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애주가다. 아빠가 병으로 입원하기 전까지, 그러니까 40대 중반까지 내가 기억하는 아빠의 많은 모습은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왔던 모습이다. 얼굴이 붉어지고 술 냄새를 풍기면서흥에 겨웠는지 노래를 부르거나,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신나서인지 (슬퍼서인지) 크게 떠들던 모습이 생각난다.
보통 다이어리 마지막 페이지에는 분실될 상황에 대비에 개인정보를 쓰게 되어있는데, 아빠가 적었던 일기장 마지막 페이지에도 이런 페이지가 있었다. 제일 첫 번째 줄에는 비망록이라 쓰여있고 (이름부터 비장하다!) 그 아래에는 이름, 생년월일, 혈액형, 주민등록번호를 적는 칸이 있다. 그 아래의 자유 칸에 아빠는 이렇게 적어놓았다.
성격: 진실을 사랑하는 者
조금은 돈키호테성 기질이 있는 者
마음은 부처님의 반쪽을 닮은 者
人生을 낙관적으로 살려고 하는 者
취미: 모든 운동을 좋아하는 者
여자를 사랑하는 者
가벼운 여행을 즐기는 者
술을 사랑하는 者
아빠가 자신의 성격을 적어 놓은 걸 보니, 정말 피식 피식 웃음이 났다. 언제 적어 놓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빠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자기애가 강했구나 싶다. 그리고 의문을 제기하고 싶은 부분도 있었다. ‘마음은 부처님의 반쪽을 닮은 자’에서는 조금 동의할 수 없다. 아빠는 가족들에게 깐깐하고, 자신의 감정을 다 표출하는 사람이기 때문! 고집불통 우리 집의 권력자에게 부처님이라니...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조합 인 것이다.
사실 읽으면서 놀랐던 부분은, 은근히 지금의 나와 비슷한 점도 있다는 것이었는데! 골라보자면 이런 것들이다. 인생을 낙관적으로 살려고 하는 것, 가벼운 여행을 즐기는 것, 술을 사랑하는 것. 하하하. 부전여전이라고 할 수 있으려나? 나는 혼술을 특히 좋아한다. 자기 전, 혼술은 몸의 긴장을 풀어주고 행복한 기분으로 잠들게 해준다.
엄마와 아빠가 잠든 조용한 밤. (엄마와 아빠는 밤 9시면 불을 끄고 자기 때문에, 밤에는 조용히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불 꺼진 거실을 살금살금 지나서 주방으로 간다. 그리고 냉장고 문을 열어 남아 있는 술을 확인한다. 조용히 찬장에서 잔을 꺼내서 방으로 가지고 온다.
보통은 퇴근할 때 사온 맥주, 엄마가 먹다 남긴 막걸리가 남아있다. 하지만 오늘은 조금 다르다. 운동을 마치고 오는 길에, 요즘 유행인 깔라만시 소주와 탄산수를 사 왔기 때문이다! 호호. “꽐꽐꽐꽐~” 둘을 적절한 비율로 섞어서 한 모금 들이켰다. 입안에는 상큼한 레몬향이 감돌고 기분이 좋아졌다. 이렇게 행복한 기운으로 오늘도 잠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