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잊고 사는 것

엄마의 폐쇄 공포증


엄마 왜 불을 켜고 자?
집에서 엄마가 불을 켜고 자는 게 이상해서 엄마에게 물었다.
그냥 답답해서라고 하고 잠결에 말하는 엄마의 이야기를 무심히 넘겼다.
불을 켜고 자면 질 좋은 수면을 취할 수 없지 않나?


밤새 굵은 빗방울이 양철 지붕을 두드렸다. 아침이 되니 굵은 빗방울이 보슬비로 얇아졌다. 어제 마사이마라의 드라이빙에 취해있기도 했고 피로도가 누적되어서 그런지 양철지붕을 때리는 빗방울 소리도 전혀 듣지 못한 밤이다. 어제에 이어서 오늘도 마사이마라의 드라이빙이 예정되어 있는 날이다.


어제 빅 5를 다 만나지 못해서 오늘은 나머지 빅 5를 기대해본다. 아침 6시부터 챙기며 분주했다. 새벽녘에야 겨우 잠이 든 줄 모르고 나는 엄마를 깨웠다. 엄마는 한숨도 못 주무셨다고 한다. 처음엔 빗소리 때문에 뒤척이다 갑자기 불이 꺼지니 어둠 속에 갑갑함이 가슴을 짓눌러서 밤새 혼이 났다고 한다. 마사이마라 캠프에서는 밤 10시까지만 불이 들어오고 저절로 소등이 되었다. 엄마의 말을 듣고 보니 엄마가 한숨도 자지 못한 흔적이 보였다. 혼자 모기향불에 의지해서 무서움을 견디다 모기향마저 꺼지자 손전등을 찾아 켜 놓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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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정리를 하려는데 불이 말없이 나가버리고 암흑천지가 되었다. 소정이는 너무 피곤했는지 이불도 다 덮지 못하고 모기장을 뒤집어쓰고 자고 있다. 나는 갑자기 불이 나가니 폐쇄공포증이 몰려왔다. 답답함과 함께 토할 것 같아서 숨을 쉴 수가 없다. 잠도 안 오고 암흑 가운데 무릎을 꿇고 기도를 했다. 주기도문조차 생각나지 않아 횡설수설이다.


지금 나를 안정시킬 수 있는 것은 오직 불빛뿐이다. 모기향의 힘없는 불씨가 그나마 나의 답답함을 의지할 유일한 불빛이었다. 한참을 시달리다 소정이가 가진 전등이 생각났다. 소정이 가방 안에 길쭉한 손전등이 손에 잡힌다. 안도의 한숨이 쉬어졌다. 빗소리를 좋아하지만 이렇게 칠흑 같은 밤에 밖엔 비가 쏟아지고 동물들의 울음소리는 무섭고 두렵다. 내일 아침엔 동물을 보러 갈 수 없을 것 같다.”




그렇게 무섭고 두려운 밤을 보낸 엄마였다. 아프리카 여행을 함께 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엄마의 폐쇄 공포증. 아프리카에서 전기가 자주 나가는 환경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다. 그 전에도 전기가 나간 적이 있지만 이날만큼 극심하진 않았다. 그리고 대부분 나랑 같이 깨어 있어서 증상이 심하게 나타나지 않았었다.


집에서 엄마가 불을 켜고 잘 때는 왜 이러지? 하고 말았다. 엄마에 대해서는 적어도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엄마가 가지고 있는 이런 정신적인 공포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다. 일상을 살아가지 못할 만큼 심각한 건 아니었지만 밤새 길고 힘든 밤을 보냈을 엄마가 걱정되었다.


가족이라서 더 많은 것을 알 것 같지만 나이가 먹을수록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은 것들을 모르고 지나간다. 엄마와 아프리카 여행은 엄마를 가족이라는 이름 말고, 김순금 여사이자 여행 메이트로 다시 보는 시간이 되었다. 단순히 아프고 안 아프고의 문제가 아니라 인생이라는 여정을 살아가는 삶의 메이트로 엄마랑 보조를 맞춰가고 관심을 가져가는 시간이 되었다.


나는 지금 두 아이의 엄마다. 내가 아이들에 대해서 가장 잘 안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 , 때론 아이들이 내 소유인 것처럼 행동하기도 한다. 올바른 도덕적 기준으로 아이들에게 알게 모르게 많은 것들을 강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아이들에게 나 역시도 가족이라는 이유로 덮어놓고 물어보지 않은 것들이 많은 것 같다. 진짜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그리고 왜 좋은지 싫은지도 하나하나 물어봐야겠다.


여행하면서 엄마에 대해서 좀 더 알게 된 것들이 많아진 것처럼 내 일상을 채우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일상을 여행처럼 찬찬히 살펴보면서 살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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