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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지윤 Aug 27. 2022

확진자 수와 화장실 휴지의 벨류

코비드가 만든 드라마

3월 2020.


3월 16일. 뉴욕 뉴저지에 갑작스러운 셧다운 통보가 내렸다.

그 전주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마치 전쟁이라도 난 것처럼 호들갑을 떨며 뉴스 속보를 내보내는 걸 보고  뭘 저렇게까지 부산스러울까 생각했다. 나는 3월 4일 5일 내리 연달아 가며 생일 파티를 했고 그때까지만 해도 아무렇지 않다는 듯 레스토랑에 가서 밥을 먹고 처음 보는 사람들과 어깨를 얼싸안았다. 당연히 마스크는 쓰지 않은 채였다. 그로부터 불과 2주가 채 지나기도 전에 우리는 거리에서 쫓겨나듯 내몰렸다. (3월 2일 뉴저지에 첫 확진자가 나왔고 내가 겁도 없이 생축을 하던 내 생일에 우리 동네 첫 양성반응이 나왔다고 한다)

여타 나라들보다 조금 늦은 대처였으므로 모든 절차는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그렇게 실질적으로 17일 이후 우리는 완벽히 격리되었다.

17일 바로 전까지만 해도 미국은 비교적 평화로웠다.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사람도 없었고 일상은 아무 일 없는 듯 돌아가고 있었다. 누구도 넘버에 민감하지 않았고 미국은 타주 어딘가에서만 간헐적으로 사망자가 나오고 있었다. 그것은 독감 사망자보다 경미한 정도였다. 게다가 내가 살고 있는 주만 해도 크기가 남한 땅덩어리와 비슷하니 저 먼 타주는 진짜로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려왔다.


그러던 와중에 아주 황급하게 셧다운 명령이 내려진 것이다.




의학드라마와 시트콤의 시대


그러니까 그날 나의 가장 시급한 일은 집으로 돌아가기 전 toilet paper를 사는 일, 고작 그게 전부였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기 전 동네 로컬 마트인 트레이더 조에서 여유롭게 장까지 본 상태였다. 그리고 그곳은 지금 밖에 무슨 일이 있느냐는 듯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제한된 사람만 (5~10명) 들여 보내기위해 길게 줄을 서고 오래 기다려야 했지만 그 제한으로 인해 그곳에서 나는 홀로 VIP가 된 듯 한가롭게 장을 볼 수 있었다. 코비드가 아니었다면 되려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랬기에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다른 마트가 어떤 상황인지 그 전쟁영화 같은 장면은 상상도 하지 못한 채 이곳에서 홀로 Valued Customer가 되어 호사를 누렸다.

휴지만 사면 된다. 휴지만. 그리고 나는 기꺼이 자가 격리에 들어가는 거야. 상상만으로도 즐거웠다.


오후쯤 거리에서 우리는 내쫓기듯 귀가 통보를 받았다. 그날 나의 할 일은 그저 집에 들어가기 전에 화장실 휴지를 사는 것뿐이었다. 그것 말고는 반 강제적으로 집에만 있어야 된다는 상황이 사실은 미친 듯 신날 뿐이었다.


그래, 화장실 휴지만 있으면 나의 격리 생활은 완벽한 거야.


그렇게 나는 푸드 샤핑을 마치고 가까운 타겟으로 갔다. 휴지가 있어야 할 자리가 텅 비어 있었다. 그곳은 마치 폭격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 같았다. 자세히 보니 물과 세제가 놓였던 자리도 마찬가지였다. 에이, 설마. 여기 타겟이 고객이 많으니 그렇겠지, 했다.

그때 갑자기 며칠 전 엄마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뉴스를 보는데 미국에서 휴지를 사겠다고 여자 둘이 휴지를 서로 끌어안고 격렬하게 몸싸움을 하는 장면이 나왔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때만 해도 그 말을 사사로이 들었다.


"엄마, 그런 경박스러운 일은 내 인생에 일어나지 않아."


그러나 그날 나 역시 누군가가 휴지를 들고 계산대로 가는 모습이 보였다면 나는 경박을 넘어 천박하게 그를 부둥켜안았을지도 몰랐다. 나는 평정심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나는 이 시국에 모르는 사람과 엉겨 붙을 마음이 없었다. 그 후로 나는 동네 마트란 마트는 모두 발도장을 찍는 일이 벌어졌다.

