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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형 은행원 Jan 05. 2020

더러운 침대처럼 당신의 이야기가 좋다.

혐오스럽고 부끄럽고 더럽고 추잡하며 우울한 이야기들

나는 당신의 이야기를 읽고 있다. 


당신의 이야기가 완전함이나 선함과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나는 당신의 그 이야기들이 더러운 침대처럼 좋다. 아마도 내 안에 당신 못지않게 거대하고 악취가 나는 오물 덩어리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당신 침대 속에는 과자 가루와 담뱃재가 드문드문 박혀있다. 그것이 까끌하게 살에 닿는다. 그러나 따뜻하다. 살 냄새가 난다. 나는 그곳에 누워 당신이 들려주는 슬프고 추한 이야기들을 듣고 있다.


지금 당신은 겨울에 살고 있다. 당신은 두려움을 무릅쓰고, 혹은 강제로 내몰려 춥고 어두운 영역을 탐험하고 있다. 당신이 전해준 이야기는 모두 이 어두운 영역을 홀로 방황하며 발견한 이야기라는 것을 안다. 그 과정에는 수많은 상실과 고통이 따랐을 것이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악마와 그에 못지않게 추악한 자기 자신을 마주했을 것이다.


그러나 늦던 빠르던 여름은 오게 마련이다. 그때가 오면 당신은 훨씬 더 지혜롭게 삶의 밝은 부분을 탐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는 춥지도 두렵지도 않을 것이다. 당신은 이미 가장 춥고 어두운 영역을 탐험해본 모험가일 테니까. 그때 당신은 침대보를 털고 햇살 아래 펼쳐 놓을 것이다. 그런 날이면 당신의 침대에서는 마른 솜 냄새가 날 것이다. 그곳에 누워 당신은 예쁘고 착한 단어들을 하나하나 읊게 될 것이다. 낯선 울림 속에 그것들이 가진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때 당신의 안에서 이야기가 하나 튀어나올 것이다. 당신은 그 이야기를 쓰기 위해 노력할 필요조차 없다. 그것은 당신 안에서 저절로 빚어져 튀어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신 속에서 튀어나온 이야기에 천사와 악마 모두가 귀를 기울일 것이다. 마치 그것이 드높은 천상과 불타는 지옥의 존재 이유인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다시 깊은 겨울이 올 것이다. 그때 당신은 전보다 조금은 더 쉽게 홀로 춥고 어두운 곳을 향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은 필멸자다. 수많은 여름과 겨울의 반복 뒤에서 당신은 결국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그러나 당신의 이야기는 살아남아 다른 사람에게 위로와 힘이 될 것이다. 설사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상관없다. 당신의 이야기가 굽이굽이 돌아 결국 내게로 왔다. 


지금 나는 여기에서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더러운 침대처럼 나는 당신의 이야기가 좋다.




글이 작품이 되는 공간 '브런치'에

B형 은행원이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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