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넷플릭스의 시대를 살고 있다. 다양한 컨텐츠가 넷플릭스를 통해 끊임없이 공급되어 지루할 틈이 없다. 넷플릭스는 전통적인 콘텐츠뿐만 아니라 다양한 실험 컨텐츠를 제공한다. 대표적인 작품이 오늘 중점적으로 살펴볼 ‘블랙 미러: 밴더스내치’이다. 인터랙티브 무비. 아직까지는 생소한 이 장르는 영화에 상호작용을 추가했다. 영화를 보는 동안 몇몇 분기점이 나오고 분기점에서 시청자는 ‘선택’을 해야 한다. 선택에 따라서 서사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블랙 미러: 밴더스내치’는 분기에 따른 선택을 잘 활용해 다양한 결말을 제공하여 호평을 받았다. 그런데 호평 중 나의 관심을 끄는 표현이 있었다. ‘게임 같은 영화’. 영화가 게임 같다니 무슨 말일까?
게임스럽게, 상호작용
다른 매체는 없는 게임만의 특징은 상호작용이다. 일방적으로 컨텐츠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플레이어의 결정으로 시스템과의 상호작용을 하는 것이 게임이다. ‘게임 같다’는 표현은 상호작용이 있다는 뜻이다. 단적인 예로 게임북을 생각해보자. 게임북은 기존의 책 매체에 게임의 상호작용 속성을 더했다. 책을 그냥 읽어 내려가지 않고, 중간중간 자신의 선택에 따라서 결과는 바뀐다. 여기에 디지털 게임이 가지는 퍼즐 같은 요소를 추가해 ‘재미’를 준다. 게임북의 진행을 위해서는 독자와 책 시스템의 상호작용이 필요하다.
블랙 미러:밴더스내치에 등장하는 선택지. 시간이 가기 전에 결정해야 한다.
영상 매체에서 ‘게임 같다’는 표현 역시 상호작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용된다. 인터랙티브 무비는 게임 같다는 평가를 많이 받는데 그 근거로 시간제한 안에 선택지를 골라야 하는 점을 든다. 간단하게 주인공이 아침으로 무엇을 먹을지부터, 주인공의 미래를 크게 좌우할 결정까지 시청자는 선택하여 내용을 결정할 수 있다. 즉, 시청자의 결정과 영화의 시스템이 상호작용해서 결말까지의 여행을 떠난다는 점에서 기존 영상 매체와는 달리 ‘게임 같은’ 영상 매체가 된다. 그런데 이쯤에서 또 궁금한 점이 생긴다. ‘게임 같은’ 영화는 게임일까, 혹은 게임이 될 수 있을까?
게임의 상호작용은 무엇일까?
인터랙티브 무비가 게임인지 생각해보기 전에 게임에서 유저는 상호작용을 통해 무엇을 얻어갈까? 게임 속에서 유저는 자신의 결정만으로 일방적으로 경험을 만들지 못한다. 유저의 결정은 게임 내 시스템과 상호작용을 해 경험을 만든다. 게임 시스템은 유저에게 일종의 ‘학습’을 시킨다. 게임이 요구하는 기술을 제대로 연마했는지 장애물을 통해 ‘확인’하고, 제대로 학습이 된 유저에게 ‘보상’을 준다. 슈퍼마리오 게임은 유저가 ‘뛰기(수직)’와 ‘달리기(수평)’ 기능을 제대로 학습시키기 위해 다양한 장애물을 준다. 유저는 자신이 배운 기능을 통해 장애물을 해결하며 제대로 된 학습을 확인한다. 게임 시스템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유저는 학습되는 경험을 얻어간다.
게임의 상호작용의 특성은 학습이다. 이점을 염두하고 다시 인터랙티브 무비 장르로 돌아가 보자. 인터랙티브 무비는 ‘게임 같은’ 영화를 뛰어넘어 게임이라 부를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불가능하다. 인터랙티브 무비의 상호작용은 게임의 상호작용의 특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현재(2022년 기준) 다양한 인터랙티브 무비가 있지만, 대부분의 인터랙티브 무비의 상호작용은 ‘시간 내 선택지 고르기’에 한정된다. 문제는 대부분의 선택이 뚜렷한 근거를 가지고 있지 않다. 선택에 따라 결과가 바뀌긴 하지만 왜 결과로 이어지는지 논리적인 연결고리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이전의 선택에서 다음의 선택으로 넘어가며 이번엔 어떻게 선택을 해야 하는지 학습되지 않는다. 학습이 없는 단순한 선택지 고르기는 게임이 아니다.