어느 지역 어느 마트를 들어가도 휴지가 있어야 할 자리는 텅 비어 있었다. 그나마 딱 한 군데 마트에 물이 몇 개 남아있길래 지레 겁을 집어먹고 허겁지겁 물을 사려는데 그마저도 1인 1팩만 가능하다며 잘생긴 흑인 청년이 이유 없이 미안해했다. 괜찮아 니 탓도 아닌데 뭘 그러니, 그나저나 화장실 휴지는 언제나 살 수 있는 거니?! 그 질문에 그 청년은 미안함을 감추려는 듯 더더욱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그건 더더욱 알 수 없겠는데, 라며 연신 sorry를 휴지 대신 내밀었다. 이봐, 미안하다는 말로는 뒷일을 처리할 수 없어. 그것 말고 휴지를 내밀라고! 그때 나는 복면만 있었다면 기꺼이 강도로 돌변 할 수 있었다.

아, 젠장 30+n 년을 살면서 이런 패닉은 정말 처음이었다. 이런 스토리대로 간다면 앞으로도 당분간은 휴지는커녕 헤어진 엑스에게서 받은 연애편지를 구겨써야 할 판이었다. 그래, 그딴 것 이미 쓸모도 없는데 잘 됐지 뭐야 하다가도 덜컥 겁이 났다. 아! 엉덩이에 잉크가 묻어나는 것쯤이야 감수해야 하는 건가?


나는 갑자기 이미 배탈이라도 난 듯 등으로 식은땀이 흘렀다. 집에 남은 휴지 롤이 몇 개인지 빠르게 머리를 굴려 보았다. 두롤이 남았던가? 아니 세롤? 어쨌거나 몇 개월이 될지 모르는 감금생활을 버티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양인 것만은 확실했다. 머릿속으로는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김종국의 휴지 3칸으로 뒤처리 하는 방법을 나도 연습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가 아무 집이나 벨을 누르고 휴지 한롤 씩을 구걸하는 방법도 생각해 보았다. 착한 (처음 보지만) 이웃 주민들은 저 동양 처녀가 얼마나 간절했으면 우리 집 벨을 다 눌렀을까 하는 마음에 한롤씩은 선 듯 내어줄 것이 분명했다. 어이없지만 그것이 내가 생각한 가장 현실적인 첫 번째 옵션이었다. 운이 좋다면 두롤도 가능할 테고. 그게 안된다면 배변 활동을 간헐적으로 멈추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것은 최악의 옵션이었다. 그러기엔 내 배변 활동은 너무 최 상급이었다. 정말 그들이 괜찮다면야 귀신이라도 만나고 싶었다. 아 그렇다면 나는 빨간 휴지와 파란 휴지라는 선택지까지 주어지는 건데 이 와중에 공짜로, 그것도 컬러 휴지를 선 듯 내어주는 귀신이 차라리 천사처럼 느껴졌다. 게다가 비대면 시대에 사람보다 귀신을 만나는 건 도리어 안전할 것 같았다. 이건 특급 옵션 같았다. 그러나 어쩌면 이 시국에는 귀신도 더는 공짜로 빨갛던 파랗던 휴지 자체를 아끼기 위해서라도 잠정 파업에 들어갈 것만 같았다. 이토록 귀신이 그리워 보기도 처음이었다. 그러는 사이 내 똥줄은 점점 더 타 들어갔고 이렇게 타들어 가서 배변 활동이 막힌다면 한편으로 감사해야 될 상황이었다. 결국 밤까지 마트를 돌고 돌다 포기를 하고 우는 얼굴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면서도 나는 이 눈물은 절대 toilet Paper로 닥지 말아야지 생각했다. 내 눈물을 훔쳐내기엔 이제 너무 고급이 된 똥 휴지의 신분 상승에 더 서럽게 눈물이 났다.


그때 갑작스럽게 뉴욕과 뉴저지가 셧다운에 들어가기 직전 바로 내가 살던 동네에서 확진자인지 사망자인지가 나왔던 터였다. 남들이 지금 죽고 사는 문제에 직면했을 바로 그때 나는 화장실 휴지 때문에 죽느냐 사느냐를 외치고 있다니 옆 세트장에서 긴박한 의학 드라마를 찍고 있는데 나는 이쪽 세트장에서 시트콤을 찍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여기저기 확진자와 시체가 숫자 개념으로 쌓여 갈 때 나는 온통 화장실 휴지가 몇 칸이나 남았나 그 숫자를 세는데만 혈안이 되어 있었다. 코미디가 따로 없었다.


이 황당함을 나는 너와 걔들에게 알렸다. 그러자 뜻밖에 구호품이 밀려왔다. 가장 통 크게 휴지를 기부한 것은 미국인 남사친이었다. 시국을 고려해 집 앞에 휴지를 두고 가겠다는 것이었다. 그 외에도 몇몇 동서양인들이 내 배변 활동에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휴지를 전달해 줬다. 구겨져 오물이 묻은 채로 생을 마감할 뻔했던 엑스의 연애편지가 나와 함께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질긴 것. 사람 목숨도 간단하게 끊어지는 시국에 편지 속 구구 절절함은 매우 끈질기게 살아남는다는 것이 허망하게 놀라웠다. 이것이야 말로 파워 오브 러브 인가.


