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지옥 해방일지> 이나가키 에미코
상상해본다. 수녀처럼 아무것도 없는 작고 청결한 방에서 매일 똑같은 소박한 음식을 먹고, 매일 같은 옷을 입으며 살아간다. 편리에 의존하지 않고 제 손과 머리를 써서 내일도 모레도 집안일을 한다.
- <살림지옥 해방일지> 이나가키 에미코
→ 나는 작고 청결한 방이 좋다. 너무 넓은 방은 스스로 구석구석 청소하기가 힘들다. 그렇다면 나는 넓은 집에 살기 위해 돈을 벌려고 아등바등 할 필요도 없다. 사실 전에 살던 방 2개짜리 아파트도 나에게는 넓어서 모두 청소하기 힘들었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넓은 집, 매끼 다른 진수성찬, 취향따라 입맛따라 유행에 어울리게 입는 예쁜 옷들이 아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자유로이 내 마음대로 보낼 수 있는 시간의 자유. 그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의 자유를 누리며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넓은 집에서 매끼 다른 화려한 식사를 즐기며, 화려한 옷들을 입고 쇼핑과 소유물을 늘리는 것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자연속에서 걷고, 사진과 글로 그 아름다운 풍경들을 담고, 책을 읽고, 무언가를 창조하고 예술을 즐기며,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고, 요가하고, 악기를 배우고, 새로운 경험에 도전하는 것이다. 삶을 여행하듯 자유롭게 보내는 것이다.
그런 삶이 과연 패배일까? 시시한 생활일까? 무리하지 않고 기쓰지 않고 내 손이 닿는 범위에서 내 분수에 맞는 생활을 한다. 사치나 편리에 익숙한 내가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진심으로 생각할 수 있을까? 그리고 여러 사정으로 실제로 그 같은 생활을 시작했다.
그랬더니 믿기지 않는 일이 일어났다. 그것은 시시하고 재미없는 생활이 아니라 최고의 생활이었다. 아니 ‘최고’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그런 세계가 이 세상에 있다니, 반세기를 살아오며 상상조차 하지 못한 압도적인 생활이었다. 이리하여 순식간에 이성적인 의식주가 덩굴째 손안으로 들어왔다.
우선은 아름다운 집에서 살고 있다. 아무것도 없는 작은 원룸에서 살기 시작하고 그만큼 집안의 90퍼센트가 늘 정리되어 있다. 청소를 싫어하는 나도 인생에서 처음으로 마치 호흡하듯이 무리하지 않고 매일 집안을 철저히 청소하게 되었다. 그렇다 할 노력 없이 365일 24시간 깨끗하게 정돈된 방에서 생활하는 인생 첫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그리고 진심으로 맛있다고 생각하는 식사를 한다. 냉장고를 없애고 에도 시대처럼 국, 구이, 절임의 소박한 식사를 매일 먹게 되었다. 그랬더니 질리기는 커녕 그 식사가 너무 즐거워 웬만한 외식은 하고 싶지 않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발견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단출한 옷가지들. 옷도 대담하게 정리하여 가장 어울리는 옷만 남겼다. 그 결과, 매일 내게 가장 어울리는 옷만 입고 있다. 무엇을 입을까 고민하는 시간도 없고 옷을 수납할 공간도 필요하지 않다. 장점뿐이다.
50세에 회사를 그만두고 수납에 목숨 건 내가 ‘수납 제로’의 원룸으로 이사해야만 하는 비상사태가 일어난 것이다. 덕분에 인생은 대전환을 맞이했다.
물론 그때는 그저 눈을 희번덕거리면서 온갖 것들을 처분하는 데 필사적이었다. 옷도 구두도 식기도 책도 부엌용품도 화장품도 처분하고 또 처분했다. 사용하지 않은 것은 물론 마음에 드는 물건이나 추억이 담긴 물건도 처분 대상이었다. 남기는 것의 기준은 ‘설렘’도 ‘사용하는가’도 아닌 ‘그게 없으면 죽어?’ 였다.
→ 나는 오늘 내가 목표로 하는 진정한 미니멀 라이프를 향한 첫걸음으로 내가 가진 옷 중 100벌을 버렸다. 이 책을 읽고 용기와 영감을 얻었다. 더이상 옷과 소유물에 나의 자유를 얽매여 시간과 자원을 낭비하고 싶지 않겠다는 결심을 세웠다. 그리고 순식간에 옷 100벌을 버렸다. 정확히는 그 이상을 버렸다. 내가 남기는 것의 기준은 '설렘'도 '입는가'도 아닌 '이게 없으면 죽어?' 였다. 그랬더니 정말 망설이지 않고 버릴 수 있었다. 헹거의 옷이 4분의 1로 줄었다.
개운하다. 더 버리고 버려서 딱 10벌만 남기고 싶다. 속세와 자본주의의 욕망, 물건에 대한 소유욕과 집착의 남은 끈이 끊어져 자유로워진 기분이다. 옷먼지를 하도 많이 뒤집어 써 찬 물로 세수를 하고 거울을 보니 후련하고 말끔한 얼굴의 새로운 내가 있다.
옷으로 나를 드러낼 필요가 없는 사람이 되고 싶다. 물건으로 나의 개성을 드러낼 필요가 없는 사람.
매일 같은 옷을 입어도 눈이 반짝 거리며 빛이 나는 사람.
소유가 아닌 경험으로 삶을 채우는 사람.
셔츠 한장에 청바지 하나만 입어도 건강한 아름다움이 묻어나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나는 더이상 자본주의의 거짓 광고와 물건으로 행복을 보장받으려는 헛된 욕망에 휘둘리지 않기로 결심했다. 다음 목표는 박스 하나에 나의 모든 옷을 담아 언제든 원하는 곳으로 떠날 수 있는 자유로운 몸이 되는 것이다. 필요하면 1시간만에 모든 짐을 싸서 홀가분하게 이사할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돈이나 물건에 의지하지 않고, 지금 여기의 나, 내 안에 있는 내면의 창조성과 힘을 의지해 인생을 만들어나고 싶다. 편리에 의지하지 않고 돈에 기대지 않고 나의 내면에 있는 힘을 발굴해 갈고 닦으며 살아가는 도전. 돈이나 물건이 있으면 풍요로워진다고 믿었던 과거를 버리고 새로운 삶으로 떠나는 여행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