기로 했다.

그리고 집에 돌아가는 시간,

회사 단톡 방에 나의 차량 배차가 달라졌음을 알렸고 이사님과 함께 먼저 집에 가게 됐는데

이사님 차로 가면서 나의 상사에게 먼저 들어가 보겠다고 면전에다 정확하게 얘기했지만

나의 상사는 그런 내 말을 무시했다.

내가 자기 차에 타지 않아서 삐진 거였다.  이건 삐진 게 아니라면 설명이 안 되는 그런 표정이었다.     


그 정도로 팀원의 동료애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의 상사는  

내가 자기와 무언가 함께하지 않는다는 것에 불만이 많은 것 같다.

면담 때도 나에게 “우리 남자들은 사이가 너무 좋다”라고 말했다.

그러니 너도 좀 껴서 사이좋게 지내라는 뜻 같았다.

그러나 전에도 말했듯 나는 우리 팀원들과 사이가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     

일에 문제가 없으며 일적인 소통에도 문제가 없다.

그거면 된 것 아닌가? 회사에 일하러 왔지, 친구 만들러 온 것도 아닌데

서로 일하는데 문제없으면 충분한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드는 내가 이상한걸까?


나는 내 일을 열심히 하고 있으며 이 회사에서 특별히 사이가 나쁜 사람도 없는데

내가 자기랑 놀아주지 않는다고 이렇게 징징대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쯤되니 도대체 나한테 왜 그러는 건지 궁금해진다.

나는 혼자서도 알아서 잘하고 있으니 그냥 내버려두면 좋을텐데.


물론 팀원이 자신의 말에 따라오지 않는 답답함은 이해한다.

그러나 일적인 부분에서 문제가 생긴 것도 아닌데 사적인 부분에서 그런 것들을 요구한다면

나는 들어줄 의향이 없다. 

그걸 누구보다 상사 본인이 제일 잘 알고 있면서

자꾸 나에게 업무외적인 것들을 강요하려 하고 요구하려 하고 기대하려 하는지 모르겠다.


모든 회사원들이 원해서 팀이나 선후배 혹은 동료들과 함께 점심을 먹는게 아닌 란 건 잘 안다.

그게 사회생활이고 그러면서 얻는 것들도 있다는 것도 잘 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다른 직원이 혼자 점심을 먹었을 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면서

왜 그렇게 내게만 점심문제를 걸고 넘어지냐는 것이다.


결국 나는 이 한 사람과 친해지지 않기 위해 회사 사람들과 사적인 친분을 유지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다 태운 꼴이다.      


팀원을 액세서리처럼 달고 다니며 가오 잡고 싶은 마음은 이해한다. (이해는 안 가지만)

우리팀 이렇게 화목해~ 부럽지? 라고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 잘 안다. 

그렇게함으로 자신이 얼마나 괜찮은 상사인지,

얼마나 팀원을 잘 이끄는 사람인지 내세우고 싶은 것 역시 너무나 잘 알고있다.


그러나 나는 점심을 혼자 먹을 자유와 권리가 있다.

또 점심을 함께 먹고 싶은 사람과 먹을 자유와 권리도 있다.     


나의 상사여.

나와 점심을 함께 먹고 싶다면 매일 나에게 점심을 사주기를 바란다.

(그렇지만 그래도 함께 먹고 싶지 않다.)     


직장인들이 직장 내에서 온전히 혼자가 될 수 있는 자유.

잠시 넥타이를 풀고 긴장을 늦추고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점심시간.

그 황금 같은 소중한 시간을 상사라는 이유로 방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니까 거, 점심 좀 혼자 먹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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