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디시옹 Jan 24. 2020

구독 서비스를 취소하는 이유

콘텐츠가 많아도 많아도 너무 많다

얼마 전 미디엄이라는 해외 글 위주의 구독 서비스를 해지했습니다.


현재 월간 <디자인>, 월간 <Space>, 월간 <환경과 조경>을 사서 보는 중이고 여기에 간간히 한 달에 2~3권씩 사는 서적을 더하면 책으로 보는 정보가 상당합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매일마다 마주치는 포털 뉴스에 불어 독해 능력을 위해 읽는 Le Monde 앱이나 일본 NHK 뉴스, 브런치에 올라오는 글들, 뉴욕 타임스의 영문 기사들에 가끔씩 읽는 Popeye 같은 패션지에 퍼블리 구독 서비스까지 더하면 돈이 문제가 아니라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가끔 문학 소설들까지 읽는 달에는 항상 무언가를 놓쳤다는 느낌이 들기까지 합니다.


여기에 음악을 좋아해 유튜브 뮤직을 구독하는데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디자인이나 툴 관련된 영상과 음악에 많은 시간을 소비할 수밖에 없고 여기에 Adobe 사의 라이트룸 같은 툴을 구독하기까지 하면 지갑이 문제가 아니라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원래 시네마토 그래피에 관심이 생겨 영화도 챙겨 보려고 했으나 일상에서 도저히 영화를 깊게 파고들 만한 소위 '넷플릭스'나 '왓챠 플레이'를 구독해 볼 만한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물리학적으로 시간이 병렬돼있는 흘러가는 개념이 아니라고 하는데 인간에게는 이러한 물리적 법칙도 인지능력의 한계로 극복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가끔씩 멍 때릴 시간도 필요하고 개인적인 생각을 해 아이디어를 구상해야 해 낼 때도 있는데 그런 시간까지 고려하면 솔직히 이 세상에 할 게 너무 많아졌다고 생각됩니다.


이제는 '무엇을 제공해주는가에서 시간 대비 효용이 더 큰지 따져보는 것'이 콘텐츠 구독 서비스가 살아남을 길이라 생각되었습니다.


콘텐츠 구독 서비스가 콘텐츠와의 경쟁만 생각할 것이 아닌 명상, 취미활동과 같은 사람이 실제로 시간을 쓰는 행위들과 경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콘텐츠가 취미 활동이 될 수 있을 만큼 독창적이거나 특별하지 않으면 사람들의 시간 부족으로 구독이 취소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정말 좋은 콘텐츠만 골라서 모아놓아도 그 골라놓은 콘텐츠가 너무 많아져 버렸습니다. 구독을 늘려주었던 소위 새로운 것을 잘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이미 신용카드 결제창에 각종 구독 서비스들이 가득 차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더 이상 콘텐츠를 구독하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이제는 돈이 아닌 시간이 모자라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앞으로 구독 서비스가 살아남을 길은 콘텐츠가 취미활동이 될 수 있을 만큼 강화하거나

기존의 취미활동과 기존의 사람의 행위와 자연스럽게 결합될 수 있게 하거나

아무것도 구독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에게 해당 콘텐츠를 구독하면 무언가 다른 위치에 더 높은 위치 혹은 더 명석해 보이게 해 준 다는 것을 어필해야 합니다.


콘텐츠 구독 서비스마다

사람들에게 비치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가령 팝콘 티브이나 아프리카 티브이를 열렬히 구독한다고 사람과 넷플릭스나 왓챠 플레이 같은 서비스를 열렬히 구독하는 사람을 놓고 둘 중 누가 더 소위 있어 보이거나 매력적으로 느껴지느냐라고 조심스레 물어보면 후자가 더 그렇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페이스북은 조금 어린 연령대의 미성숙한 거친 이미지 트위터는 조금 과열된 끼기 어려운 토론장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 인스타그램은 좀 정제되고 성숙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고 핀터레스트는 그걸 넘어서 조금 예술적이기까지 하다 라고 느껴집니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빠져 사는 사람과 인스타그램과 핀터레스트를 주로 하는 사람을 놓고 누가 더 매력적이고 소위 더 따라가고 싶느냐라고 물어보면 이것도 마찬가지로 후자가 더 그렇다는 답변이 조심스레 나올 것입니다.


아이폰 스페이스 그레이 쓰는 남자가 갤럭시폰 쓰는 남자보다 더 매력적으로 보인다라는 우스갯소리가 커뮤니티에서 나옵니다.

이를 반대로 생각하면 구독 서비스도 이러한 누군가 좀 따라 하고 싶은데 따라 하기 어려울 거 같지 않은 친숙한 사람들이 쓸만한 서비스로 포지셔닝하고 그에 걸맞은 디자인과 콘텐츠를 모으고 그 서비스를 그런 사람들이 사용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구독 서비스가 사람과 같은 성격과 이미지를 가질 수 있게 됩니다.


너무 다가가기 어려운 포지셔닝도 지양해야 합니다. 구독 서비스는 뭔가 있어 보이고 멋있어 보이는데 말 걸면 웃으면서 잘 대답해주고 도와주는 동네 형과 같은 이미지를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스타그램은 초창기에 이러한 이미지 포지션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으나 인스타그램의 레이아웃이나 디자인이 그러한 좀 괜찮은 계층을 적절히 끌어모을 수 있게 해 주었고 그러한 이미지가 지금의 인스타그램을 이끌고 있습니다.


이러한 포지셔닝과 디자인을 잘 연구하고 그에 걸맞은 구독 서비스의 성격과 이미지를 설정해놔야 아무것도 구독하지 않는 사람들이 유행인 것처럼 구독할 수 있게 되는 요인을 만들어 준다는 것입니다. 이미 콘텐츠 때문에 구독을 하려는 사람들은 그러한 구독 서비스를 최소 3개 이상 구독하고 있기에 시간이 부족해 구독 서비스를 추가로 늘릴 여지가 없기에 더욱 중요합니다.


콘텐츠 과잉의 시대 이제는 구독 서비스가 사람과 같은 성격과 이미지를 가져야 살아남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아마 미래의 기술들도 결국 이러한 방향을 따라가야 시장의 선택을 받고 살아남 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세상을 뒤흔든 그 이름; 일론 머스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