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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LAYER SYSY Jul 18. 2022

문명에 나타난 정치외교학

학문을 삼켜버린 게임에 대하여

문명 하셨습니다.

문명(Sid Meier's Civilization) 시리즈는 국가를 원시시대부터 미래시대까지 발전시키고, 다른 국가와 대립 혹은 협력하는 게임이다. 한국에서는 문명 5에 세종대왕이 등장하면서 여러 밈이 생겼고 시간을 순삭 시키는 게임으로 대중에게 알려졌다. 기술을 발전시켜 다른 나라를 압도하면 되는 것 같은 이 게임은 사실 정치외교학 지식이 곳곳에 들어가 있다. 재미를 위해 만들어진 게임이지만, 사회 현상을 이론에 기반해 묘사하는 틀을 가지고 있다. 이번 글에서는 게임과 학문의 결합에 대해서 소개하고 문명을 통해 이를 살펴보고자 한다. 



게임은 영화와 같은 간접 경험의 매체에서 발달했다. 간접 경험 매체의 중요한 특성은 '핍진성(Plausible)'이다. 핍진성이라는 어려운 단어를 풀어보면 '그럴듯한 것'이다. 매체를 경험하는 사람이 그럴 수 있겠다고 느끼는 것이 필요하다. 간접 경험을 그럴듯하게 만드는 방법은 대표적으로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현실에서 느낄만한 감각을 자극하는 것이다. 눈앞에서 보는 것 같은 자세한 묘사와 내가 직접 경험하는 것과 같은 느낌을 주는 서라운드 청각과 미세한 촉각이 예가 되겠다. 이런 감각의 자극 때문에 수용자는 요정과 오크가 등장하는 반지의 제왕도, 우주의 외계인이 등장하는 스타워즈도 '그럴 수 있다'라고 받아들인다.


간접 경험을 그럴듯하게 만드는 두 번째 방법은 행동과 상황을 논리적으로 설명을 하는 것이다.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원인과 결과의 명확성을 보여준다. 주인공의 특정 행동에는 과거의 특정한 원인이 있음을 제시하면 수용자는 그럴 수 있다고 납득한다. 논리적인 연결이 되지 않을 경우 수용자는 결과에 대해 납득하기 힘들어하며 몰입감을 잃어버린다. 주인공이 억지로 눈물을 흘리는 신파극과 모든 걸 우연에 맞긴 이야기를 보면서 수용자가 거부감을 느끼는 것은 그 이야기가 '그럴듯하지 않아서'다. 




게임 역시 플레이어에게 '그럴 듯 한' 경험을 전달하고자 위 방식을 사용한다. 화려한 그래픽과 사운드 그리고 패드의 촉감까지, 감각을 자극해 플레이어가 게임이 현실인 것처럼 착각하도록 한다. 사실적인 감각뿐만 아니라 논리적 설명도 차용하고 있다. 게임 등장인물의 행동 원인, 혹은 주어진 선택지에 대해서 설명하기 위해 논리적 근거를 든다. 다양한 예시 혹은 통계를 통해 행위를 정당화하고 때로는 플레이어에게 선택지를 주기도 한다. 이때, 논리적 근거의 기저에 깔린 것이 학문이다. 학문은 논리적 설명을 뒷받침하는 이론을 제공하여 설득력을 높인다. 흔한 게임 플레이어가 알지 못하는, 알고 싶지도 않은 이론을 들이밀며 강요하는 것이 아닌,  보이지 않는 곳에서 게임의 스토리와 선택지를 지지하고 있다. 


문명의 외교 창에는 현실주의와 자유주의 이론에 기반한 선택지가 있다.

문명이 삼켜버린 정치외교학 역시 뒷 배경에서 게임을 그럴듯하게 만들어준다. 국제 정치학에서 중요한 이론으로 '현실주의' '자유주의' 이론이 있다. 현실주의는 국제 사회가 무정부 상태이기 때문에 국가 간의 힘의 균형(Balance of Power)에 의해 질서가 맞춰진다고 주장한다.  반면, 자유주의는 국가 간에 무정부 상태인 것은 맞지만 국제 제도(International Institution)와 같은 국가 간의 협력을 통해 질서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문명에서 플레이어는 다른 국가에 대해 힘으로 대항하거나 협력하는 선택을 내린다. 강한 군사력으로 타 국가의 침입을 막아내거나, 동맹과 국제회의를 통해 협력할 수도 있다. 이처럼 문명의 선택지 기저에는 현실주의와 자유주의 이론이 깔려있다. 그러나 이런 이론은 플레이어에게 직접적으로 언급되지 않는다. 문명에서 정치외교학의 역할은 그럴듯하게 만들어주는 것이지, 플레이어를 정치외교학도로 교육시키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문명6에선 세계 의회 같은 자유주의 요소가 강화되었다.

문명에는 현실주의 자유주의 이론 외에도 다양한 이론이 반영되어 있다. 대표적으로 지정학적 요소와 정치 체제의 국제적 확산(Diffusion) 같은 이론이 깔려있다. 다양한 정치외교 이론은 국가 간 대결을 다루는 문명이라는 게임을 훨씬 더 현실적이게 만들었다. 다른 게임에 비해 감각을 자극하지 않아도, 논리 구조에서 현실성을 가져오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문명을 현실감 있게 받아들인다. 문명 외에도 트로피코(Tropico) 시리즈 역시 정치외교 이론이 반영된 게임이다. 게임 기획과 개발에 있어서 단순히 기술력과 참신한 아이디어뿐만 아니라 논리적인 연결이 중요하고, 학문이 이를 보충해줄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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