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생활이 만족스럽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을 만나본 적 있다. 그는 결혼이 만족스럽고 다시 태어나도 현재의 배우자와 결혼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배우자의 미덕과 사랑에 대한 찬가가 밤늦도록 이어졌다. 그가 자신의 진심을 이야기했다는 것을 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점잖게 미소 짓고 있었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다. 도대체 어쩌란 말이지? 나는 도망칠 타이밍을 노리며 발가락만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어째서 이 사회는 자기가 돈이 많다는 것을 자랑하는 것이나, 자식이 공부를 잘한다고 자랑하는 것에는 그토록 따가운 눈총을 보내면서도 안락하고 견고한 결혼생활을 자랑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제지를 하지 않는 것일까? 나는 단 한 번도 안락하고 견고한 결혼생활이 삶의 유일한 목표이자 과정이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한 적이 없다.
나의 결혼생활은 안락하지 않다. 때때로 숨이 넘어갈 것처럼 힘들다. 그럼에도 나는 그가 조금도 부럽지 않았다. 결혼생활에 잔기스 하나 없는 사람들 - 자신이 가진 무언가를 부숴보고 싶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사람을 내가 어떻게 부러워할 수 있겠는가? 무언가를 부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은 무엇도 만들 수 없는 법이다. 그러므로 내 결혼 생활이 부서짐과 다시 만들어짐의 반복이며 그 과정이 그다지 평화롭지 않다는 사실이 부끄럽지는 않다. 바로 얼마 전에도 격렬한 부부싸움 와중에 청소용 대걸레가 완전히 박살나 버렸다. 부서져버린 결혼의 파편들이 사방천지에 튀었다. 그 조각들이 아직도 발바닥 밑에서 날카롭게 밟힌다.
부럽지 않다. 부끄럽지 않다. 그러나 아프긴 더럽게 아프다.
내 안에는 미친개가 두 마리 살고 있다.
미지의 것에 대한 열망,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탐욕이란 두 마리의 미친개가 내 안에서 펄펄 끓어오르는 것이 느껴진다. 나는 나이를 먹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 이 미친개들이 길들여지는 것인 줄 알았다. 아니었다. 나이를 먹을수록 미친개들은 더 커지고 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성공의 경험이 축적된다는 것이다. 경험과 지식이 쌓인다는 것이다. 더 많은 물질적인 여유와 권한이 생긴다는 것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내면의 미친개들이 이 모든 것을 주워 먹으며 계속해서 자란다는 것이다.
지하철에서 맡은 향기 한 조각이면 충분하다. 미친개들이 광분하여 날뛰기 시작한다. 나는 그것을 무시한다. 그러면 미친개들은 이빨을 드러내며 나를 물어뜯는다. 미친개들의 가장 치명적인 특질들이 이빨을 타고 내게 그대로 전염되어 온다. 그럴 때면 온 세상이 하얗게 분노로 물든다. 그러나 나는 그 분노를 세상에 온전히 표출할 수도 없다. 목줄 때문이다. 결혼서약은 내 목에 채워진 목줄이다. 살짝만 힘을 줘도 툭 하고 끊어져 버릴 테지만 나는 그것을 끊지도 못하고 분노를 통제하지도 못한다. 그리고 죽음이 있다. 30대에 들어 죽음이 성큼성큼 내게 다가오고 있는 것을 느낀다. 그 발자국 소리가 들릴 때마다 미친개들은 더 맹렬히 사나워진다.
고통스럽고 부당하다. 어째서 나는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가질 수 없는 것인가? 내게는 욕구와 의지와 능력이 있다. 그런데 어째서 나는 결혼이라는 개떡 같은 제도에 구속되어 원하는 것을 향해 손조차 뻗어 볼 수 없는 것인가? 나는 용서받지 못할 생각들 속에서 헤매고 있다. 나는 미쳐가고 있는 중이다.
미친개를 죽이는 방법
알렝 드 보통, 류시화, 조단 B 피터슨, 아잔 브라흐마의 책이 마음을 진정시키는데 도움이 되었다. 달리기나 웨이트 트레이닝도 괜찮았다. 그러나 이 모두가 일시적인 조치일 뿐이다. 그 어떤 방법도 영구적인 체념과 내적인 평화의 상태로 나를 인도해주지는 못했다. 결국 방법은 하나뿐인 것이다. 내 안의 미친개들을 죽여야 하는 것이다.