순식간에 몇 달치의 휴지가 생기고 나는 다시 평정을 되찾았다. 그리고는 마치 고급이 된 똥 휴지처럼 신분상승이라도 된 양 여유로이 앉아 뉴스를 보는데 엄마 말대로 백인 여자들이 마트에 남은 마지막 휴지 묶음을 들고 죽일 듯 몸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바닥을 휘적휘적 쓸고 닦으며 엉긴 꼴이 저러다 코로나 걸리는 것 아닌가 (나는 격리된 체) 쓸데없는 걱정을 하게 만들었다. 저러다 전염병에 걸리면 그 휴지들이 다 무슨 소용인가, 그래도 그들은 전염병을 무릅쓰고 휴지만을 위해 싸웠다. 휴지가 왜 필요한지도 잊은 모습으로 그들은 소셜 디스턴스 따위는 간단히 무시하고 얼싸 안겨 있었다. 그걸 획득하고 죽음을 맞을지도 모른다는 것도 잊은 채, 오로지 휴지만이 목숨인 듯 격하게 싸웠다. 병실 침대 위에 누워 생과사를 오가며 죽음에 맞서 싸우는 이들과 병균이 떠도는 공기를 나눠 마시며 얼싸 안겨 마트에서 난투극을 벌이는 두 사람. 지금 세상은 무언가와 싸우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휴지를 구해낸 나와 그로부터 안전해진 엑스의 연애편지만이 평화로웠다.

구호물품으로 휴지가 넉넉해지자 나는 실로 느긋하고 나긋해졌다. 그게 아니었다면 나는 브라운관을 뚫고 들어가서 코로나고 나발이고 그녀들과 얼싸안고 몸싸움에 동참할 판이었다. 전염병이 다 뭐야! 휴지가 중요하지. 병을 이긴 휴지의 가치가 새삼스러웠다.


문밖에 전염병이 나돌고 있었다.


새삼 카뮈의 페스트를 다시 꺼내어 읽어볼 시기가 된 것만 같았다.

모두가 죽고 사는 문제로 의학드라마를 찍던 시트콤을 찍던 우리는 각자의 에피소드에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구나, 생각했다. 병실에서 전염병과 생사를 놓고 싸우는 사람과 마트에서 휴지를 위해 목숨 걸고 싸우는 사람. 휴지 한 칸에 생과 사를 오갔던 나. 다행인 것은 나는 어쩌다 옆 채널의 의학드라마에 캐스팅되거나 막장 드라마에 캐스팅되지 않고 시트콤을 찍고 있다는 것 이었다.


다시 한번 말 하지만 밖은 재난과 재앙과 죽음과 병이 돌고 있었다.

오늘부터 나는 이 문안으로, 바깥의 병과 공포와 죽음으로부터 격리되었다.


그렇게 나는 약 90일간 그 문 밖으로 한 발짜국도 나가지 않았다.


문 밖, 그곳은 거대한 드라마 세트장과 다름없었다.

 





의학드라마와 시트콤이 지루해 지면 나는 트레이더 조로 간다

나를 Very Important Person으로 만들어 주는 Trader's Joe


Trader Joe's 2020.



6월 2020.


그렇게 90일간의 격리를 마치고 제일 먼저 달려간 곳은 다시 트레이더 조였다.

트레이더 조가 로컬 마트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그렇게 브랜드 평판이 좋은지 코로나 이후 절실히 알게 되었다. 아무리 길게 줄을 서더라도, 당장의 고객을 조금 잃더라도 펜데믹 이후 그들은 매장 안에 5명에서 10명 사이의 손님만을 들여보냈다. 손님 한 명이 나가면 줄을 서던 다음 손님 한 명 만을 들여보냈고 앞에서 모든 스테프들이 친히 소독제로 카트 손잡이를 직접 닦아 전해주고 웃으며 손 소독제를 전달해 주었다.

덕분에 장을 보는 내내 약간 VIP가 된 듯 텅 빈 매장에서 편안하게 장을 볼 수 있었다. (사제기에 미친 일부 미국인들 때문에 물류 대란이 시작되었으므로 불가피하게 물품 제한은 주었으나 시간제한은 전혀 주지 않았다) 그 시각 다른 마트들은 실로 아비규환이었다. 밀치고 치고받고 소리를 지르며 물건을 낚아채고 흡사 액션 영화 촬영장 같은 폭력과 과격함이 공포감을 조성할 정도였고 그로인해 진열대는 난장판 그 자체였다.

