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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간 수집가 Feb 22. 2024

나를 화나게 만드는 그 사람을 박수 치고 칭찬하라

나는 흥미로운 영화를 보고 있는 중이다

중요한 것은 당신의 태도와 행동을 통제하는 것이 무의식적인 각인이 아니라 의식에 따른 의도여야 한다는 사실이다. 사방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상황의 대부분은 굳이 부정적으로 반응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이다. 당신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일이나 당신에게 개인적으로 그 어떤 나쁜 짓도 하지 않은 사람에게 왜 화를 내는가? 이 세상에서 이미 일어난 일은 바꿀 수 없으며, 마찬가지로 이미 화면에서 상영되고 있는 영화에 대해 당신은 아무 영향도 끼칠 수 없다. 대신 당신의 힘으로 영화 필름을 바꿀 수는 있는다. 화면을 향해 달려드는 것과 영사기를 새로 설정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두 가지의 생존 방식이며, 이 또한 당신의 선택에 달린 문제다.

- <트랜서핑, 해킹 더 매트릭스>



나의 태도와 행동을 통제하는 것이 무의식적인 각인이 될 경우 나는 예전의 꼭두각시 인형처럼 살아가게 될 것이다. 사방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상황에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리며 화를 내거나 부정적으로 반응하게 될 것이다. 아주 작은 일에도 웃고 울며 화내고 변덕을 부리며 엑스트라의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나의 태도와 행동을 통제하는 것은 철저히 나의 의식에 따른 의도여야 한다. 그리고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나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일들이다. 그 일들은 사회가 정한 규칙에 따라 형성된 펜듈럼에 의해 일어나는 일들일뿐 나와는 관련이 없는 일들이다. 그러므로 나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일에 부정적으로 반응하거나 화를 낼 필요가 없다. 이미 화면에서 상영되고 있는 영화에 대해 나는 아무 영향도 끼칠 수 없다. 내가 할 일은 그들의 영화가 재생되고 있는 화면을 깨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나의 영화를 재생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만든 영화, 사회가 요구하는 규칙이 지배하는 영화는 그것들 그대로 내버려 두자. 그것이 부정적인 것이라면 더욱더. 그 고리가 나를 낚아 채지 않도록 나의 의식을 깨워두자. 나의 의식을 깨워둔 채로 세상이라는 거울을 바라보면 나의 태도는 내가 결정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타인의 영화에서는 타인이 주인공이고, 사회의 규칙이 지배하는 영화는 사회라는 펜듈럼에 의해 유지되는 세계이다. 그러므로 그 영화 속에서 엑스트라로 비굴하게 연기하는 것, 화난 얼굴로 씩씩대며 연기하는 것을 그만두고 그 영화 속에서 빠져나오자. 그리고 나는 나만의 행복한 영화 필름을 영사기에 돌리자. 


나만의 행복한 영화 필름을 영사기에 돌리며 나의 의식을 매 순간 깨워두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게 만드는 상황이 일어났을 때 그 상황에 휘둘려 다시 엑스트라로 전락하기 쉽다. 다시 나의 태도를 결정하는 것이 무의식적인 각인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럴 때는 나를 화나게 만드는 상황에 직사각형 커다란 프레임을 씌우고, 나를 영화관 관객석에 앉힌 후 그 상황이 상영되는 영화를 보고 있다고 상상하자. 나는 어떤 영화 하나를 보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그 영화는 나의 영화와 별개로 진행되고 있는 타인의 영화, 펜듈럼의 영화이다. 그 영화 속에서 주인공이자 감독들은 각자 그들 나름대로의 규칙에 따라 연기하고 있으며, 때로 어떤 연기자들은 자신이 왜 그렇게 연기하는지도 모른 채 무의식적 각인에 따라 조종당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연기하는 영화를 흥미롭게 관찰하며 나는 그저 그들의 연기에 감탄하면 된다. 그들의 영화 속으로 비집고 들어가 그들과 똑같이 조종당하는 엑스트라로 전락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왜 타인의 영화 속으로 굳이 들어가 그들과 똑같이 무의식적 각인, 펜듈럼에 조종당하려고 하는가. 나는 나만의 규칙에 따라 나만의 영화를 재생하며 그들은 그들의 영화를 재생하도록 두면 된다.     




대부분의 경우에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게 만드는 상황은 무시하고, 그런 일에 대해 신경을 곤두세우지 말며, 당신의 세계의 층에서 보고 싶지 않은 것들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편이 좋다. 주의가 부정적인 상황에 들러붙도록 내버려 두는 순간, 그 사건은 당신의 현실로 흘러들어오기 때문이다.
감정이 아니라 태도를 통제해야 한다는 사실만을 기억하라. 의식을 깨워놓기만 하면 태도는 얼마든지 반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화를 내는 대신 당신을 화나게 하는 그 사람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 칭찬해 보라.


그러기 위해서는 매 순간 깨어있자. 그리고 나의 주의가 부정적인 상황에 들러붙지 않도록 하자. 나의 주의가 부정적인 상황에 들러붙는 순간 그 사건은 나의 영화 속으로 흘러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깨어있는 의식으로 타인의 영화, 사회가 만들어낸 펜듈럼을 바라보고, 그것에 박수를 보내자.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규칙을 가지고 열심히 영화를 상영하고 있으니 얼마나 칭찬받을 일인가. 그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영화를 볼 수 있으니 오히려 감사할 일이다. 

화를 내고 있는 사람을 보면 그가 얼마나 자신의 무의식적 각인에 따라 철저하게 훌륭한 연기를 하고 있는지 감탄하면 된다. 나를 화나게 만드는 사람을 보면 그 훌륭한 연기를 바라보며 칭찬해 주자. 그 연기는 어떤 배우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리얼하다. 그들은 다만 그들이 정한 규칙, 그들이 주입받은 무의식적 각인에 의해 움직이고 있을 뿐이다. 그 사실을 철저히 머릿속에 인식하고 실감 나는 영화와 연기를 바라보며 감탄하면 된다. 절대로 그 영화에 비집고 들어가 그 펜듈럼 안에 나를 종속시킬 필요가 없다. 

나를 화나게 만드는 사람을 보거든 그의 훌륭한 연기에 감탄하고 칭찬해 주고,

나를 부정적으로 만드는 상황을 만나거든 사회라는 매트릭스 속 펜듈럼의 복잡함에 감탄하며 손뼉 쳐주자.

그리고 나는 웃으며 나만의 영화에 집중하며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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