시작은 우선 운동을 그만두는 것이다. 그동안 애지중지 길러온 근육들은 3개월이면 60% 이상 사라질 것이고 1년이면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그것이 만들어내던 테스토스테론은 훨씬 옅어질 것이다. 그러면 성욕도 식욕도 성취욕도 감퇴할 것이고 지하철에서 맡는 향기로 인해 미친개들이 광분하는 일은 더 이상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새로운 어떤 일도 시도하지 않는 것이다.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성공의 경험도 새로 만들어 내지 않는 것이다.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을 지향하는 것이다. 그러면 내 핏속의 세로토닌이 옅어질 것이고 - 어쩌다 미친개들이 광분하게 되는 일이 생기더라도 별 문제 없을 것이다. 나는 그 미친개들을 발로 걷어차면서 어차피 나는 해도 안될 테니까 닥치고 저리 꺼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미친개들은 즉시 꼬리를 내릴 테고 나를 물어뜯지 못할 것이다.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것도 위험하다. 그것들은 미지의 것들을 꿈꾸게 하며 그 모든 것들을 손에 잡힐 듯이 구체화하는 해악이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을 때려치우고 남는 시간에 나는 치맥을 먹거나 삼겹살에 소주를 마시면서 주절주절 정치나 축구 얘기를 할 생각이다. 게임용 피씨와 플레이스테이션도 꼭 살 생각이다. 게임을 하는 거다. 그동안 게임을 참느라 몹시 힘들었다. 저녁마다 맥주를 마시면서 게임을 할 생각이다. 그리고 그동안 끊었던 텔레비전과 인터넷과 설탕과도 다시 친해질 생각이다. 이 오랜 친구들은 그동안 소홀했던 나를 아무런 조건도 없이 즉석에서 따뜻하게 반겨줄 것이다.
똥배가 출렁거리고 눈은 흐리멍덩해질 테지만 장담할 수 있다. 1년이면 내 안의 미친개는 죽어버릴 것이다. 나는 더 적은 것에 만족할 수 있을 것이다. 결혼 생활은 반석에 오른 듯이 안정적으로 유지될 것이다. 대걸레를 부숴버릴 일 따윈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결국 미친개들을 죽일 수 없을 것이다. 미지의 것에 대한 열망,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탐욕. 이 두 마리의 미친개가 있어 나는 지금껏 살아왔다. 불운이 나를 시험하는 순간에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이 미친개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늘구멍 같은 기회를 두고 무수히 많은 경쟁자들과 싸워야 할 때 물러서지 않은 것 - 그리고 아주 가끔은 내가 이긴 것 또한 이 미친개들 덕분이다. 새로운 것을 생각하고, 그것을 만들고, 그 과정에서 즐거웠던 것도 이 미친개들 덕분인 것이다.
미친개들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얼마 전 「82년생 김지영」을 보았다. 나는 김지영 씨에게 공감했지만 아내는 공감할 수 없다고 했다. 모든 사람이 김지영 씨에게 공감할 수 없는 이유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미친개가 살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김지영 씨의 마음속에는 제대로 시도조차 못하고 빼앗겨버린 가능성, 부당하게 일그러진 사회에 대한 분노라는 미친개들이 살고 있었다. 그녀의 개들은 내 것보다 훨씬 우아해 보였지만 본질적인 부분에는 차이가 없다. 그것들은 마음속에 살고 있고 통제할 수 없다. 그것들은 거대하게 자라나며 때때로 이빨을 드러내어 주인을 물어뜯는다. 그럴 때마다 김지영 씨는 우울해했고 나는 분노했다. 내가 김지영 씨에게 공감한 것은 우리가 비슷한 이유로 함께 미쳐가는 중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녀에게서 나를 보았다.
