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LAYER SYSY Apr 21. 2022

좋은 퀘스트의 조건

엘든링 퀘스트 비평을 통한 퀘스트의 조건 찾기

들어가는말


엘든링이 무서운 속도로 판매 기록을 갈아치우고 높은 평점을 획득하여 게임계의 핵심 이슈로 등극했다. 특이 취향으로 여겨지던 ‘소울라이크’ 장르를 대중적으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엘든링은 그 전 어떤 소울 게임보다 특별하게 평가받는다. 게임 평론가와 유튜브를 봐도 엘든링을 찬양하는 평가 일색이다. 기존 소울류에서 장점으로 여겨지던 전투는 더욱 발전된 재미를 주었다. 모험 역시 첫 번째 오픈월드임에도 호기심을 자극하여 여기저기 돌아다니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 워쳐3와 젤다 야생의 숨결에서 아쉬웠던 전투가 재밌는 오픈 월드가 펼쳐졌다. 하지만 소울라이크 마니아인 나는 80시간의 플레이 이후 엘든링의 일부분이 힘들게 느껴졌다. 이해하기 힘든 스토리는 전달 방식의 차이라 하더라도, 무엇을 어디서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안 오는 퀘스트는 전작에 비해서 너무 불편했다. 전작과 다를 게 없어 보이는 퀘스트 진행이 왜 유독 엘든링에서 힘들게 다가오는 걸까?



퀘스트(QUEST)의 본질


우리가 어릴 적부터 해오던 대부분의 게임에는 ‘퀘스트’라는 것이 존재했다. 메이플스토리 같은 RPG 게임에서 달팽이를 사냥 해오라는 것부터, LOL의 일일 퀘스트까지 다양한 장르에 다양한 퀘스트가 있다. 그럼 퀘스트는 무엇일까? 퀘스트의 정체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고 주어지니까 해왔던 유저가 많을 것이다. 하지만 좋은 퀘스트와 나쁜 퀘스트를 구분하려면 퀘스트의 정체를 명확하게 밝혀내야 한다. 퀘스트(Quest)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찾기 어려운 것을 오랫동안 탐색하거나, 달성하기 어려운 것을 시도하는 것’
(a long search for something that is difficult to find, or an attempt to achieve something difficult.)                                                 
                                                                                    —Cambridge English Dictionary


퀘스트의 정의를 통해 알 수 있는 속성은 다음과 같다. 1) 퀘스트는 달성하기 어려운 것이다. 오랜 시간이 걸리거나 누구나 하기엔 어려운 의미 있는 일이다. 게임에서 플레이어가 아닌 다른 NPC는 해결할 수 없는 어려운 일이어야 플레이어가 해당 퀘스트를 하는 의미가 있다. 즉 퀘스트에는 플레이어가 꼭 해야 하는 ‘필요성’이 있어야 한다.


게임에서 만나는 다양한 퀘스트는 전통적 의미에서 요청의 의미를 추가한다. NPC나 운영자는 플레이어에게 보상 조건을 걸고 요청을 한다. 요청의 의미가 추가된 퀘스트는 전통적 정의에서 없던 속성을 더해준다. 일상생활에서 요청을 받았다고 생각해보자. 기꺼이 받을 수 있는 요청과 껄끄러운 요청의 차이가 무엇일까? 어려움 없이 받을 수 있는 요청은 2) 명시적이고 3) 결과가 예측 가능하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명확하고, 행위로 인한 결과가 끼치는 영향을 예측할 수 있다. 정리하자면 좋은 퀘스트는 꼭 내가 필요하며, 무엇을 해야 하는지 주어지고, 그로 인한 결과가 보이는 것이다.