선택을 게임으로
선택은 게임이 될 수 없을까? 당연히 게임이 될 수 있다. 선택이 결과를 논리적으로 통제한다면 게임이 된다. 게임북을 생각해보자. 일부 게임북에서 선택은 근거가 있다. 세 명의 검사관 중 어느 검사관한테 갈지 고르는 질문에는 검사관의 기록 상태나 질문 행태를 보고 선택을 내린다. 다음에 비슷한 문제가 나오더라도 독자는 선택의 근거를 찾으려고 노력할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이전 글에서 언급했던 게임의 특징 중 ‘능동적 통제’와 통하는 부분이 있다. 선택이 결과를 통제한다는 확신을 주지 못하면 유저는 선택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없다. 어떤 선택을 하든 비논리적 결과가 나오는데 뭐하러 고민해서 선택하겠는가? 반대로 자신의 선택이 결과로 이어진다는 확신이 들면, 유저는 많은 고민을 하고 신중하게 선택을 내릴 것이다.
근거가 있는 선택은 학습된다. 선택에 따른 결과를 보면서 유저는 선택과 결과의 논리적 메커니즘을 익힌다. 게임 시스템을 이해하고 나면 유저는 자신의 의도에 따른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선택을 한다.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은 이 과정을 제대로 보여주는 ‘게임’이다.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의 서사는 영화만큼 훌륭하지만 선택에는 근거가 있고 결과와 논리적으로 연결된다. 게임이 가지는 대표적인 논리 시스템은 다음과 같다. 한 인물의 죽음은 다음 사건의 선택지에 영향을 미친다. 이 시스템을 이해하면 유저는 선택에 신중을 기한다. 그렇게 연속되는 선택 속에서 학습되며 유저는 자신이 의도한 결말로 향한다.
수많은 선택이 논리적으로 연결되어 결과의 차이를 만든다.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은 ‘영화 같은 게임’으로 많은 찬사를 받았다. 이 작품이 영화만큼 훌륭한 서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게임 같은 영화’가 아닌 ‘영화 같은 게임’인 이유를 생각해보자. FPS 요소와 캐릭터를 조작하는 등 게임의 요소를 제외하고 선택만 봤을 때도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은 다른 인터랙티브 무비와 달리 게임이다.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에서의 선택은 제한되지 않고, 논리적으로 결과로 이어지며, 학습된다. 특정 선택지를 골랐다 해서 바로 배드 엔딩으로 끝나지 않는다. 끊임없이 뻗은 선택지를 거치며 유저는 다음에 어떤 선택을 내려야 할지 학습된다.
통제의 욕구
아직까지 인터랙티브 무비의 상호작용은 그저 멀티 엔딩으로 나누는 용도이다. 멀티 엔딩은 말 그대로 다양한 결말이 있다는 뜻이다. 시청자의 선택에 따라서 서사의 결말이 달라진다. 기존 영상 매체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특징이다. 시청자는 선택지를 눌러 멀티 엔딩으로 가는 길을 만든다. 자신의 선택에 따라 결말이 달라질 수 있다니 얼마나 흥미로운가? 그런데 무엇을 근거로 선택할 것인가? 그리고 그 선택이 해당 결말로 인도하는데 설득력을 가지는가? 논리가 없는 멀티 엔딩은 그저 엔딩 쪼개기에 불과할 뿐이다.
인터랙티브 무비의 멀티 엔딩은 그만큼 더 많은 자원을 필요로 한다. 멀티 엔딩이 더 큰 의미를 가지기 위해선 철저한 논리에 의해 짜인 선택지가 필요하다. 또한 선택을 내리는데 근거를 제공해줘야 한다. 블랙 미러: 밴더스내치를 시청하면서 가장 당황스러웠던 것은 갑자기 배드 엔딩이 나오며 선택지로 회귀하는 것이었다. 시청을 시작한 지 10분이 안돼서 나온 배드 엔딩은 앞으로의 선택을 신중히 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선택의 의욕을 꺾어버렸다. 선택에 필요한 근거는 제대로 나오지 않았고, 결과는 상상한 것과 달랐다. 능동적 통제가 되지 않는 선택지는 그저 지도에 펼쳐진 다양한 도로일 뿐, 유저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