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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엔 May 16. 2023

아빠의 인생은 시작되었다.

아기와의 첫 만남

와이프의 출산 예정일은 3월 8일이었다. 출산이 처음인 우리는 당연히 예정일에 맞춰서 제왕절개 수술을 하고, 아기를 낳으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만 안일하게 생각했나..?


3월 5일 일요일 점심을 먹고 나서 침대에 소처럼 다시 누웠다가 와이프가 갑자기 물 같은 게 흐른다며 화장실에 부리나케 달려갔다. 다행히도 와이프가 양수 터지면 다리에 물처럼 쭈욱 흐른다는 영상을 봐둔 게 있었는지, 양수가 터진 거 같다고 했다. 병원에 전화를 했더니, 오후 3시까지 오라고 했다. 부랴부랴 와이프가 미리 싸둔 출산 가방을 챙기고 병원으로 향했다.


와이프가 미리 출산 가방 안 쌌으면 어쩔 뻔..?


병원에서는 양수가 터진 거라고 바로 입원하고 수술을 진행해야 된단다. 주말이라 진료받던 의사 선생님도 없고, 당직 의사 선생님께 수술을 해야 되는데 모든 게 처음이라 걱정되었다. 와이프와 아기도 모두 건강하게 나오기를 기도하면서 수술실 앞에서 양가 가족들에게 전화를 드렸다.


수술실에 들어간 지 한 시간쯤 지났을까? 집도하신 의사 선생님께서 먼저 나오셨다. 다행히 수술은 잘 끝났다고 했다. 출산하기 전에 꼭 영상 찍으라는 말이 생각나서 휴대폰을 부여잡고 한참 수술실 앞을 찍고 있었다. 10여분을 기다렸을까 간호사와 아기가 수술실에서 나왔다. 23년 3월 5일 오후 4시 3분, 그렇게 나의 아빠의 인생은 시작되었다.




수술 전에 아기가 엄마 뱃속에서 태변을 봤다고 했다. 처음엔 태변이 뭔지도 모르고 있다가 설명을 들어보니, 아기가 엄마 뱃속에서 응가를 했는데, 잘 못해서 삼키면 질식할 수도 있다 해서 엄청 걱정을 했다. 간호사님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신생아실로 가는 길에 태변부터 물어봤는데 다행히 삼키지 않아 괜찮다고 했다. 간호사님이 체중을 재면서 확인해 줄 때 보니까 태변은 다행히 엉덩이에만 묻어있다. 


우리 아기는 너무나 건강히 잘 태어나줬다. 몸무게가 2.7kg라서 정상 체중이기는 하지만 조금 적게 나가는 편인 것 같다. 아무렴 좋다. 아빠의 딸로 세상에 와줘서 말이다. 수술실 앞에서 아기를 처음 봤을 때 내 아기가 맞는지 싶기도 하고, 어떻게 이런 쪼꼬미가 엄마 뱃속에서 열 달 동안 있었는지 기특하고 신기하기만 했다. 


사실 처음 아기를 만났을 때보다 아기와 첫 면회 때의 그 감정은 이루 말할 수 없는 벅찬 감동이었다. 면회실 유리창 너머로 한참을 말없이 바라보기만 해도 좋았다. '내가 아빠가 된 건가? 꿈은 아니겠지?' 부족한 아빠의 아기로 태어나줘서 고마웠다. 손짓 하나, 표정 하나 모든 게 처음이라 신기하고 이쁘기만 했다. 부모님, 장인 장모님께도 보여드려야겠다 싶어, 생전 안 하던 영상통화도 하면서 아기가 찾아온 기쁜 소식을 전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아빠의 허둥지둥, 어벙벙한 첫날이었다.




열 달 동안 품고 있던 쪼꼬미 아기를 직접 보고 난 와이프는 나보다 더 벅찬 감동이 있는 것 같았다. 엄마의 감정은 또 아빠 마음과는 사뭇 더 다를 것 같다. 다행히 와이프도 건강했고, 많이 아팠겠지만 잘 참아줘서 고마웠다. 아기와 우리 셋은 이제 행복하게만 살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


그런 생각과는 다르게 조리원 입소날부터 난리 난리 싸웠다..


번외로 수술을 기다리면서 알게 된 한 남편분이 있었는데, 그날 바로 우리 뒤에 수술 들어온 신혼부부였다. 다음날 출산 예정이라서 하루 전 입원하러 왔다고 했다. 근데 와이프분이 양수가 터져서 수술 바로 들어가게 돼서 나처럼 어벙벙한 남편분과 몇 마디 말을 나누곤 서로 비슷한 상황에 짧은 시간 급 친해질 뻔했다. 수술 후 개인 병실도 바로 옆이라서 와이프끼리도 친해질 뻔했는데 아쉽게도 우리가 조리원을 다른 병원에 잡아서 그 후로는 못 보게 되었다. 그분들도 같은 감정을 느끼셨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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