반면 일상에서 받기 싫은 불쾌한 요청을 생각해보자. 1) 꼭 내가 아니어도 할 수 있는 일은 하기 싫다. 예를 들면 변호사 사무실에 사람이 와서 변호사에게 자기 집 청소를 해달라고 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변호사는 청소를 할 수 있는 ‘능력’은 있지만, 굳이 자신이 해야 할 필요성이 없으므로 청소 요청을 불쾌하게 생각할 것이다. 2) 불명확한 요청 역시 하기 싫다. 요청은 하는 사람이 간절한 일이다. 요청을 한다면 적어도 대상과 방법은 알려줘야 요청을 받는 사람도 부담이 없다. 어지간한 신뢰가 없다면, 누구도 자기가 할 줄 모르거나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선뜻 요청을 받진 않을 것이다. 3) 내 행위의 영향력이 예측되지 않으면 요청을 받기 어렵다. 요청에 의해 한 행위로 부정적인 결과가 난다면 그 요청은 기꺼이 들어줄 수 없다. 부정적인 결과가 예측되면 대비를 하거나 방법을 바꿀 수 있겠지만, 아예 영향이 파악이 안 되면 보수적인 사람은 들어주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처럼 하기 싫은 요청은 좋은 요청의 속성이 결여된 것이다.



좋은 퀘스트를 가지고 있는 게임


좋은 퀘스트의 속성으로 실제 퀘스트로 찬사를 받은 게임을 분석해보자. 위쳐3는 좋은 퀘스트의 대명사로 끊임없이 뽑힌다. 위쳐3의 퀘스트가 좋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위에서 살펴봤던 속성을 모두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위쳐3에서 등장하는 1) 퀘스트는 대부분 주인공 게롤트의 힘을 필요로 한다. 세계관과 밀접하게 괴물을 퇴치하기 위해선 위쳐의 힘이 필요하다. 위쳐 중에서도 상급 위쳐인 게롤트는 남들이 쉽게 할 수 없는 일을 해낼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 있고, NPC들은 게롤트의 특별한 능력이 필요한 퀘스트를 준다. 예를 들면 붉은 남작 퀘스트에서 남작은 게롤트에게 자신의 아이와 관련된 괴물에 대한 탐색을 부탁하면서 이유를 추가한다. 다른 사람들이 갔지만 모두 살아서 돌아오지 못했기 때문에 상급 위쳐인 게롤트에게 부탁하는 것이다.


위쳐3의 퀘스트는 대부분 2) 무엇을 어디서 해야 할지 명확하다. 대상은 대부분 NPC와의 대화에서 나타난다. 강가의 요괴를 잡아달라, 공동묘지의 원혼을 없애달라는 식이다. 어떻게 해야 할지는 알려주는 경우도 있고 추론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어디로 가서 뭘 하면 된다고 직접적으로 알려주기도, 유령은 이런 속성을 가지고 있으니 주의하라고 넌지시 던져주는 NPC도 있다. 그럼에도 플레이어는 퀘스트를 받으며 어떤 식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위쳐3의 퀘스트는 대부분 3) 결과를 예측 가능하다고 ‘착각’하게 만든다. 플레이어는 퀘스트를 받으며 결과를 예측하게 된다. 퀘스트와 관련된 다양한 인물의 손익을 계산해본다. 특정 행위가 누군가에게 좋은 반면 누군가에겐 파멸적인 결과를 야기할 것이라 예측한다. 그런 예측에 따라 플레이어는 퀘스트를 기꺼이 수행한다. 위쳐3가 위대한 게임인 이유는 여기서 한 발자국 나아갔기 때문이다. 인간의 예측 가능성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운명이라는 결과로 보여 준다. 이는 요청을 받는 인간의 한계와 나약함을 보여주는 좋은 시도이다. 이처럼 위쳐3는 퀘스트의 기본 속성을 갖추고, 이를 한번 더 발전시킨 훌륭한 퀘스트로 게임을 채워 넣었다.



엘든링의 퀘스트


엘든링의 퀘스트는 좋은 퀘스트의 속성을 가지고 있을까? 일부는 있고 일부는 없다. 1) 퀘스트의 필요성은 부합한다. 엘든링에서 NPC가 주는 퀘스트는 마음이 꺾이지 않고 광활한 세상을 여행하는 ‘빛바랜 자’만 할 수 있는 것이다. 단순히 무엇을 모아다 달라는 게 아닌, 월드를 돌아다니며 맞이하는 적을 처치하거나 기이한 아이템을 습득해 전해주는 일이다. 게임에서 ‘빛바랜 자’는 많지만 마음이 꺾이지 않은 것은 주인공뿐이다. 따라서 퀘스트에서 플레이어의 필요성은 존재한다. 또한 3) 다양한 행위자의 이익 관계를 비교적 명확하게 보여줘 행위의 결과가 예측 가능하다. 특히 위쳐3에서 장점으로 언급한 ‘착각’의 요소를 넣어 극적 효과를 높인다. 플레이어는 NPC의 요청을 들어주고 해피엔딩을 예상하지만, 오히려 플레이어의 행동은 NPC에게 비극적인 결과로 나타난다.


