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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 사람 Mar 28. 2021

책에 대한 생각

2015. 4. 20

한창 더울 때 택배아저씨가 건네준 종이상자 안의 책은 온기를 품고 있다.
겨울에 배달된 책은 바깥 날씨가 추운만큼 차갑다.
작가가 자신의 주장에 열정을 쏟고 정확하게 전달하려 노력한다면 그 열기는 계절과 상관없이
독자에게 전해지기 마련이다.

책이 배달되오면 기분이 들떠서 표지며 머리말이며 여기저기를 펼쳐본다.
언제 읽게될지 모르지만 책이 내 수중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든든하고 뿌듯하다.
책장의 두꺼운 나무받침이 휘어질정도로 안 읽은 책들이 가득 꽂혀있지만
나는 매번 책을 사지 않는일에 실패하고 만다.


 

책 내용을 디자인보다는 훨씬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책 모양 자체가 이쁘면 마치 미술작품처럼
계속 쳐다보게 된다. 쓰다듬어 보게 되고 소중히 다루게 된다.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세계문학전집이나 시리즈로 분권된 책은 함께 모아서 꽂아두면 같은
판형에 다른 색의 조합이 다채로워 보기에 좋다. 중고서점에서 낱권으로 구입해 한 권씩 모으는
재미가 쏠쏠하다.


같은 가격이면 페이지수가 많고 글자가 많은 책을 선호한다. 더 많은 단어와 문장을
더 싼 가격에 산 것 같아서 이득을 본 기분이다. 싸고 두껍고 글자 많은 책을 보면
똑부러지고 성실하고 착한 사람을 보는 것 같다.


표지의 왕은 역시 양장본이다. 양장으로 된 책은 튼튼하고 강해보인다.
양장인데 두껍고 가격이 싼 책을 보면 양장이 아니면서 얇고 터무니없이 비싼 책들이
가끔씩 얄밉다.


 

누군가가 읽었다고 하면 그 사람을 존경의 눈길로 바라보게 하는 읽기조차 버거운
그 책들을, 써 낸 사람들은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사람들이란 말인가...


 

책은 생명이 없지만 무서운 번식력을 가지고 있다. 책을 읽은 사람들은 책을 쓰고
그 책을 읽은 사람들이 또 책을 쓴다. 책을 멸종시키려 한 왕들의 시도는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책은 공룡시대때부터 살았다는 바퀴벌레보다 더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책의 세계를 먹이사슬 피라미드로 나타낸다면
인류의 고전들이 가장 뾰쪽한 정점을 차지할 것이다. 고전들은
수천년을 살아남았고 앞으로도 영원히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이미 잊혀진 앞으로 잊혀질 수많은 책도
읽고 마음이 움직인 이가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충분히 의미있다고 믿는다.



새 책을 살 때 함께주는 사은품을 좋아한다. 민음사판 안나 카레리나 3권세트를 구입했을 때
톨스토이가 그려진 노트가 딸려왔다. 책을 받은 다음날 정혜윤PD의 강연이 있어 톨스토이 노트를
들고가 사인을 받았다. 정혜윤씨가 톨스토이 노트를 보며 '안나카레리나 재밌죠?' 라고 물었을
때 읽지 않았다고 말하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하하 웃었다. 첫페이지에 정혜윤씨가 사인해준
톨스토이 노트는 아까워서 쓰지 않고 있다.


 

알라딘 노트는 매년 새롭게 다양한 종류가 만들어진다. 휴대하고 사용하기 편리하게 만들어진
알라딘 노트는 타인의 것이 내 것보다 항상 이뻐 보인다.



중고서점에서 자주 책을 산다. 너무 깨끗하고 상태 좋은 비싼 책을 반이 안되는 가격에 사
게 되면 나는 속으로 환호성을 지르고 가끔 흥분이 지나치면 주변에 사람이 있음에도 입으로

오!오! 하며 소리를 낸다.



더럽거나 찢어지지 않았다면 전주인이 흔적을 남겨 놓은 책도 좋아한다. 중고책에 꽂혀 있는

작고 빨간 단풍잎과 손수 코팅한 곰인형모양의 책갈피를 좋아한다.
깔끔하게 그어진 밑줄과 책등에 적힌 대학이름과 학번도
'혼자 남겨지고 나서야 나는 발걸음을 떼곤 했다'는 맥락 없이 적혀진 연필 글씨도 좋아한다.
 


 우리 동네에 청솔이라는 이름의 작은 서점이 있는데 인터넷 서점이 발달했지만 근처에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있어서 가게운영이 가능한 모양이다. 끈을 안묶어놓은 서점집 개가 가게
근처를 늘 배회하는 곳인데 책만큼이나 어쩌면 책보다 더 복권판매에 열심이다.
가게 쇼윈도엔 xxx회 1등,xxx회 2등 등의 복권판매점에서 볼 법한 광고문구들이 빼곡히
적혀 있고 중년의 아저씨들이 금요일이면 진지한 표정으로 로또번호를 고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언젠가는 2등 당첨자가 서점주인에게 보답의 표시로 백설기 몇 되를 선물했고 서점주인은
복권구매자들에게 백설기를 주겠다는 이벤트를 열었다. 나는 평소에 복권을 사지 않지만
백설기에 혹해서 다른 아저씨들과 함께 진지한 표정으로 로또복권에 번호를 찍었다.
그 백설기에는 검은 콩이 박혀있었고 '조금 더 달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책을 읽으며 눈물 흘려본 적이 있는 사람이면 그는 틀림없이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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