트레이더조에서는 머리채를 부여잡고 싸우는 사람도 없었고 물건을 사재기하는 염치없는 사람도 없었다. 깔끔하게 정리된 물건들과 내가 있을뿐 여기는 의학 드라마도 액션 영화도 코미디도 없었다. 그냥 일상이 있을 뿐이었다. 그게 무척 놀라웠다.


펜데믹 이전에도 트레이더 조는 직원들의 복지가 최고라는 걸로 소문이 났을 정도인데 웬만한 사람들이 입사하고 싶은 꿈의 직장 같은 곳, 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어떻게 마트가 그것도 로컬 마트가 그렇게 될 수 있는지 나는 신문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까지 생각을 했다. 그러나 나는 이번 코로나 사태로 그리고 늘 만나게 되는 직원들의 태도로 그 말을 약간은 믿게 되었다.


유독 (우리 동네가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게이 직원이 많았는데 그들 특유의 상냥함과 재치가 늘 나를 기분 좋게 했다. 웬만한 대우로는 나올 수 없는 진짜 친절을 트레이더 조에 가면 받게 되어 그곳에 가면 싼 유기농을 살 수 있다는 장점 이상을 얻고 돌아왔다. 특히 펜데믹 이전에 트레이더 조 에서는 늘 어느 한켠에 자체 브랜드 제품을 요리 혹은 조리해서 쇼핑을 하는 사람들에게 무료로 나누어 주었는데 거기는 음식을 맛보는 장소 이상이어서 요리 혹은 조리를 하는 직원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그렇게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 사이에 또 다른 손님이 끼어들어 이야기와 웃음이 끊이지 않는 방앗간 같은 역할을 했다. 그리고 심지어는 어느 손님이 어느 제품의 맛이 궁금하다고 하면 그곳에서 바로 뜯어 조리해주는 유연함과 따듯함이 그곳에는 존재했다.

그곳에서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었다. 직원들은 모두 언니나 삼촌 혹은 동생 같았다. 그래서 그곳은 마트가 아니라 우리 집의 큰 팬트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유기농을 샀음에도 다른 마트에서 장을 보았다면 나오지 않을 낮은 숫자를 내밀었다.


펜데믹을 앓고 진짜 트레이더 조의 진가를 알게 된 사람은 나뿐이 아니었다.

물건을 팔겠다고 열을 올리는 여타 매장과는 사뭇 다른 그들의 경영 방식과 병이 돌고 있는데도 여유롭게 웃는 직원들 나는 그런 것들에 새삼 감동을 받았다.

쇼핑을 마치고 나오는데 직원이 꽃화분을 나눠 주고 있었다. 이제 팔기 어려워진 화분을 처분한다는 생각보다는 슬픔을 이겨보자는 메시지처럼 다가왔다.

그렇게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은 펜데믹 이후 그 작은 로컬 유기농 마트로만 가서 장을 보게 되었다.

이 난리통에 VIP 대접을 받으며 여유롭게 쇼핑을 즐길 수 있는 유일한 매장은 지금 이 순간 트레이더 조 밖에는 없었다. 펜데믹 이후 트레이더 조는 나의 팬트리가 되었다.


모두가 무언가와 열심히 싸우는 이 난리통에 어딜 가도 전쟁 영화 속 마지막 싸움터 씬 안의 엑스트라 29 엑스트라 45 정도가 되어 빛도 나지 않는 싸움을 해야 했지만 이곳은 조금 달랐다.

의학 드라마와 시트콤이 지겨워지면 나는 트레이더 조에 갔다. 거기는 난폭과 싸움 따위의 드라마가 없었다. 텅 빈 마트에서 상냥한 직원들과 안부를 주고받으며 유유히 장을 보다 보면 나는 정말로 Very Important Person이 되어 있을 뿐이다.


전쟁같은 이 시절 나는 이곳에서 만큼은 아주 특별한 VIP가 된다.




펜데믹이 한참이던 2020년에 어딘가에 써두었던 글이 보였다. 참 새삼스러웠다. 아직도 바이러스는 존재하고 지구는 거대한 드라마 세트장처럼 희로애락이 존재한다. 의학 드라마의 유행이 지나고 막장 드라마나 재난 영화가 그 자리를 차지했을 뿐 우리는 모두가 여전히 드라마 속에 존재한다. 2022 오늘 우리는 어디에서 떤 드라마를 찍고 있는 것 일까. 그 시절을 무사히 버텨준 모두에게,


당신은 누군가의 Very Important Person이라고 말 해 주고 싶다.


그때를 추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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