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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혜 Dec 08. 2019

이제 당분간 파리에 살아요

프롤로그

언제쯤 이 긴 터널이 끝이 날까.

내가 그곳에 간다면 이 긴 터널의 끝을 만날 수 있을까.


꽤 긴 시간이었다.

처음 파리를 여행한 후 내내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현실적인 문제들이 늘 발목을 잡아

나는 매년 짝사랑하듯 파리를 여행하곤 했다.


그러다 '파리에 가야겠다'라고 결심한 건 올해 초부터 이어져 오던 나름의 악재였다.

유독 힘들었던 일들, 특히 일하면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 때문에 기준치 이상의 스트레스를 받았고

트라우마가 생길 것 같아 다시 정신과 상담을 받아야 할까 생각하던 차였다.


그러나 늘 그렇듯 내게 정신과 상담보다 더욱 특효인 건 여행이니까


어쩌면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더 이상 내가 사랑하는 이 일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견디기 힘들었던 관계들 속에 지쳤던 때 나는 오랫동안 해왔던 고민을 끝내기로 결심했다.


파리에 대한 나의 짝사랑도 끝내고 싶었다.

파리에 질리고 질려서 다시는 쳐다도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했다.

그래야 이 그리움도 끝날 것 같았으니까.


처음 파리에 가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던 몇 년 전부터 염두에 두던 유학원에 연락을 했고

기간이 얼마 남지 않는 여권을 새로 발급받기 위해 십 년 만에 여권 사진을 찍고

아등바등 모아 왔던 적금을 하나씩 깨며 비자 발급을 위한 준비를 했다.


아주 순조롭게, 너무 순조로워서 불안할 만큼 순조롭게 비자가 진행이 되고

가을의 어느 주말, 나의 새 여권에는 그토록 바라 왔던 프랑스 비자가 꽝 찍혀 내 품으로 들어왔다.


본격적인 출국 준비를 하며 여행이 아닌 살러 간다는 사실이 부담이 됐는지

며칠 동안은 악몽을 꾸다 비명을 지르며 깨어나곤 했다.

설레는데 무섭고 행복한데 두려웠다.


내가 파리에 간다고 해서 이후의 내 인생이 엄청 달라질 거라던가, 나에게 꽃길만 펼쳐질 거라던가 하는 기대는 안 하지만 사서 걷는 가시밭길이 조금 걱정 되기도 한다.

다녀와서 달라지는 건 아마도 지금보다 훨씬 더 비루해질 나의 통장잔고겠지.


하지만 누구나 쉽게 선택할 수 없는 일이다.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기회가 아니다.

그냥 별일 없이 내게 주어진 이 특별한 시간들을 온전히 누리고 올 수 있었으면,

내가 보낸 파리에서의 시간들이 내게 가장 멋진 날들로 기억됐으면 좋겠다.


종교를 믿진 않지만 하늘에 신이 있다면

결국 나를 파리로 가게 한 이유가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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