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돼지터리언국 총리 Dec 20. 2021

<서평> 전라디언의 굴레

    전라도에서 나고 자란 사람으로서 아주 흥미롭게 때론 씁쓸하고, 애처롭게 읽은 책이다.

    우리 아버지 세대, 그리고 어쩌면 우리 세대까지 겪어야 했던 호남의 비애를 책은 다루고 있다.

    신파나 감정적으로 사안을 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사회 문화적, 경제적 원인을 더듬어 보는 초반 1, 2챕터가 너무 좋았다.

    호남 소외 문제에 대해 큰 관심 없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굳이 써야 할 필요가 있나 생각하겠지만,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이야기는 비단 호남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지방자치가 시행된 1991년 지방의회 도입부터 치면 지방자치제도 이제 30년을 맞았다.

    그러나 여전히 지방은 중앙의 예산 주도형 사업에 목을 매고 있고, 서울은 '두뇌', 지방은 '손발'이 되는 계층적 구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호남이 이런 성향이 심하고, 이는 산업화 시기 이전부터 배제의 역사를 겪어 왔기 때문이다.

    고리타분하게 이제 와서 호남 소외론을 다시 이야기할 필요는 없다.

    지방에서 나고 자라고, 서울에서 생활해 본 내 입장에서는 과거의 잘잘못은 이제 과거 세대에 묻어 두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런 잘못을 되돌리고, 보상성 특혜로 메우기에는 이미 한국 사회는 너무 멀리 와버렸다.

    이제 와서 호남에 산업화를 일으키고, 기업가 정신이 충만한 대표가 있는 기업을 유치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호남은 무엇을 해야 할까?

    무엇을 해야 한다기보다는 지금 하는 보상성 노력을 하지 않는 게 더 중요할 것 같다.

    관성적인 SOC 예산 사업 추진보다는 이런 관습을 끊어낼 혁신적인 대안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언가 하지 않고 잠시 생각하는 것이 먼저다.

    호남에 최근 문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광주와 전주에서 서로 문화도시, 문화수도를 내세운다.

    이 역시 대안을 찾기 위한 발로일 것이다.

    그런데 그 내부를 들여다보면 고속도로나 항만 건설 예산을 따오던 SOC형 지역개발과 완전히 같은 형태다.

    조 단위 예산을 들여 문화시설을 짓는다던지 구도심에 생뚱맞은 관주도형 사업을 진행한다든지 전혀 파급효과가 없는 보여주기 식 지역 균형 개발 사업이 그것이다.

    문화 사업마저 SOC에 목을 매고 있는 셈이다.

    필자는 지역 회생의 대안으로 '대학'을 들고 있다.

    막상 지역에서 살아보면 수도권 대학으로 쏠림 현상이 강한 상황에서 지역 인재를 지역 대학에 묶어 두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럼에도 대학을 육성하자는 필자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는 SOC 사업을 막무가내식으로 추진하기보다는 문화를 심고, 교육을 발전시키는 것에 더 힘써야 한다.

    지역의 코스트코 유치 사회 운동도 이런 문화 심기의 일환으로 튀어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흔히 지방러들은 코스트코나 스타필드 같은 복합 쇼핑몰조차 문화의 하나로 본다.

    복합 쇼핑몰 유치는 그간 지역 상권 초토화 이슈에 막혀 지방에서 특히 호남에서 금기시됐다.

    언뜻 1차원적인 생각으로는 이런 주장이 맞을 수 있으나, 대학을 육성하고, 문화를 가꿔 라이프 스타일을 바꾸려는 노력에 실생활에 큰 영향을 끼치는 이런 '문화적 요소'는 필수적인 것이다.

    추상적인 '문화'가 아니라 지방의 삶의 질을 높일 '문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런 기본적인 사회 문화적 요소도 없이 지방의 인재를 지방에 잡아둘 수는 없다.

    지방은 현재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부동산에 수도권보다 낮은 임금, 낙후한 교육·문화 인프라에 메말라가고 있다.

    먼저 젊은 사람들이 살만한 환경 만들기가 우선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는 것이다.

    SOC 사업을 적극적으로 유치하기보다, 지역에 파급효과가 전혀 없는 부동산 개발형 건설업에 목을 매기보다 살고 싶은, 살기 편한 지방이 되는 것이 먼저일 것이다.

    그런 뒤에야 전라디언의 굴레, 아니 지방의 굴레를 논할 여백이 생겨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서평> 지금 이 목소리를 듣는 것이 우리의 정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