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기러기다> 4화 홀아비 냄새 킁킁
기러기 4일차.
흔한 중년 남성의 가장 큰 착각 중 하나는 바로 자신이 젊다고 생각하는 거다.
'나 정도면 아재 아니라 오빠지. 후후'라고 생각하는 순간 이미 당신은 아저씨다.
나도 최근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됐는데 그 계기는 바로 냄새였다.
흔히 '체취'라고 하는 이 냄새는 가히 나에게 충격과 공포로 다가왔다.
혼자 지낸 지 이튿날이 됐을 때였다.
외출하고 돌아와 현관문을 열었는데 뭔가 어려서 외갓집에 나이 많은 사촌 형 방에 들어갔을 때 노란색 장판에서 나는 냄새가 비강을 훅 치고 들어왔다.
'잠깐. 이게 뭐지?'
나는 1.5㎡ 남짓한 현관에서 우두커니 서서 혼란에 휩싸였다.
서둘러 신발을 벗고, 현관 바로 옆에 있는 신발장에 코를 들이댔다. 애들 신발에서 조금 꼬릿 한 냄새가 나긴 했지만, 방금 맡았던 이질적인 냄새와는 차원이 달랐다.
혹시 부엌에서 나는 냄새인가 해서 발걸음을 재촉해 부엌 싱크대에 가 봤으나 혼자 남은 이후 뭘 해먹은 적이 없는 부엌 냄새는 무취에 가까웠다.
거실로 나와 소파 밑과 거실에 딸린 앞 베란다까지 다 가봤으니 냄새를 추적할 실마리를 찾을 수 없었다.
그 사이 우리 신체 기관 중 적응력이 가장 강한 코는 외계 생명체에서나 날 법한 냄새에 적응한 뒤였다.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샤워를 하려고 안방 화장실로 갔다. 가족들이 떠난 뒤 거실 화장실은 손님용으로 남겨두고 나는 샤워 부스가 있는 안방 화장실만 사용한다.
윗옷을 벗으며 안방 문을 연 그때였다. 이미 적응한 코마저 무력화시키는 그 냄새가 다시 날 덮쳐 왔다.
'욱. 이게 뭐야'
바로 내가 지친 몸을 누이는 너무 말랑하지도 너무 딱딱하지도 않은 그곳. 냄새의 근원지는 바로 안방 침대였다.
나는 코가 예민하기도 하고, 음식 맛을 볼 때 방해가 돼 여름철에도 스킨이나 향수를 뿌리지 않는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이런 행동은 주변 사람을 힘들게 하는 만행에 가까웠다.
의도치 않게 사회에 물의를 일으킨 내 몸에서 이런 냄새가 날 것이라는 상상을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나는 아직 오빠기 때문에 탱탱한 살결과 페로몬이 뿜뿜하겠지'라는 착각을 하고 있던 허름한 중년 아재가 때가 낀 거울을 닦은 뒤에야 진정한 모습에서 발견한 것과 같은 것이었다.
너무 놀란 나는 침대 시트를 걷어서 세탁기로 뛰어갔다. 통돌이용 세제를 황급히 넣고, 사프란 볶음밥 먹을 때나 맡던 향이 나는 사프란을 콸콸콸 따랐다.
위~잉, 위~잉 돌아가는 세탁기를 내려다보며 나는 정말 외면하고 싶었던 단어가 떠올랐다.
'홀아비 냄새'
이것이 그 말로만 듣던 홀아비 냄새란 말인가. 여태까지 록수와 애들 냄새에 가려 있었을 뿐이지 가림막이 사라지자 홀아비 냄새는 추악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절망한 채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일단 안방과 거실을 환기하고 바닥을 깨끗이 닦았다. 평소 잘 누워 있던 가죽 소파도 빡빡 닦아 내고 방향제를 옆에 뒀다. 베갯잇과 침구도 빨래 바구니에 집어넣고, 거실 곳곳에 양키 캔들도 켜 뒀다.
앞으로는 될 수 있으면 집에 있는 동안 에어컨보다는 환기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며칠이 지났다.
안타깝게도 나는 냄새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며칠 노력해봤지만 베이징은 장마철을 맞아 이따금 폭우가 쏟아져 창문을 열어 두고 외출할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허구한 날 베이징 식당가를 싸돌아다니는 한 마리 스라소니였다.
그렇게 나는 홀아비 냄새와의 불편한 동거를 시작했다.
다음 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