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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 사람 Feb 20. 2021

시를 쓴 사람은 양미자씨 밖에 없네요. - 영화 '시'

 16살 소녀가 강에서 투신 자살했다. 양미자씨는 죽은 소녀를 몇 개월간 집단

강간해온 패거리에 자신의 손자가 끼어 있었단 사실을 알게 된다.  손자와 어렵게
살고있는 그녀에게 의사는 치매란 소식을 전하고 그녀는 유가족에게 줄 보상금 500만원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양미자씨가 쓰는 시는 소녀를 이해하기 위한 방편이다. 미자씨는 시 강좌에서
시를 쓰기 위해서는 대상을 진지한 태도로 오랜 시간 바라봐야 함을 배운다.
 미자씨는 죽은 소녀와 연관된 장소를 차례로 방문한다. 아녜스(죽은 소녀의 세례명)의

추모예배에 몰래 참석했다가 그녀의 사진을 훔쳐서 빠져나온다. 소녀가 남학생들에게 강간당했던 과학실의 창문안을 창백한 표정으로 들여다본다.  소녀가 몸을 던진 외딴 곳에 있는 다리위에서 강을 내려다본다.  


 가해자의 보호자 중 죄책감을 느끼는 것으로 보이는 이는 미자씨 뿐이다. 다른 보호자들이 소녀의 어머니 앞에서 죄스러움을 가장할 때 미자씨는 그 자리에 있는 걸 견디지

못하고 도망치듯 뛰쳐나온다. 미자씨는 손자 종욱이 얼마나 엄청난 일을 저질렀는지 스스로깨닫길 바랬기에 식탁위에 소녀의 사진을 올려놓지만 종욱은 귀찮다는 표정으로 티비를 켜 채널을 이리저리 돌린다. 미자씨를 제외한 다른 이들이 소녀의 고통에 이토록 무심할 수 있었던 건 그들은 소녀를 이해해보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기에 소녀가 느꼇던 거대한 고통의 가장 바깥쪽 가장자리에조차 가 닿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자씨가 종욱과 베드민턴을 치고 있을 때 그녀의 신고연락을 받은 형사가 종욱을 
데리러 온다. 그녀는 세상엔 그냥 용서해도 될 일과 그래선 안 될 일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합의금을 내고도 종욱을 경찰에 신고한 이유는 소녀의 엄마에게 느낀 죄스러움 때문이었다.  시 강좌의 마지막 시간, 교탁엔 양미자씨가 쓴 시와 그녀가 놓은 꽃이 있다. 하지만 그녀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오늘까지 시 한 편씩 써서 내기로 했잖아요. 시 쓰신분, 쓰신분 아무도 없어요?
 시를 쓴 사람은 양미자씨 밖에 없네요.'


'너무 어려워요'


 '아니에요. 시를 쓰는 게 어려운 게 아니라 시를 쓰겠다는 마음을 갖는 게 어려워요.
 시를 쓰겠다는 마음.' 


  시를 쓴 사람은 양미자씨 뿐이었다. 김용탁 시인의 말은 누군가를 이해하는 게
어려운 게 아니라 이해하겠다는 마음을 갖는 게 어렵단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소녀를 이해하려 한 사람은 양미자씨 뿐이었다. 미자씨 자신도 깊은 슬픔속에 있으면서 왜 그렇게까지 소녀의 마음을 이해하려 했을까? 

 미자씨는 눈치없고 푼수끼 많은 할머니지만 이런 생각은 품고 있었던 게 아닐까?

어린 소녀가 자살하기까지 겪었던 끔찍한 고통을 누군가는 공감해주고 이해해 줘야 한다고 느낀 게 아니었을까? 특정한 종류의 슬픔은 누군가에 의해 반드시 기억되어져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게 아니었을까?  타인의 고통을 상상해 보려는 시도마져 하지 않을 때 세상은 점점 지옥 비슷한 곳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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