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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진 Apr 27. 2020

로트렉에게서 얻은 용기

툴루즈 로트렉展

키 150cm, 몸무게 43kg. 어린 시절부터 키로 줄을 세우면 1, 2번 사이에서 오가던 반에서 제일 작은 아이. 어디를 가나 ‘키 작고 어려 보이는 애’라고 통하던 사람이 바로 나다. 작은 키는 나에게 늘 콤플렉스였다. 작은 키는 늘 내가 좋아하는 걸 배워보고 싶거나, 직업을 찾을 때도 늘 걸림돌이었다. 학창 시절 농구를 배워보고 싶었을 때도 그랬고. 고등학교 때 진로를 정할 때도 경찰관이 되고 싶었지만, 키 제한을 넘지 못해 포기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업을 정할 때도 나에게 걸림돌은 작은 몸이었다. “너무 약해 보이는데... 이 일 할 수 있겠어요?” 이런 이야기를 수십번 들은 끝에 겨우 일을 시작 할 수 있었다. 이렇게 작은 사람으로 사는 건 늘 고단했다.      

그래서 나의 목표는 항상 하나였다. ‘작아도 야무진 사람’, ‘겉은 약해 보이지만 속은 강한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그렇게 되려고 정말 부던히 노력했다. 아등바등 노력 하다 보니 나는 주변 친구들과 동료들로부터 ‘작은 거인’이 별명으로 불리게 되었다. 나는 이 별명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그토록 바라던 작지만 강한 사람이 되어가는구나 싶었기 때문에, 이 별명은 나에게 단순한 별명 이상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몇 년 전, 나는 새로운 꿈이 생겼다. 어쩌면 무모할 수도 있는 도전이었다. 직장을 그만두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보기로 결심한 것이다. 나는 지금 낮에는 작은 동네 책방에서 일을 하고, 그 외의 시간에는 글을 쓰며 생활하고 있다. 하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도 종종 위기는 찾아왔다. 그때마다 나는 “네가 좋아서 선택한 일이잖아!”라는 이유로 자책하곤 했다.       


‘내가 지금 잘 하고 있는 걸까?’, ‘이 길이 나에게 맞는 걸까?’ 좋아하는 일을 해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고민과 내가 하고 싶은 만큼 결과물이 따라주지 않아서 오는 좌절감이 항상 내 안에 자리해있었다. 그렇게 내 안에 차오른 고민 때문에 한동안 슬럼프에 빠져 아무것도 쓸 수가 없었다.      


내 안에 가득 찬 고민도 비워내고 새로운 자극을 주고 싶었다. 그러자 예술의 전당이 떠올랐다. 때마침 ‘툴루즈 로트렉’의 전시가 눈에 보였다. 사실 작가에 대한 기본 지식도 없었는데 이 전시를 보게 된 건 순전히 '물랑루즈의 작은 거인'이라는 전시의 타이틀 때문이었다. (물랑루즈의 작은 거인의 전시라면 마땅히 가서 봐야지!라는 마음이었달까?)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 정도로 이 전시를 관람하게 되었는데, 나는 금방 그의 그림과 인생에 깊이 빠져들었다. 




“이 전시에서 작가의 인생을 듣고 간다고 생각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도슨트의 설명을 들으며 작가의 인생을 따라 작품을 감상했는데,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나에게 감동을 준 건 작가의 철학과 신념이었다. 이상적인 것이 아닌 진실 된 것, 사람의 내면과 본질을 바라보고 그림으로 담아내려 했다는 점이 그의 작품과 생애에서 절절하게 느껴졌다.      


그는 귀족으로 태어났음에도 일반 서민들, 하층민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고 기록하려고 했다. 그리고 정말 사람을 많이 그렸는데 주로 무희, 배우들처럼 자신과 함께 어울렸던 예술가들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관찰하고 그들이 스타가 되는 데 도움을 주었다. 그의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니 인물의 특징도 잘 잡아내고 무척 섬세하게 그들을 바라봤다는 게 느껴졌다. 정말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많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작가가 어떤 맘으로 그림을 그렸을지 상상해보게 되었다. 




