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선택지가 있다는 것

영화 <피의 연대기>를 보고

by 김은진

생리와 관련된 경험은 이렇게 정리되었다.

“불쾌하거나, 짜증 나거나, 아프거나”

거기에 작년부터는 한 가지 감정이 더해졌었다.

“화가 난다”


바로 작년, 생리대에서 발암물질이 검출되어 여성들의 공분을 샀던 일 때문이었다.


나는 20대 후반이 되면서부터 생리양이 조금씩 줄기 시작했다.

처음엔 3,4일 정도였던 생리기간이 조금씩 줄어들면서 양도 함께 줄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그게 내 몸의 변화라고 생각했지 생리대의 영향 일 수 있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당시 인터넷상에서는 특정 생리대를 쓴 후 생리양이 줄었다는 이야기가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생리대 외에는 다른 생리용품을 생각해보지 못했다.

다른 생리용품을 사용해보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할 정도로 생리용품에 대한 관심과 지식이 없었다.

그냥 내가 쓸 수 있는 생리용품은 생리대 한 가지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 일회용 생리대에서 발암물질이 검출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온 후,

그제야 부랴부랴 다른 생리대 외에 다른 생리용품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영화 <피의 연대기>에서는 여성들의 생리 경험과 생리대 외의 생리 용품을 사용하는 내용이 나온다.

한창 생리대 파문이 터지고 난 후 생리 컵에 대한 이슈가 나오기도 했고 궁금하던 터라

영화에서 나온 생리 컵 이야기가 흥미진진했다.


영화에서 등장한 여러 여성들의 인터뷰에서 언급된 첫 생리의 경험은 내 이야기처럼 익숙했다.

(생리를 시작하자 이제 여성이 된 거다, 소중한 몸이다라는 축하를 받았다는 이야기가 특히.)

그리고 면생리대를 사용하게 된 지금 특히 공감하는 부분도 영화 속에서 등장했다.


무엇인가를 담아낼 어떤 것을 “더러워 버려야지” 하고 쓰레기통에 버리는 행위와

내가 그것을 바라보고 내 손으로 씻어서 말려서 또다시 쓸 때의

경험이 주는 차이는 굉장히 크거든요.

-페미니스트, 연구가 (은실)-


나 역시 일회용 생리대를 사용했을 때는 무의식 적으로 생리혈을 더러운 것으로 여겼다.

냄새가 나지 않도록 몇 겹씩 싸서 버려야 했고, 검붉은 일회용 생리대를 교체하고 버릴 때마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마치 오물을 처리하는 것처럼 나 스스로가 행동했었다.


하지만 면 생리대를 사용하고부터는 좀 달라졌다.

우선 몸에도 이질감이 없이 잘 맞았고 착용감이 일회용보다 더 편안했다.

사람들이 꺼려하던 이유였던 면 생리대를 내 손으로 빨아보고 말려서 다시 사용하니

그 과정이 번거롭긴 했지만 이상하게 싫지 않았다.

빨고 난 후 깨끗해진 면 생리대를 보면 기분이 좋았고 내 기분이 상쾌해졌다.


사실 생각해보면 피는 더러운 게 아니니 내 손으로 얼마든지 빨고

새것처럼 재활용하는 게 이상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 그걸 내가 직접 경험하기 전까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새로운 경험이 새로운 생각을 하게 만든 것이다.


애초에 오직 하나의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아닌,

다양한 선택지가 있어야 하는 게 아니었을까?


여러 선택지에서 나에게 맞는 걸 찾아가 보는 실험과 경험.

우리에겐 그 과정이 필요하다.





피의 연대기 포스터.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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