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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진 Jan 22. 2020

서점 일의 소확행

어느새 오키로에서 일한 지 6개 월차. 시간이 정말 빠르다. 손님으로 자주 가던 오키로가 내 일터가 되다니. 시작은 정말 우연이었다. 평일 3시간만 돕기로 하고 시작한 일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지금은 나의 일상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 되었다.    

  

서점 일은 거의 8할이 육체노동이다. 전국에 있는 손님들에게 책을 전달하기 위해 택배를 보내는 일뿐만 아니라 선주문한 책이 도착하면 비닐을 씌우고 제고를 진열하는 일, 우리가 제작한 책들을 하나하나 포장해서 보관하는 일 등등. 머리보다는 내 손과 몸을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는 일이 많다. 그래서 나의 출근 시간은 오픈 시간보다 한 시간 일찍인 낮 12시. 보통의 직장인이라면 바쁜 오전 업무를 끝내고, 꿀 같은 점심시간이 시작될 시간이지만, 나에겐 하루 중 가장 바쁜 시간이다.   

   

내가 오키로에 와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택배 포장’이다. 다른 식구들이 출근하기 전 택배 업무를 마치기 위해, 분주하게 주문 건을 확인해서 책을 챙기고 택배를 포장한다. 하지만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한 가지가 있다! 그것은 바로 손편지!! 주문이 별로 없을 때는 포장 전에 편지를 쓰는 게 무리가 없지만, 주문이 많을 때는 편지만 써도 3, 40분이 훌쩍 지나간다. (이럴 때는 내가 포장을 먼저 해두면 편지를 3명이 나눠 쓰기도 하고, 전날 밤 혹은 출근길 지하철에서 편지를 쓰기도 한다.)     

  

하지만 이 가운데서도, 작지만 확실한 행복의 순간들이 있다. 가끔 배송 메시지에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적어주시는 분들이 있다. 지난 배송에서 우리의 편지를 받고 간단한 답장을 써주시는 분도 있고, 날이 더운데 몸 챙기면서 일하라는 다정한 안부 메시지를 받기도 한다. 이런 메시지를 받게 되면 하루를 정말 기분 좋게 시작하게 된다. 사실 온라인으로 주문을 해주시는 분들은 얼굴을 모르는 분들이 대다수인데 정말 가깝게 느껴진다. (이런 메시지를 받게 되면, 아무래도 손편지를 좀 더 길게 그리고 정성을 들여 쓰게 된다. 호호.)  

    

그리고 간혹 힘들 때 위로가 될 만한 노래를 추천 해달 라거나, 고민을 남겨주시는 분들도 계신다. 그럴 땐 우리 서점이 하나의 ‘라디오 방송’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누군가의 사연이 도착하고, 오키로 식구들이 이에 대해 답장을 하면서 서로 느린 소통을 하는 느낌이랄까. 이럴 땐 매번 같은 인사말과 책에 대한 소개 대신, 어떤 이야기를 써야 좋을지 골똘히 생각해보게 된다.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이분들에게 힘을 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그렇게 택배와 편지를 보내고 나면 며칠 동안 여운이 남는다. 그리고 택배가 무사히 잘 도착했을지, 편지를 받고 어떤 생각을 하셨을지, 내가 쓴 한 마디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을지 궁금해지곤 한다.    

  

아! 그리고 이 글을 쓰다 보니 정말 정말 작지만 기쁜 순간들이 몇 가지가 더 생각나서 덧붙인다.      


1.온라인으로 주문 목록에 내 책이 들어있을 때 

: 한 달에 한 권이 팔릴까 말까 할 정도로 판매가 잘 안 되는 책이라, 사실 이런 경우는 거의 손에 꼽는다. (혹시 제 책이 궁금하신 분들은 홈페이지에서 ‘나, 다큐 하고 있니?’, ‘책 따위 안 만들어도 되지만’을 장바구니에 담아주시면... 호호. 숨겨진 띵작이랍니다!)       


2. 내가 홍보글을 올리고 나서 바로 책이 주문이 들어왔을 때 

: 이런 경우도 자주 있진 않지만, 신기하고 기쁘다. SNS에 올리는 게시물이 허공에 치는 메아리 같이 느껴질 때도 있는데, 정말 책 소개를 봐주는 분들이 있구나! 실감하게 되는 순간이다.   

   

3. 박스가 구김 없이 접히고테이핑도 울지 않고 포장이 완벽할 때 

 : 사장님에게 “짝거!!! 여기 봐! 여기 울었잖아!!”라는 잔소리를 듣지 않아도 돼서 정말 기쁘고 뿌듯한 순간이다. 평소에는 허술하고 엉성한 사장님이 귀신같이 포장이 예쁘게 되지 않은 택배 박스를 발견할 땐 정말 소름 돋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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