추가 설명 없이 본 단서만 보면 참 막막하다.


반면 2) 퀘스트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명확하지 않다. 명시성이 떨어진다는 점이 엘든링 퀘스트의 가장 큰 특징이자 문제점이다. 엘든링에서 퀘스트는 다른 게임과 달리 친절한 UI로 설명되지 않는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기록되는 UI가 존재하지 않는다. 심지어 플레이어가 받은 퀘스트를 확인할 수 있는 UI도 없다. 기록되지 않는다는 점은 어떻게 보면 현실성을 증가시킨다. 우리가 누구에게 요청을 받으면 그게 핸드폰에 자동으로 입력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퀘스트를 받으면 유저는 대화를 통해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추론한다. 그리고 게임이 아닌 현실의 종이에 기록한다. 갑자기 퀘스트로 인해서 게임과 현실의 장벽이 무너진다.


기록되지 않는 것까지는 감성이라고 할 수 있으나, 진짜 문제는 단서도 알려주지 않는 경우이다. NPC는 그저 자신이 처한 상황을 말하며 호소하거나, 아예 입을 닫아버린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지도에 나오지 않는데,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안 알려준다. 금가면 퀘스트가 대표적이다. 금가면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 NPC이다. 그 옆을 따라다니는 제자 NPC가 힌트를 주지만, 그 역시 퀘스트 중간에 사라진다. 마법사 셀렌 역시 막바지에 불명확한 부탁으로 진행을 답답하게 만든다. 대답하지 않는 벽을 보며 퀘스트가 어디서 발생할지, 무엇을 줘야 할지 멍하니 추측해야 한다. 현실에서 이런 과묵한, 혹은 답답한 사람의 요청을 받아줄 성인군자는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엘든링이 선택한 불편한 퀘스트 UI는 현실성을 높이는 좋은 도구이다. 최근 게임에서 유행하는 정신없고 화면을 텍스트로 가득 채우는 UI에 비해 세련된 느낌을 준다. 엘든링이 의도한 불편함이 잘못된 건 아니고 오히려 시대를 앞서간 선택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퀘스트의 속성을 제대로 갖추지 않은 답답한 퀘스트는 개선이 필요하다. 맵 구석구석 다 살펴봐야 할 수 있는 퀘스트, 모든 요소를 빠짐없이 핥아야 할 수 있는 퀘스트는 매니아적 영역이라 보기에는 너무나도 아쉽다. 우리는 게임을 하면서 고민이 하고 싶지 의미 없는 노동을 기대하지 않는다.



전작과 같은 방식, 다른 결과


사실 엘든링에서 보여준 퀘스트 진행 방식은 전작 소울 시리즈의 퀘스트와 크게 다르지 않다. 넌지시 던져주고 맵을 핥아야 해결 가능한 경우가 많다. 그런데 왜 다크소울 시리즈에서 느끼지 못했던 불편함이 엘든링에서는 나타나는 걸까? 전달 방식이 더 모호해지는 등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주요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생각한다.


