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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원 Apr 02. 2023

대립적인 것은 상보적인 것

바빌론, 2022

들어가며

작년부터 올해까지 가장 여러 번 관람한 영화는 <바빌론>이다. 초반부터 엔딩까지 쉼 없이 질주해 지루할 틈이 없기도 하고, 눈도 귀도 즐거워 여러 번 관람할 수 있었다. 또 하나는 친구를 한 명씩 데려가 같이 보고는 반응을 살피는 재미도 있었다. 가장 궁극적으로는 이 영화가 취하는 할리우드에 대한 '태도'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난 네가 너무 싫어, However!

피식 대학의 정재혁 원소주 리뷰 영상으로 화제가 된 밈이 있다. "난 네가 너무 싫어, 하지만! 네가 너무 좋아"와 같은 애증의 관계를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문장이었다. <바빌론>을 보고 난 후 바로 생각났다. 역시 여러 후기에서 이 밈을 사용했다.


<바빌론>이 표현하는 할리우드는 저속하다. 일반 사회에서는 용납되지 않는 행동과 모습을 할리우드 내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행한다. 생명을 경시한다. 잭의 영화를 촬영하는 장면에서 엑스트라를 포함한 많은 사람이 다치고 죽는다.




너와 평생 함께하고 싶어

그렇다면 <바빌론>은 과거의 할리우드를 고발하는 영화일까? 엔딩의 매니가 과거를 회상하며 우는 듯 웃는 듯 우는 그 복잡 미묘한 표정이 판단을 흐린다. 그런 저속하고 악랄했던 할리우드지만 마냥 거부하고 혐오하진 않는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이런 점 때문에 영화를 계속 볼 수밖에 없었다. 감독인 데미언 셰젤이 이 영화를 통해 할리우드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 이런 할리우드는 반성하라는 걸까? 그런 할리우드가 있었기에 지금이 있으니 받아들이란 걸까? 


할리우드는 거부하지만 그 할리우드가 만든 발전은 치켜세운다. 매니가 할리우드의 과도기를 표현한 영화 <사랑은 비를 타고>를 본다. 관객도 그런 영화를 즐긴다. 그러면서 영화의 변천사를 훑는다. 할리우드의 과거를 회상한다. 그리고 울던 매니가 웃는다. 진짜 내 마음을 뭘까?



대립적인 것은 상보적인 것

결국 판단을 포기했다. 그러다 최근 김상욱 교수님의『떨림과 울림』을 읽고 힌트를 얻었다. '상보성'은 빛을 연구하다 나온 개념이라고 한다. 보통 물질은 파동이거나 입자다. 하지만 빛은 파동인지 확인하는 실험에서는 파동임을, 입자인지 묻는 실험에는 입자임을 나타냈다. 파동성과 입자성을 동시에 갖는다. 이를 보어는 '상보성'이라 불렀다. 


상보성의 개념을 만든 보어는 1937년 중국을 방문했다. 그리고 태극문양을 발견하고는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는 1947년 기사 작위를 받을 당시 직접 제작한 작위 문장에는 태극문양과 함께 'Contaria Sunt Complementa'라는 라틴어를 새겼다. '대립적인 것은 상보적인 것'


보어의 기사작위문장


흔히 누군가의 좋은 면과 나쁜 면을 함께 볼 때 우리는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려고 한다. 흔히 말하는 중립기어를 박는다. 그게 전혀 다른 두 분야임에도 그렇다. 예를 들어 역사적 위인의 성차별적 행동과 기록이 밝혀졌을 때, 그동안 추앙받았던 인물이 그랬을 리 없다는 듯, 혹은 그럴 수도 있지 등의 태도를 취하곤 한다. 둘 다 실제로 있었던 행동임에도 불구하고 그렇다. 중립기어를 박지 않아도 된다. 비판할 점은 비판해야 한다.


동시에 조금은 조심스럽지만 그가 만든 좋은 변화도 인정해야 할 듯싶다. 하지만 나 스스로도 조심스럽다. 하지만, 두 부분을 모두 인정하는 것에서 그쳐서는 안 된다. 비판할 점을 인정함으로써 다신 그런 인물과 사건이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



군대에서 독서모임이 있었다. 책을 읽고 간단히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비슷한 이야기가 나왔다. 자유와 평등을 위했던 여러 혁명과 사회운동은 폭력적인 면을 갖고 있었다. 이를 쉽게 생각하면 '자유와 평등을 위해서는 폭력이 필요한 것인가'하는 우울한 결말에 다다른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폭력 없이 이뤄낸 자유와 평등도 많기에 그런 사례에 더 집중하고 발굴해야 한다.


말이 껑충 뛰었지만 결국 하고 싶은 말은 양가적인 감정은 두 감정 모두 옳을 수 있다는 말이다. 꼭 하나의 일관된 태도만 가져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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