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를 얼마 남겨놓지 않은 임원분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사회생활을 통해 다듬어진 편안함이나 여유로운 매너 너머로 뭔가 답답한 느낌이 전해진다. 한국 사회에서 리더로서 오랫동안 역할을 하는 동안 힘들고 스트레스 받는 일이 있더라도 괜찮은 척, 의연한척 살아왔기에 낯선, 게다가 새파랗게 젊은 여성에게 꼭꼭 숨겨둔 진짜 고민을 꺼내기 쉽지 않으리라.
은퇴 하면 뭐하실거에요?
처음부터 은퇴 후의 삶을 고민으로 꺼내놓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먼저 이야기 하지 않기 때문에 마지막 코칭 세션을 앞두고 이런 질문을 던지곤 한다.
은퇴 후의 삶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 가장 많이 보이는 반응은 막막한 표정이다. 은퇴 후 가장 두려운 것은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출근할 곳이 없다는 점을 공통적으로 꼽는다. 그래서 마음을 내려놓고 경력과 관련된 자격증을 취득하여 적은 임금이라도 받으며 규칙적으로 나갈 직장을 찾겠다는 막연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아무리 사회적으로 성공했더라도 은퇴의 시기가 오면 모든 것이 리셋된다. 어느 학교에서 얼마나 공부했고, 학벌이 어떤지는 은퇴 이전의 사회적 지위나 경제 수준을 결정하는데 큰 영향을 끼치지만, 은퇴 이후에는 은퇴 이전까지 쌓은 다양한 경험, 인적 네트워크, 커리어 계획 등이 삶의 질을 결정하는 듯 하다.
오히려 굴곡진 삶을 살아가면서 도전과 실패를 거듭했던 사람들이 꾸준히 커리어를 쌓아가고, 한 직장에서 안정적인 생활을 했던 사람들은 오히려 은둔하거나 소일거리를 하며 인생 후반부를 보내는 것 처럼 보인다.
어떻게 보면 삶에 정답은 없고, 누가 위너인지는 두고 볼 일이다.
물론 내가 정답을 알거나 적합한 커리어를 제안해 줄 수는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앞으로 남은 시간이 생각보다 길다는 점을 인지하게 하고 삶이라는 큰 그림에서 커리어를 그려보게 하는 것이다.
삶의 어느 순간 retreat이 필요하다.
앞만 보며 달려왔던 사람들은 정해진 틀이 없어지면 방향을 찾지 못해 방황하거나 안절부절하게 된다.
대단한 커리어가 기다리고 있지 않더라도 삶의 마무리를 아름답게 하기 위해 나머지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한번쯤 짚고 넘어가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