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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간 수집가 Mar 03. 2024

단식 6일 차 나는 천국에 있구나

남해 바래길 10코스 다랭이마을

단식 6일 차 오늘은 남해에서의 마지막 여행날이다. 이제 몸은 완전히 단식에 적응해서 음식에 대한 욕구가 거의 생기지 않는다. 나의 몸이 하는 일은 해독과 재활용, 배출과 휴식뿐. 오랜만의 달콤한 휴가를 즐기고 있다. 그동안 무분별한 음식 섭취와 과식으로 고생했던 소화기관들이 일제히 장기 휴가에 들어간 기분이다. 

단식을 하면 배에서 오케스트라가 화려한 음악을 울리듯 요란한 소리가 자주 들리는데 그때마다 나는 이것들이 생생하게 살아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 연주가 얼마나 크고 요란한지 정말 웃음이 날 정도로 신기하다. 그리고 장과 심장에는 각각 뇌와 지능이 있다는 말이 진짜 체감된다. 이것들은 각각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단 하나의 목적아래 협력하며 활동한다. 그 목적은 바로 나의 생존과 건강, 번영이다. 그러니 이들에게 나는 아주 고마워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내가 아무것도 해주지 않는데도 오직 나의 생존과 평화를 위해 평생을 무급으로 일한다. 그들을 위해 음식물이 죽이 되도록 아주 천천히 오래 씹으며 먹고, 배부르기 전에 수저를 내려놓고, 최대한 행복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먹자. 그리고 단식으로 그들에게 1년에 한 번씩은 장기휴가를 주자고 다짐한다.


오늘은 남해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소문난 다랭이 마을을 시작으로 남해 바래길 10코스를 걸을 예정이다. 어제 남해에서 걷기 운동으로 40킬로그램을 감량했다고 하셨던 택시기사님이 알려주신 바에 의하면 10코스는 원천항에서 시작하는 것보다 역방향으로 다랭이 마을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다고 하셨다. 그렇게 걸어야 내리막길을 편하게 걸으며, 다랭이마을 길의 장관을 즐길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카카오 택시를 불러 다랭이 마을로 향했다. 


오늘 만난 택시 기사님은 어제 만났던 기사님만큼이나 재밌고 친절하신 분이었다. 남해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일을 하셨는데 8년 남짓 일하고 나니 이렇게 계속 살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남해로 내려와 지금은 농사도 짓고, 가끔 택시도 하시며 즐겁게 살고 계신다고 하셨다. 산도 좋고 물도 좋고 깨끗한 자연에서 걱정 없이 사니 행복하다고 하시면서 남해에 대해 이것저것 알려주셨다. 남해 택시기사님 분들이 친절하시고 유쾌하신 이유는 이 아름다운 자연과 길을 매일 달리시기 때문이 아닐까. 기사님의 즐거운 이야기를 듣다보니 어느새 다랭이 마을에 도착했다.





난 사실 택시에서부터 슬쩍슬쩍 옆을 곁눈질하며 이미 사랑을 예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남해 다랭이 마을은 정말 너무나 눈부시고 아름다워 내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아버렸다. 바다로 걸어가는 길 내내 예쁘다는 말을 1000번은 넘게 한 듯하다. 어쩜 그렇게 아름다운지 사진보다 백배 천배는 어여쁜 길이었다. 벌써 노란 유채꽃이 피어 들판을 알록달록 물들이고, 햇빛에 흔들리는 바다의 윤슬과 끝없이 이어지는 지평선, 올망졸망 오종종 자리한 섬들. 그리고 그 위에 둥둥둥 한가로이 떠다니는 배들. 제주 올레길보다 더 순수하고 아름다우며, 평화롭고 예쁘다. 왜 이제야 여기에 왔을까. 걷기를 그렇게나 좋아하는데 이제야 이 길을 걷다니. 





나는 이 길을 걷기 위해 남해까지 단식을 하러 왔구나.라고 생각될 정도로 너무나 황홀한 산책길이었다. 제주 보름 살기를 할 때 '동백동산 습지'를 걸으며 매일 그 길을 걷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그 길에 필적할 정도로 정말 매일 걷고 싶은 길이다. 그 길보다 좋은 것이 하나 더 있다면 비행기를 타지 않아도 아름다운 바다를 벗하며 걸을 수 있다는 것. 나는 길이 줄어드는 것이 아쉬워 벤치가 나올 때마다 앉아서 무념무상으로 이 길의 아름다움에 푹 빠져 시간을 보냈다. 






나는 길을 걷는 내내 입꼬리가 실실 올라가 웃음이 나오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내 영혼이 기뻐하는 것이 있는 그대로 전해졌다. 내 영혼이 즐거워하는 일, 영혼과 마음이 합치되는 일을 하는 순간은 거짓으로 속일 수가 없다. 그냥 몸이 알아서 반응한다. 좋은 에너지와 순수한 파동을 가지고 있는 곳에서 아름답게 살아 숨 쉬는 자연과 하나가 되어 걷고 존재하는 일. 그 일을 할 때 나의 영혼은 세상에서 최고로 행복한 영혼이 된다. 그리고 나는 이것을 위해 지구별에 태어났다는 생각이 든다. 이 아름다운 지구별의 자연을 마음껏 향유하며 음미하고 걷고 바라보고 함께 존재하는 일. 그럴 때 나는 천국에 있는 기분이 든다. 


아, 나는 지금 천국에 있구나. 

죽고 나면 착한 일을 해서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지금 이 순간 내가 발 딛고 있는 이곳이 천국이구나. 나는 이미 천국에 태어난 거구나. 





나는 이미 천국에 태어나서 모든 것을 받은 채로 살고 있었는데 그것을 몰랐다. 내가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아도 내 몸은 알아서 숨을 쉬고, 공기는 무한대로 공급된다. 또 내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도 내 몸은 알아서 음식물을 소화시키고, 자연은 먹을거리를 끊임없이 제공한다. 나의 튼튼한 두 다리는 걷기를 가르치지 않아도 알아서 땅을 딛고 걸으며 내 총명한 눈은 보기를 애쓰지 않아도 알아서 아름다운 것을 찾아보고 감탄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살아있도록 만드는 무한대로 공급되는 햇빛의 에너지는 바다를 반짝이게 하는 윤슬과 살갗을 따스하게 덥혀주는 온기로 자신의 존재를 명명백백하게 드러내고 있다.

  아, 정말 모든 것이 100% 완전하게 나에게 저절로 주어지고 있구나. 감사하고 감사하며 행복하고 행복하다. 이곳은 정말 천국이었다. 나는 천국에서 눈을 감고 살고 있었다. 나에게 주어진 모든 감사한 것들을 보지 못하고 헛것을 좇아 살고 있었다. 


무엇보다 나의 생존과 번영, 평화와 풍요, 건강과 살아있음을 위해 무급으로 쉬지 않고 묵묵히 일하고 있는 나의 몸. 이 몸이 있기에 나는 천국을 경험할 수 있다. 인간에게 몸이 주어진 이유는 바로 이 아름다운 천국을 보고, 듣고, 냄새맡고, 맛보고, 걷기 위함이 아닐까. 우리 몸이 아니라면 어찌 이 천국을 경험할 수 있을까. 그러므로 나는 살아가는 동안 이 천국에 발딛고 살아가고 있음을 매 순간 알아차리고 감사하며 살아가자. 잊지 말고, 눈감지 말고, 잠들지 말고 깨어있자. 나는 지금 천국에 태어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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