다양한 지역이 순서 없이 존재하는 오픈 월드

많은 평론가가 지적하듯 1) 오픈 월드가 선형적 진행을 파괴했기 때문이다. 퀘스트라는 것은 선형적으로 정해진 순서가 있다. A필드에서 먼저 NPC(1)의 요구를 들어줘야 B필드에서 NPC(1)을 다시 만나 새로운 요구를 받을 수 있거나 NPC(2)와 퀘스트를 시작할 수 있는 등 진행 순서가 정해져 있다. 그런데 엘든링의 오픈 월드는 선형적 진행이 사실상 불가능한 수준으로 자유롭다. 첫 번째 지역인 림그레이브를 제외한다면 나머지 지역은 플레이어의 마음대로 진행할 수 있고 정석 진행 순서 유도도 명확하지 않다. NPC가 하나의 지역에서만 반복적으로 등장한다면 비선형적 월드로 야기될 문제는 없다. 그 지역을 진행하는 동안 반복적으로 만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엘든링의 NPC 대다수는 다양한 지역에 순차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진행 순서가 바뀌면 퀘스트가 증발해버린다. 전작 다크소울 시리즈는 지역 순서가 어느 정도 정해져 있었다. 그렇기에 여러 지역에 걸친 다크소울3의 지크벨트와 같은 NPC가 나오더라도 퀘스트가 연결성이 있고 스토리에 따라 흘러간다. 한편, 엘든링의 최대 장점인 오픈 월드는 다크소울식 퀘스트의 단점을 부각하는 기능을 해버렸다.


큰길을 따라 움직이면서 NPC를 놓치기 쉽다.

보다 자세하게 월드에서 지역으로 들어가면 2) 지도와 큰 길이 선형적 진행 방식을 유도해 퀘스트를 수행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앞에서는 비선형적 방식이 문제를 야기했다면서 여기서는 선형적 방식이 문제를 유도했다니 무슨 소리인가? 월드 차원의 거시적인 플레이는 순서가 없는 비선형적이게 되었지만, 지역 단위로는 선형적 플레이가 더욱 강조되었다. 지도와 지도에 그려진 큰길은 선형적 플레이를 유도한다. 사람은 모르는 지역에 가면 큰길을 따라 움직이기 마련이다. 대부분 지역 큰길의 끝에는 지역의 최종 보스가 있다. 큰길을 따라 움직이다 보면 해당 지역의 보스를 잡고 클리어해버리는데, 일부 퀘스트는 해당 지역의 보스가 죽으면 증발해버린다. NPC가 큰길에 있으면 문제가 덜하겠지만 대다수가 큰길에서 벗어난 지역에 있기 때문에 선형적으로 진행하다 보면 발견하기 어렵다. 기존 다크소울 시리즈에서는 지도가 주어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지역을 꼼꼼히 돌아다녀야 하고 이 과정에서 숨겨져 있는 NPC를 만나 퀘스트를 진행했다. 반면 지도로 선형적 진행이 유도된 엘든링은 큰길을 따라다니며 NPC보다 지역 보스를 먼저 만나 퀘스트가 증발되는 문제가 심해졌다.



끝으로


게임은 기존의 미디어와 달리 참여를 통한 경험을 강조한다. 책과 영상이 일방향적 경험을 제시한 것과 달리, 게임은 플레이어가 참여해서 움직여야 경험을 전달할 수 있다. 게임 개발자는 다양한 경험을 플레이어에게 주기 위해 여러 장치를 심어둔다. 퀘스트도 마찬가지다. 개발자는 플레이어에게 문제를 해결하고 사람을 돕는 경험을 주기 위해 퀘스트를 게임 내에 배치한다. 그런데, 퀘스트라는 요소는 전투, 모험과 같은 다른 요소와 상호작용을 하며 플레이어에게 경험이 된다. 퀘스트를 짜는 데 있어서 다양한 요소와의 관계가 적절하게 고려되지 않는다면 제대로 된 문제 해결의 경험을 주지 못한다. 소울 시리즈에서 잘 작동하던 퀘스트의 진행 방식이 엘든링에서 유독 이야기가 많은 것은 플레이어가 다양해졌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게임 자체의 근본적인 모험 시스템이 달라졌음에도 진행 방식을 똑같이 유지한 고집 때문에 엘든링의 퀘스트는 유독 좋은 경험을 주지 못한다. 다음 작품에서는 퀘스트의 진행 방식에 대한 수정이 이뤄지고 출시된다면 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프롬소프트웨어가 추구하는 간접적이고 은유적인 스토리 전달 방식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그 이야기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고민할 수 있도록 퀘스트의 진행이 바뀌길 기대해본다.

작가의 이전글 클라이밍은 재미있는 게임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