영화의 마지막에 김지영 씨가 미친개의 이빨이나 다름없던 그 만년필로 글을 쓰기 시작하는 모습은 참으로 대견하지 않던가? 김지영 씨가 내게 말하는 것 같았다. 미친개가 마음속에 있다는 것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라고. 때때로 고통스러울 테지만 그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말이다. 모든 사람에게 미친개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미친개가 내 마음속에 있고 그것이 나를 아프게 한다면 거기에는 분명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는 지하철의 김 서린 창에 비친 것들을 바라보며 음악을 듣는 것을 좋아한다. 문득 등 뒤가 서늘해졌다. 뒤돌아 보니 미친개들이 거기 있었다. 그것들은 낑낑거리며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있는 힘껏 발로 걷어차 주고 싶었지만 - 어쩐지 그것들이 애처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때로 그것들도 아프고 병들고 두려워할 수 있는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의 바닥에 함께 주저앉아 우리는 꽤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결국 너를 죽일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네가 이렇게 시도 때도 없이 지랄 발광을 하는 것은 나에게도 너에게도 좋지 않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나는 결국 사단을 내고야 말 것이다. 결혼은 파탄을 향해 치닫겠지. 그렇게 되면 너라고 무사할 것 같아? 절대 아니다. 나는 패배와 염세에 빠져들 것이고 너도 머지않아 굶어 죽게 될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너에게 영원히 그곳에 얌전히 앉아서 숨만 쉬고 있으라는 이야기도 아니다. 너는 그럴 수 있는 존재가 아니고 그래서도 안된다. 네가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다."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으로 더 이상 결혼을 유지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너희들에게 굴복하기 전에 너희가 그만큼의 존중을 받을 가치가 있는 존재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라. 나와 다른 사람의 인생에 심대한 아픔을 주면서까지 너희를 우선 해야 한다는 증거를 물어와. 일단은 십억 원이 좋겠어. 미친개들아 일단 가서 십억 원을 물어와. 십억 원도 물어오지 못하는 미친 개라면 그냥 죽어버리는 게 더 낫다. 나 돈 좋아하는 거 알지? 그러니까 너의 모든 능력을 활용해서 어떻게 해서든 십억 원을 물어 와. 그리고 그전까지는 내 앞에서 찍소리도 하지 마."
"너희들이 십억 원을 물어오면 나는 남김없이 돈을 인출해서 책상 위에 쌓아 놓을 생각이다. 거기서 만원을 한 장 꺼내서 맥주를 한 캔 사는 거다. 그 맥주를 마시면서 그 돈 무더기를 바라보는 거야. 앞으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지 - 어떤 인간이 될지 그때 결정하는 거다. 물론 그때의 나는 너의 의견을 충분히 존중할 생각이다. 너는 그냥 미친개가 아니라 십억 원을 물어온 사냥개일 테니까. 그런데 지금의 너는 아무것도 아니다. 네가 너의 사냥을 하는 동안 나 또한 최선을 다 할 거다. 나는 그동안 부서진 결혼의 파편들을 주워 모아 새로 쌓아볼 생각이다."
미친개들이 비틀거리며 지하철 밖으로 나가는 모습이 보인다. 냄새를 맡고 소리를 듣더니 어딘가를 향해 뛰어가기 시작한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 청소를 했다.
며칠 후 미친개들이 무언가를 물고 왔다. 돈이 아니었다. 여행상품권 두 장이었다.
연초에 일을 열심히 한다고 여행상품권을 한 장 받았었다. 그리고 지금 미친개들이 물고 온 상품권 두 장까지 하면 아내와 나 그리고 아이가 함께 동유럽 정도는 갈 수 있을 것 같다. 상품권을 얻은 것은 기쁘지만 해외여행 자체가 크게 기대되지는 않는다. 5살 아이를 데리고 가는 여행이다.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불과 며칠 전에도 아이를 데리고 서울랜드에 갔다가 말 그대로 곤죽이 되어서 집으로 돌아온 적이 있었다. 그리고 아이의 뒤에는 내게 있어 끝판왕 격인 아내가 있다. 일상의 대수롭지 않은 결정에서도 쉽게 폭발해버리는 우리가 해외여행에 수반되는 그 수많은 의사결정과 조율을 싸우지 않고 완수해낼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중고 나라에 상품권을 팔아버리고 그 돈을 재형저축에 더 넣는 생각도 해보았다. 그러나 그러지 않기로 했다. 행운의 요정을 빈정을 상하게 할 행동을 해서 좋을 건 없을 테니까. 미친개들이 여행상품권을 물고 온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테니까. 그리고 다른 이유도 있다. 목소리다. 해외여행 상품권을 받았다고 전화했을 때 아내의 목소리 깊은 곳이 떨리고 있었다. 어쩌면 이번 여행을 통해 그동안 우리 부부가 서로 부숴왔고 방치해왔던 두 개의 심장이 다시 따뜻하게 뛰기 시작할지 모른다. 아내의 목소리가 떨렸던 것은 이 적은 가능성 때문이었으리라.
확률이 낮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최선을 다 해볼 가치가 있는 일이다. 그러므로 올해는 바다 건너 해외여행을 가 볼 생각이다. 신혼여행 이후 처음이다. 아주 조금 설레는 거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