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LAYER SYSY Apr 28. 2022

'간접'경험의 저주

직접 할 수 없다는 한계가 낳은 우울함

경험하고 싶어.


인간은 경험을 먹고사는 동물이다. 어떤 일이 힘들든, 쉽든 그것이 특정한 경험을 준다면 추억이 된다. 인간은 새로운 경험을 계속해서 갈망한다. 새로움이 없는 삶은 권태라는 함정에 빠져 무기력해지며 발전으로 나아갈 수 없다. 어떤 의욕도 생기지 않는 우울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부는 끊임없는 도전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계속되는 도전이 새로운 경험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경험이라는 것은 단순히 노력의 측면뿐만 아니라 운의 요소도 중요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있어서 노력만큼이나 중요한 요소는 운이다. 어떠한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는 기회조차도 운이고, 그 상황을 해쳐나가는 과정에서도 운이 작용할 수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평생 주어지지 않을 만한 희귀한 일이 누군가에게 벌어져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러기에 새로운 경험이라는 것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닌, 어쩌면 일부에게 치중되는 요소가 될 수 있다.


새로움이 모든 사람들에게 직접 주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인간은 새로움을 추구하는 종의 특성 때문인지 해결책을 만들었다. 바로 간접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다. 언어가 존재하던 이전 시기, 인류는 라스코의 한 동굴에서 자신의 사냥이라는 경험을 기록하고 전달하기 위해 그림을 그렸다. 언어가 만들어지자 그들의 경험은 노래가 되었고, 문자와 함께 글이 되었다. 그림, 노래, 글이라는 매체를 통해 인간은 누군가가 처했던 상황에 빠져들 수 있었고 새로운 경험을 얻을 수 있었다. 기술의 발전과 함께 이 세 가지 매체는 영상이라는 하나의 매체가 되어 사람들에게 보다 생생한 경험을 전달해주었다. 보다 생생한 경험을 추구하며 간접 경험은 발전했다.



간접 경험의 저주


그런데 그 어느 시절보다 간접 경험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현대 사회에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극심한 우울을 겪고 있다. 이야기로만, 글로만 하던 경험을 넘어서 시각 매체로 보다 생생하게 간접 경험을 하고 있는데 경험을 추구하는 인간이 우울하다니 이상하게만 느껴진다. 간접 경험이 보다 생생 해지며 인간은 한 가지를 잃고, 한 가지를 얻었다. 인간은 더 이상 상상하는 힘을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눈에 비치는 시각적 정보의 노예가 되어 상상하지 않고 고민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자 간접 경험에서 오는 상상의 유희가 떨어지게 되었다. 영상 매체가 나오기 전, 책을 읽은 독자는 주인공이 어떤 모습일까 활자에 의존에 스스로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이미지를 만드는 행위는 그들의 머리를 즐겁게 했음에 틀림없다. 돈키호테 역시 본 적 없는 도로테아 공주를 자기 머릿속으로 그려내며 여행을 하지 않았는가.



경험이 생생 해지며 인류에겐 모순적인 욕망이 생겨났다. 간접 경험을 '간접'으로 느끼는 것을 넘어서 '직접' 경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과거에 비해 많은 기술적 진보가 이뤄지며 많은 경험이 보다 보편적인 사람들에게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허용되었다. 특히 교통 통신의 발달로 과거에는 꿈꿀 수도 없던 해외여행, 외국인과의 교류가 가능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영역은 직접 경험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것은 안타깝게도 인간이 기술 발전을 통해 퇴화시킨 상상력이라는 능력을 통해 탄생한 간접경험이다. 우리는 어떠한 기술 진보를 이뤄낸다 하더라도 오크와 엘프가 공존하는 중간계에서 용사로 직접 살아갈 수 없다. 상상력이 줄어드는 우울한 사회에서, 상상력으로 만든 세계를 직접 경험할 수 없어 더욱 우울해지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간접 경험은 돌파구 없이는 우울함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할 뿐이다.



기술은 저주를 풀어줄까


그런데 최근의 기술 발전 양상은 이러한 간접 경험의 문제점을 돌파하기 위한 솔루션을 제시하는 듯하다. 인류는 기존의 간접 경험에서 참여하는 경험의 속성을 강조하는 새로운 매체를 만들어냈다. 게임은 선형적이고 일방향적인 기존의 구조를 거부하고 수용자가 참여하는 능동적이고 쌍방향의 구조를 만들어냈다. 이를 통해 수용자는 이야기 속에 참여하여 행동하기도, 이야기 속 여러 가지 선택지를 결정해가기도 한다. 단순히 매체 제작자에 의해 만들어진 세계에 수동적으로 순응하지 않고, 여러 수용자 간에 상호작용으로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즉 게임은 기존 간접 경험 매체의 한계인 직접 참여의 욕구를 채워줬다.



따라서 앞으로 게임이 추구해야 할 방향은 명확하다. 새로운 경험의 보다 생생한 체험을 가능하도록 하는 것, 그 새로운 경험이 인간의 우울함이라는 종양이 더 이상 커지지 않도록 무한한 상상력과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다. 주어진 문제를 조건과 규칙에 맞게 풀어내는 것은 게임의 본질이다. 직접 경험에 유사한 참여를 제공하는 VR, 메타버스와 같은 셉과 기술의 발전을 통해 게임은 인간의 우울이라는 지독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게임도 언젠가 영상 매체가 그랬듯 간접경험의 저주로 이어질지 모른다. 하지만 게임이 등장했듯, 게임이 한계에 봉착하는 순간 새로운 매체가 나타날 것이다. 어떻게든 인간은 본성을 이루기 위해 간접경험의 저주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칠 것이니.

작가의 이전글 좋은 퀘스트의 조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