그가 그린 '엘르' 시리즈도 놀라웠다. 매춘부의 평범한 일상을 그림으로 그려야겠다고 생각한 작가의 마음과 시선에 정말 깊이 존경스러운 맘이 들었다. 사람들로부터 부도덕하고 추하다고 생각한 이들 또한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 사람의 내면과 본질을 봐야 한다는 것을 표현하려는 마음이 그림에서도 잘 느껴졌다. 나도 뭔가를 만들어 내는 창작자로 살고 싶은 사람으로서, 그리고 한 개인으로서도 이런 툴루즈 로트렉의 시선을 본받고 싶었다.      




그는 귀족으로 태어났음에도 일반 서민들, 하층민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고 기록하려고 했다. 그리고 정말 사람을 많이 그렸는데 주로 무희, 배우 들처럼 자신과 함께 어울렸던 예술가들을 에정어린 시선으로 관찰하고 그들이 스타가 되는데 도움을 주었다. 그의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니 인물의 특징도 잘 잡아내고 무척 섬세하게 그들을 바라봤다는 게 느껴졌다. 정말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많았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작가가 어떤 맘으로 그림을 그렸을지 상상해보게 되었다. 



정우철 도슨트에게서도 짧은 시간 안에 많은 걸 배운 느낌이다. 무언가를 전달할 때 어떤 자세와 열정으로 해야 하는지 다시 느꼈다. 처음부터 자신이 진행하는 도슨트의 특징을 설명해주고 작가의 인생을 듣고 간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한결 부담 없이 전시에 집중할 수 있었다. 도슨트를 듣고 난 후 너무 감명을 받아서 찾아보니 정말 자신의 일에 애정과 열정을 다 하는 분 같아서 자극이 되었다. 자신의 사비를 들여 일본에 있는 미술관에 가서 공부할 정도의 열정, 전공자가 아니기 때문에 누구보다 더 공부하고 노력한다는 것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나는 지금 이렇게 내 열정을 다해 일하고 있는지 다시 한번 반성도 했다. 



태어날 때부터 약한 몸과 장애로 인해 140cm 정도의 작은 체구로 인생을 살 수밖에 없었던 툴루즈 로트렉. 살아생전 모든 사람을 올려다볼 수밖에 없었던 작가를 존경하는 의미로 작가의 사진을 높고 웅장하게 걸어 놓아서 관람객들이 올려다볼 수 있게 한 점은 정말 세심한 전시 연출이라 감탄했다. 이런 디테일이 사람을 울컥하게 하고 감동을 주는 포인트! 


나는 이 전시에서 로트렉이 보여준 용기와 사랑을 봤다. 한동안 움츠려 들어있었던 나에게 "나는 이렇게 살았어, 너는 어떻게 살고 있니?"라고 말을 건네주는 듯했다. 진정한 작은 거인! 내가 본받고 싶은 롤모델의 모습을 발견했다.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앞으로 어떤 글을 쓰며 살아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던 나에게 정말 큰 에너지를 주었다. 로트렉의 생애를 따라가며 나도 이렇게 사람에 대한 애정이 담긴 글을 쓰고 싶었다는 걸 다시금 떠올릴 수 있었다. 막연하게나마 내가 하고 싶었던 창작에 대한 구체적인 방향을 잡아갈 수 있는 마음의 에너지가 생긴 것이다. 계속 글을 쓰고, 내가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말하고 싶다는 확신이 생겼다.  

    

현실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이어나갔던 용기, 남들과 다른 신체적 조건과 환경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에 대한 사랑을 잊지 않았던 작가. 툴루즈 로트렉이 전해준 이 마음을 오래도록 잊지 말아야지 다짐해본다.                

*영화 '물랑루즈'에도 로트렉이 등장한다고 한다. 예전에 본 영화라 기억이 가물가물 하니 다시 한번 찾아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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