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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지구 Sep 06. 2021

어떤 순간을 그대로 기억하는 노래

Stay - The Hails

Oh, I like it when you go

But I love it when you stay

See, I like it when you go

But I love it when you stay

See, I like it when you run

But I have to get away

...


영국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 만난 A는 기숙사에서 10분 거리에 살고 있었다. 좁은 기숙사에서 셋이 복닥 거리며 살던 나는 넓고 깨끗한 A의 스튜디오에 기가 죽었었다. A는 런던에서 알아주는 패션회사에 다니고 있고 요리를 잘하고 축구를 좋아하고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한다고 소개했다. '어쩌다 이런 핵인싸의 집에 왔지.. 게다가 키는 왜 이렇게 커..'하고 모든 면에서 내가 코딱지만 해진 기분으로 쭈뼛쭈뼛 거실로 들어갔다. 그런데 A가 만들어준 파스타를 먹으면서, 두런두런 얘기를 하면서 A가 느긋한 성격, 어쩐지 느린 몸짓, 다정한 표정을 가진, 강아지로 치면 골든 레트리버나 래브라도 레트리버 느낌이 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다 먹은 접시를 치우고 A랑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면서 런던에 맘 둘 곳 없이 엄청난 공부량에 지쳐가던 내가 의지할 수 있는 곳이 생겼다고 느꼈다.


A를 기숙사에 초대할 수 없는 탓에 그 뒤로도 항상 A의 스튜디오에서 놀았다. A는 회사에 출퇴근을 하고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기숙사나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있었기 때문에 저녁 시간에 만나거나 아예 늦은 밤에 만났다. 언제나 서로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정말 많았다. 다른 나라/문화에서 자란 차이에 대해서도, 좋아하는 책, 음악, 영화가 얼마나 겹치는지에 대해서도 쉬지 않고 이야기하는 밤들이 공부 스트레스로 억눌려 있던 내게 해방감을 느끼게 해 주었다. 또, A의 스튜디오에서 놀고 이야기할 때는 유독 자유로워질 수 있었는데, A가 편견 없이 나의 모습과 감정을 모두 인지하고 인정해준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A는 나에게 훌륭한 도피처였다. 


특히 기억에 많이 남는 우리의 모습 중 하나는 서로의 스포티파이 플레이리스트를 구경하던 모습이다. 매일 저녁을 먹고 몇 시간 동안 스포티파이를 앞에 두고 서로 좋아하는 음악을 들었다. 이 음악이 왜 좋은지, 어쩌다 알게 됐는지 얘기하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둘이 좋아하는 음악이 많이 달랐는데도 추천해주는 것마다 서로 좋아서 각자 플레이리스트에 추천곡을 추가하기 바빴다. 


A는 진지하게 자기가 좋아하는 노래에 대해서 가수의 프로필, 밴드의 역사, 음악 장르까지 꼼꼼하게 설명해주는 편이었다. 노래에 대한 나의 반응이 시원찮으면 A는 설명을 더 열정적으로 하거나 내가 좋아할 만한 다른 노래를 고심해서 골랐다. 반면 나는 추천곡을 틀고서 목을 까딱거리며 박자를 타다가 '좋지? 좋지!?'를 연발하는 식이었다. 노래 하나가 채 끝나기도 전에 또 추천하고 싶은 노래가 떠오르면 얼른 그 노래를 찾아서 바꿔 틀었다. 나는 내가 추천하는 노래를 A도 좋아하는지 파악하기보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추천하고 추천받는 시간 자체가 즐겁고 행복했다. 그리고 어느새 일어나서 무아지경으로 막춤을 추는 나를 보고 A가 크게 웃는 모습이, 좋아하는 사람을 웃긴 내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좋았다. 


The Hails 밴드는 A랑 서로 노래 추천을 해주면서 알게 된 밴드다. The Hails 밴드의 곡을 들으면 당장 런던 언더그라운드 클럽에서 적당히 취해서 좀비처럼 몸을 이리저리 흔들고 있는 느낌이 든다. 내가 딱 좋아하는 반쯤 나사 풀린 무드. 밴드의 곡 중에서 Stay라는 곡은 어딘가 능구렁이 같은 기타 선율과 고집 있는 드럼 소리가 ‘아 몰라 대충 살아~ 괜찮아!’라고 말하 것처럼 들려서(이유는 모르겠다) 가장 좋아하는 곡 중 하나다. 템스 강을 따라 학교 도서관에서 A의 스튜디오로 걸어가는 길에 듣던 Stay는 ‘기숙사로 돌아가서 공부를 좀 더 해야 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나에게 ‘아 몰라 오늘 열심히 했잖아. 좀 놀아도 돼!’라고 말해줬다. A의 스튜디오로, 나의 도피처로 향하는 발걸음을 더욱 가볍게 만드는 촉매제 역할을 하는 노래였다. 그래서 Stay를 들을 때마다 얼른 A랑 놀 생각에 잰걸음으로 A의 스튜디오로 향하면서 런던 야경을 뒤로 휙휙 날리던 순간이 생각난다. 


공부가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온 날,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이 노래를 틀었다. A의 스튜디오로 가는 내 발걸음과 심장 박동수를 높이던 노래. A 생각이 났다. A랑 같이 음악 얘기를 하면서 놀던 시간이 생각났다. 처음 이 노래를 알게 됐을 때의 전율, 이 노래를 들으면서 딛었던 모든 발걸음, 이 노래에 맞춰서 같이 춤을 추고 놀았던 시간 전부가 너무너무 그리웠다. 결국엔 지구 반대 편에 있는 A에게 Stay 곡을 크게 틀어놓고 춤을 추는 모습을 찍어 보냈다. 신나서 방방 거리는 내 모습이 그 사람을 웃게 만들 거라는 순수한 확신만으로 바보 같은 춤사위를 찍어 보냈다. 어떤 답을 딱히 기대하진 않았다. 그저 Stay를 들으면서 떠오른 순간들에 대한 그리움을 주체하지 못하고 행동했던 거다. 9시간 뒤, A에게 답이 왔다. 메신저에서 다운로드하여 본 영상 속에 A가 활짝 웃고 있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owv7T_hSBy0

All around the town I go
All around the town I knew
I'd love to stay
Take me to the home I know
Take me to the home I knew
I'd love to stay
La-ooh, ooh, ooh
But I have to get away

Oh, I like it when you go
But I love it when you stay
See, I like it when you go
But I love it when you-

Carolina holds my soul
Carolina's all I knew
I'd love to stay
La-ooh, ooh, ooh
But I have to get away

Oh, I like it when you go
But I love it when you stay
See, I like it when you go
But I love it when you stay
See, I like it when you run
But I have to get away
La-ooh, ooh, ooh
I don't know where I'll go

No, oh, whoa-oh, well, it's madness
Oh, yes, it is
Come on now, well, it's madness
Oh, yes, it is
Oh, baby, well, it's madness
Oh, yes, it is

Whoa-oh, oh-oh
Whoa-aah, 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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