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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년 차 초보스노보더의 고백

20년보다 훨씬 전부터 스노보드를 탔는데 나는 초보다.

대학생이 되면서 스키장에 갔다가 발이 너무 조이는 스키부츠가 힘들었다. 더구나 그 당시 나의 힙합 스타일은 프리한 보드가 더 적합해 보였다.

얼결에 보드를 빌려서 타기 시작했다.


그 당시에 보드강습도 흔치 않았고, 관련분야의 사람을 알지도 못했으니 주먹구구로 혼자 타기 시작했다. 다행히 동호회 사람들 몇 명을 알게 되어서

같이 슬로프 타면서 몸으로 배웠다.


그렇게 몇 해(?) 정도 겨울엔 보드를 타러 회사가 끝나고 야간을 타러 가는 열정을 보였다. 그 당시는 주말보더로 실력을 늘려보겠다 보다는 마음은 없고 짧은 시간에 신나게 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리고 직장이 바빠지고, 결혼과 육아로 인해서 보드는 거의 빠이를 한 상태였다. 그래도 그 당시 100만 원 가까이 주고 산 데크와 신발이 아까워 매번 모셔두고 버리지를 못했다.


15~6년의 기간이 지나 아이들 농촌유학을 떠난 곳이 우연찮게 강원도다 스키장이 가깝기도 하고 이젠 내가 타고 싶다기보다는 아이들 태워줄 생각에 2~3년 전부터 몇 번씩 아이들과 스키장을 가기 시작했다.


신랑은 추운 것도 스키도, 높은 곤돌라도 싫어해서 매번 혼자 아이 둘을 데리고 스키장을 가니 너무 힘들었다. 재미있게 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아이들을 따라다니기 바빴다.


에효... 이제 2년 정도만 타면 더 이상은 보드도 못 타겠다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작년엔 아이들 태울 생각에 가족 시즌권을 끊었는데 활용을 많이 못해서 내가 평일에 보딩을 했다.

딱 헬스클럽 가는 마음으로!!

두 시간씩만 타고 오자!!


시골이라 운동할 수 있는 시설이나 공간이 없고, 겨울에는 눈이 너무 많이 와서 달리기도 어려운 지역 특성상 스키장은 나에게 헬스장 같은 느낌이었다.

아이들 오기 전 부지런히 2~3시간 타고 컴백!!!


스키장을 헬스클럽처럼 다니는 클래스라뉘.... 있어 빌러티처럼 보이지만 현실은 운동할 곳 없는 현지인의 애환이었다.


다행히 농촌유학온 한 가정 부부가 보드마니아였다.

심지어 이곳에 세컨드하우르를 산 것도 보드 때문이란다.

오!! 그래? 함께 보딩을 하러 가기 시작했다.

둘이 타기만 해도 보드가 더 재미있어졌다.


다시 처녀 때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 들기도 하고

아이들 없이 혼자 보드를 타는 그 순간이 너무 자유로웠다.


올 시즌에는 농촌유학온 친구엄마와 함께  40대 이상의 여성보더들의 톡방에 가입했다. 2년 정도만 더 타야지 했던 마음이 싹 가시게 50세를 훌쩍 넘긴 언니들이 있었고 보드를 타는 실력이며 간지가 저세상이었다.



와... 2년이 뭐야... 아직 20년은 더 탈 수 있을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즌방을 수년째 거친 분들이라 그런지 서로에 대한 배려와 에티켓도 좋고 함께 탈 때도 서로 부담 없이 대해 주시고 새로 오신 분들도 텃세 없이 함께 할 수 있는 분위기였다. 그리고 혼자 탈 때는 헬스클럽이었는데 함께 타니 뭔가 팀플레이를 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아직은  아침에  스키장 출발 전 추위와 잠깐씩 마음싸움을 하고 나가는 시점이었는데

그날 곤돌라 정상에 올라가서 본 풍경과 하늘은 황홀경이었다.



얼음탕후루^^처럼 나무를 감싸는 얼음들.

그 얼음으로 비치는 파란 하늘과 햇살



겨울왕국이 이런 곳이겠구나 싶은 마음이었다.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 것처럼 겹겹의 산과 운무가 낀 풍경 그리고 그러데이션 된 파란 하늘까지....



겨울스포츠의 묘미...

 이런 아름다운 풍경과 하늘을 볼 수 있다는 것. 겨울스포츠를 해보지 않은 사람은 볼 수 없는 풍경이다.



20년의 세월이 민망하게 다시 비기너터부터 자세교정을 시작했다. 잘 타는 언니들이나 동생들을 보니 나도 좀 더 잘 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수 언니들이 포즈나 동작도 가르쳐주고 원포인트씩 찍어주는 이야기를 들으니 자세교정이 시간이 걸리고 힘들더라도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추위와 싸우는 건 여전하지만 그래도 오늘은 비기너를 마스터해 보겠다는 마음이 들면 다시 주섬주섬 보드복을 챙겨 입게 된다. 20년 더 타려면 지금의 교정시간이 아깝지 않을 것 같다.


비기너턴을 하며 노력하는 그 순간이 너무 즐겁다.

요즘같이 머리가 복잡하고 미래가 답답하게 느껴질 때

유일한 나의 돌파구이자 현존처다.


현존하며 비기너연습에 몰입할 수 있어서 좋다.

때론 빠르게 천방지축처럼 타는 날도 있고,

그저 몽블랑 정상에서 나무 탕후루와 절경의 산수화를 보는 것만으로도 치유가 된다고 느낀다.


다시 스노보드가 좋아진 24년 차 초보보더의 고백^^

이런 소소하고 기쁜 순간의  감정들이 잊히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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