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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희 Mar 13. 2023

여성이 리더로 성공한다는 것..

30대 초반의 시기를 돌아보면 미래에 대한 장밋빛 희망과 불안감이 혼재되어 있던 불안정한 장면이 떠오른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직장에 들어가면 잡지에나오는 멋진 커리어우먼의 모습처럼 살게 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지만, 때로는 원하는 직장을 구하지 못하면 어떻게 할지에 대한 불안감에 휩싸여 우울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겉으로는 활기가 있어 보였지만 내면적으로는 자신에 대한 믿음과 확신이 부족했던 터라 누구보다 불안감이 컸다. 지금 생각하면 공부에 집중하는 것이 최선의 대응이었지만 갑자기 폭풍처럼 인터넷 검색을 하고, 아는 선배나 친구에게 연락해서 하소연하며 심리적인 위안을 얻는데 많은 시간을 허비하곤 했다. 그 때 인터넷에서 검색한 정보나 선배나 친구들의 조언은 사실 현재까지의 커리어에 아무런 영향도, 도움도 주지 않고 있다.  


내가 고민이 많아 보였는지 친한 친구 한명이 자신이 속해 있는 네트워트에서 성공한 여성리더들을 초청하여 이야기를 듣는 행사가 있다며 관심이 있는지 물어본다. 영국정원 옆의 야외 공간에서 열린 행사였는데 깔끔하고 정제된 행동과 외모를 가진 여성리더 세명이 성공하고 싶은 열망이 가득한 여학생들의 폭풍같은 질문에 친절하게 답을 해주었다. 수많은 이야기 중 지금까지 생생하게 기억나는 질문은 “여성이 리더로 성공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인지”이다.


이 질문에 여성리더들은 모두 입을 맞춘 듯 “여성이 사회적으로 성공하려면 남편을 잘 만나나야 한다”고 답했다. 일과 가정을 동시에 잘 유지하기 위해서는 남편의 서포트가 중요하다는 의미다. 회사에 일찍 출근해야 하거나 출장이 있을 때 나를 대신해서 아이를 챙겨서 유치원이나 학교에 보내고, 집에 돌아왔을 때아이와 보내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도록 가사일을 도와주어야 하고, 커리어에 집중할 수 있도록 집안일에 다소 소홀하더라도 배려해주어야 한다고 한다.


“남편을 잘 만나야 한다”



머리로는 잘 알고 있었지만 유학을 마치고 오니 이미 혼기가 지나 외조를 잘할 남자는 커녕 연애 자체도 쉽지 않았다. 결국 외국에서 생활하고 공부한 사람과결혼을 했지만 상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 아무리 일이 바쁘고 피곤하더라도 식사 때가 되면 밥을 준비해야 했고, 늘 메뉴를 고민해야 했고, 끊임없이 엄마를 찾는 어린 두 아이를 밤낮으로 케어 해야 했고, 집안도 깨끗이 정리해야 했다. 게다가 부모님이 편찮으시게 되어 나의 커리어는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프로젝트에서 내가 맡은 부분을 기한에 맞게 잘 해내지 못하거나 만족할 수준의 성과를 내지 못하는 일이 반복되며 나는 자신감을 잃어갔다. 가정에서도 이상적인 아내, 엄마가 아니었기에 늘 부족하다는 생각에 휩싸였다. 너무 스트레스가 많다 보니 아이에게 웃어 주기도 힘들었고, 심하게 화를 낸 다음에는 몇일간후회와 자괘감에 휩싸이곤 했다.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이 아프다. 나는 외조를 잘하는 남편을 만나지도 않았고, 건강한 부모님의 서포트도 받지 못한채 일-가정을 균형 있게 이끌어가지 못했던 게 뼈아픈 현실이었다. 삶은 참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아는 것과 실제는 별개로 돌아갔다. 이런 경우를 헛똑똑이라고 하나?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은 재미있게도 일-가정 양립 문제로 고민하는 여성리더들 대상으로 코칭을 하고 있다. 자식과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싶지만 일을 포기할 수 없어 끊임없이 갈등하다 결국 눈물을 펑펑 쏟아내는 모습을 보면 타임캡슐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느낌을 받는다. 놀랍게도 외조를 잘해주는 좋은 남편과 전적으로 서포트를 해주는 부모님이 계신 경우에도 일-가정 균형 문제로 고민하며 커리어를 포기할지 고민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누구도 엄마 역할을 대체할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은 욕구는 다른 것으로 해소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일과 가정 중 무엇이 더 중요한지 명확히 인지하는 사람은 심하게 갈등하지 않는다. 둘 중 더 중요한 것을 위해 다른 하나를 조금 희생시키면 된다. 하지만 아이를 사랑하지만 일과 가정 모두 포기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분명히 일이 주는 중요한 가치와 의미가 있을 것이다. 과거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은 경험으로 인해 재정적인 안정을 중요하게 여기거나 커리어적으로 이루고 싶은 비전이 명확한 경우에는 아이를 위해 커리어를 포기하면 불행해진다. 이런경우에는 완벽하지 못하더라도 둘 다 끌고 가는 것이 최선이다. 일과 가정 중 어떤 것을 선택할지, 육아휴직을 해야 할 지, 커리어적 목표를 어떻게 잡을지에대한 고민에 앞서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성공한 삶이란 어떤 모습인지를 먼저 명확히 인식하고 그려 볼 필요가 있다. 


과거의 시간을 통해 내가 얻은 교훈이라면 삶이 긴 만큼 커리어도 길다는 것이다. 현재의 어려움에 매몰되어 자신을 비난하거나 자신감을 잃지 말고 장기적인커리어비전을 보고 나아가는 편이 더 현명하다. 아이는 자라고 언젠가는 나를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다. 아이가 없는 상태에서 커리어를 다시 걱정해야 하는 인생의 시기가 일과 가정 간의 양립을 위해 허덕이는 시기보다 심적으로 더 어려울 수 있다. 미래의 비전이 명확하면 현재 원하는 수준의 성과나 결과물을내지 못하더라도 언젠가는 그곳에 가까이 가 있다. 나 역시 일-가정 간의 균형점을 찾아 열심히 노력하는 과정에서. 30대 초반부터 꿈꾸어 온 비전과 삶의 방향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가끔은 내가 커리어적으로 잘 풀리고 남편도 잘 만나고 서포트를 잘 해주는 부모님을 만났다면 지금 만족하는 삶을 살고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원하는대로 일이 잘 풀려서 중요한 가치들이 어느 정도 충족되는 좋은 기회를 일찍이 만났다면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어쩌면 외부에서 주어지는 기회에 의해 삶이 흘러갔을 지도 모른다. 


혹시라도 선택을 잘못한 느낌이 들더라도 자책할 필요는 없다. 시기가 빠르거나 늦거나 차이가 있을 뿐 어차피 은퇴하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남녀 무관하게 아무리 대단한 커리어를 쌓았더라도 미래에 대한 비전이 없이 살아왔다면 은퇴이후의 삶은 커리어가 별볼일 없었던 사람과 큰 차이가 없다. 오히려 과거의 성공이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데 장애가 되거나 발목을 잡기도 한다.


북극성을 바라보고 가는 사람은 길을 잃지 않는다. 삶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과거를 돌아봤을 때 인생이 만족스러웠고 잘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것이 진정한 성공이 아닐까? 눈앞의 어려움에 연연하지 말고 삶 전체에서 커리어를 살펴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 필요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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