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형 은행원 Dec 12. 2019

조금씩 죽어가는 이 허름한 카페에서

영원불멸의 강철 같은 아름다움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카페는 죽어가고 있다. 오늘도 여기서 장장 3시간을 글을 쓰고 있었는데 손님은 나를 비롯해서 10명도 되지 않는다. 저번에 왔을 때는 5명이었다. 처음 와서 자리 앉은 순간부터 이곳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있었다.


  전에는 분명 조금   좋은 곳에 가게가 위치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후지고 주차도   좋은 곳으로 가게를 옮겼다. 이런 저런 메뉴가 추가되었고 A4용지에 허접하게 출력되어 덕지덕지 붙어있다. 가게 구석에 이런저런 음료가 박스채로 쌓여있고 짐차가 오고 가며 짐을 실어 나르고 있다. 가게 일부를 창고로 임대한 모양이다. 여기가 카페인지 창고인지도 구별되지 않는다. 짐꾼 아저씨가 짐을 내리러 올 때마다 문을 열어놔서 엉덩이가 얼어버릴 것 같다.


 죽어도 멜빵바지만 입는 바리스타 할머니는 절대 인정하지 않지만  가게는 죽어가는 중이다. 어떻게 해서도 그 사실을 숨길 수가 없다.




글을 쓰고 있는데 바리스타 할머니가 계속 말을 건다. 가뜩이나 글도 안 나오는데 자꾸만 흐름이 끊긴다. 애초에 대화를 시작도 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자꾸 짐차가 왔다 갔다 하길래 저게 뭐냐고 궁금해서 물어본 것이 화근이었다. 처음 질문을 던진 것은 나였지만 - 그 이후 훅처럼 기습적으로 들어오는 대화를 막을 수 없다. 다시 또 내게 와서 떡을 먹지 않겠냐고(필요 없습니다), 뜨거운 물 필요하지 않느냐고(필요 없다고요) 자꾸 물어본다. 이 정도 했으면 귀찮아한다는 것을 느낄 법도 한데 어지간히 대화에 굶주리셨나 보다.


이곳에는 아리따운 처자들이 재잘대는 목소리 같은 건 없다. 심지어 케이크도 없다. 재고 처리가 곤란하기 때문일 것이다. 공장 유니폼을 입은 남성들만 가끔씩 우르르 몰려와 아메리카노를 마신다. 그들에게선 깊은 쇠 냄새가 난다. 어려서 말 더럽게 안 들었을 것 같이 생긴 아들은 방독면 같은 것을 쓴 채 종일 커피만 볶고 있다. 가끔씩 나와서 떡을 하나 집어먹고 다시 들어가 커피를 볶는다.


엄마와 아들이 운영하는 이 허름한 카페에서 나는 글을 쓴다. 집에서 가깝고 커피 값이 싸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이유가 있다. 죽어가는 것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허름한 것에도 나름의 따뜻함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소이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이 카페는 죽어가고 있지만 아직은 죽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커피를 다 볶은 아들이 시음하라며 내게 에스프레소를 한잔 내려 주었다. 게이샤(Geisha) 원두다. 이름만큼이나 섬세하고 화려한 맛이었다. 봄날의 꽃 같았다. 죽어가는 카페에서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나는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했다.


오래전 나는 아름다움을 찾아 미술관을 돌아다녔던 적이 있었다. 그곳에는 영원불멸의 아름다움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모든 미술관에서 나는 공동묘지에 온 것 같은 섬뜩한 느낌을 받았다. 때때로 그 거대한 묘지에서 경이로움을 발견한 적은 있었다. 그러나 봄날의 꽃에서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은 거기에 없었다. 모든 것이 싸늘했고 차가웠다. 이제는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영원불멸의 강철 같은 아름다움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모든 아름다움은 나약하며 순간적인 것이다.


만약 당신이 글을 쓰기 위해 커피가 필요하다면 이야기 하고 싶다. 오늘만큼은 불멸의 것에서 발걸음을 돌려 허름한 곳으로 향해 보길 바란다. 서둘러야 할 것이다. 당신이 찾는 것들이 지금 이 순간도 죽어가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패 할 각오도 해야 할 것이다. 허름한 모든 것이 아름다운 것은 아니며 세상에 아름다운 것이 그다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아주 천천히 걸어야 할 것이다. 아름다운 것들은 대개 숨어있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허름한 곳으로 내딛는 당신의 발걸음은 하나의 모험이다. 운이 좋다면 그 작은 모험의 끝에서 당신은 아름다움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그곳에서 마실 커피 한잔의 온기와 향이 당신의 글에 잠시나마 베어날 수 있기를 바란다. 참 따뜻할 것이다.




글이 작품이 되는 공간 '브런치'에

B형은행원이 쓴 글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 안에는 미친개가 두 마리 살고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