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9, 2022
최근 메타버스 공모전에 출품할 로블록스 게임을 만들던 중 무서운 일을 겪었다. 게임 테스트 도중 NPC가 혼자 날뛰며 전등 위를 뛰어다녔다. 그 상황이 웃기면서도 섬뜩해 팀원들에게 알렸다. 맵 크기를 조정하기 위해 임시로 설치한 NPC가 위치 고정이 풀려 움직인 걸로 결론이 났다. 게임 속 인물들이 자아를 갖고 움직이는 상상은 흥미롭지만 섬뜩하다. 내가 게임 속 캐릭터가 아니라는 확신은 어디서 올까?
<1899>는 비주얼을 내세운 시대극으로 시작한다. 1899년, 다양한 국적의 이민자가 오른 미국으로 향하는 배가 유령선을 만나며 미스터리한 일을 겪는다. 결과적으로 이들은 1899년을 배경으로 한 시뮬레이션에 기억을 잃고 갇혔다는 것이 밝혀지며 장르는 SF로 바뀐다.
'1899년 유람선'이라는 메타버스에 갇힌 인물들은 그 프로그램을 다시 프로그래밍하고 회로 속은 헤매고 오류를 헤쳐나간다. 메타버스라는 걸 아는 소수의 인물과 아직 깨닫지 못한 다수의 인물은 영화 <매트릭스>와 흡사하다. 시리즈 속에서 '플라톤 동굴의 비유'도 직접 언급된다. '통 속의 뇌'는 이제 너무 유명해진 일종의 밈이다. 메타버스가 화두에 오른 지금 이 접근은 왜 다시 등장했을까?
플라톤이 말한 동굴의 비유는 유튜브 '5분 철학'채널을 참고해서 이해했다. 내가 이해한 바로는 현실인줄 알고 살던 사람들 중 한 명이 진짜 현실을 발견하고 다시 돌아와 사람들에게 이건 현실이 아니라 말하지만 그들은 믿지 못한다.라는 것이었다. 즉, 감각으로 느끼는 세계와 진짜 현실 세계는 다르다는 접근이다.
<1899> 속 상황이 정확히 일치한다. 미스터리 하게 등장한 인물 외에 처음부터 배에 오른 사람들이 있다. 그들 중 주인공은 차별을 이겨내고 여성으로서 의사가 되려는 인물이다. 그리고 가장 이성적이다. 뒷배경은 차치하고 이 인물은 자신과 사람들이 시뮬레이션 속에 있음을 가장 먼저 깨닫는다. 하지만 주변 인물들을 이를 이해하지 못한다. 나도 갑자기 누가 다가와서 지금 현실이 아니니 자신과 함께 탈출하자 하면 그 상황을 먼저 탈출하고 싶어질 것 같다.
'통 속의 뇌', 감각으로만 느끼는 세계를 연출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1899> 속 감각 세계는 지금도 가능해 보이는 프로그래밍 기술을 사용한다. 오류와 버그가 있고 해킹할 수 있는 현실에서 볼 법한 코딩으로 만든 공간이다. 이토록 현실적으로 연출된 이유가 있다. 감각 세계에 갇히는 건 그리 먼 미래가 아니기 때문이다.
메타버스를 너무 오래 해서 현실과 분간이 되지 않는 지경은 좀 멀리 나간 감이 있다. 하지만 꼭 메타버스에 접속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인간이 만든 데이터 속에서 살고 있다. 자연물이 아닌 인공물을 분간할 수 있어야 한다. 미디어에서 볼 수 있는 뉴스와 각종 썰, 구매 행태를 보여주는 데이터, 알고리즘은 인공물이다. 우리는 인공물에 기반에 반응하고 행동한다. 메타버스와 지금 우리의 현실은 크게 다를까? 죽으면 끝이라는 무시무시한 엔딩 말고
시리즈의 초반은 느리게 진행된다. 다양한 인물의 서사를 배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함께 풀어내 속도가 더디다. 그럼에도 관계가 탄탄히 쌓인다. 그 관계와 서사의 공통점은 비극과 후회 그리고 '이성'이다.
<1899>가 그려낸 1899년은 이성과 비합리의 혼재다. 과학의 발전으로 합리적인 생각은 커져갔지만 편견과 종교에 따른 비합리도 함께 커졌다. 커다란 배를 움직이는 석탄을 용광로에 넣는 인부가 마늘 목걸이를 걸고 있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유령선의 유일한 생존자인 한 소년이 자신들의 배에 타자 이 어린이가 비극의 원인이라 지목하며 바다에 던지자 주장한다. 이들은 이성적이지 않다. 그 상황을 막아보려는 인물이 앞서 말한 주인공이다. 그리고 그만이 시뮬레이션 속임을 인지하고 빠져나간다.
감각을 그대로 믿지 않거나 혹은 믿을 수 없을 지경에 다다랐을 때 생기는 것은 '의심'이다. 지금 내가 보고 느끼는 현상이 현실인지 의심할 때 유람석(시뮬레이션) 속 인물들은 그곳을 빠져나갈 희망이 생길 것이다. 극 중 인물들도 한 명씩 'This can't be real'(이건 현실일 수 없어)를 내뱉는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거대한 해일이 우리를 집어삼킬 때다.
우리는 메타버스 속에 살고 있지 않다. 그러나 오늘 하루 나를 행동하게 만든 것들은 무엇이었는지 생각해 본다. 아침에 일어나 유튜브에서 본 뉴스와 그 댓글들, 인스타그램에서 본 설날 가족 썰, 내 하루를 책임질 플레이리스트, 네이버지도의 평점...
우리는 이제 인공물에 완전히 노출된 채 살아간다. 너무 자연스러워 사람이 만들었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에 따라 반응하고 행동한다. 특히, 우리가 수시로 접하는 미디어가 만드는 어떠한 '이미지'를 경계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많은 얘기가 나오는 MZ세대의 회사썰과 여기서 파생된 여러 콘텐츠의 반응이 흥미롭다. 나도 인턴 기자의 연기를 볼 때 꼭 나를 보는 듯싶어 웃겼다. 그리고 회사썰이 나오고 그 반응을 볼 때 편하지 않았다. 나도 새로 만나는 사람을 볼 때 그 이미지에 기반해 빠르게 판단 내렸을 때 선득했다.
너무나 믿기 쉽고 편할 때 그 편안함을 의심해야 한다. 믿기 편한 사실은 즉 감각적으로 반응할 수 있는 사실이다. 그러한 감각만을 믿으며 동굴 속에만 있게 된다. 부지런히 의심해야 한다. '저게 진짜일리 없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