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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 사람 May 18. 2021

농구가 하고 싶어요...

마을에 처음 온 2019년 봄, 모모의 정원은 은아 씨, 한결 씨, 상병 씨와 내가 함께 돌보았다. 우리는 700평 규모의 텃밭을 관리기로 뒤엎고 구획을 나누었다. 아침 일곱 시에 텃밭에 모여 감자를 심고 당근 씨앗을 뿌렸다. 책을 많이 읽은 한결 씨와 책 제목만 석학 수준으로 섭렵한 나는 농사일을 하며 종종 인문학으로 농담 따먹기를 했다.      

한 번은 상병 씨와 은아 씨 둘 다 볼일을 있어 한결 씨와 나만 농장에 남은 날이 있었다. 나는 때때로 필요 이상으로 부지런함을 떨어 고생을 자처하는 사람이다. 머릿속에서 부지런한 생각이 떠올랐다. ‘산양 우리에 똥이 잔뜩 쌓여서 비올 때마다 발이 푹푹 빠지는 진창이 돼버려. 우리 청소를 한다면 오늘같이 널널한 날이 적기가 아닐까?’     

산양우리를 정돈하자는 내 말에 한결씨는 다소 우려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삽으로 우리를 퍼기 시작한 지 5분도 되지 않아서 나는 한결씨가 지어보인 표정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언제 청소했는지 모를 우리의 바닥에는 산양똥과 흙과 풀더미가 뒤섞여 있었다. 땅이 햇볕에 딱딱하게 건조돼 삽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똥은 풀과 뒤엉켜있어 한 부분을 드러내면 덩굴처럼 다른 부분이 딸려서 올라왔다. 똥을 퍼서 울타리 밖으로 던지는데 한삽 한삽이 돌덩이처럼 무거워 티셔츠가 금방 땀으로 젖었다. 똥무더기를 던질 때마다 풀썩풀썩 흙똥먼지가 피어올랐다. 진폐마스크 없이 일하다간 폐병에 걸려도 이상할 게 없는 환경이었다. 오늘같이 널널한 날은 영화를 보거나 집에가서 낮잠을 자야 했던 것이다.     


한결씨가 아이디어를 냈다. 갈퀴를 사용하면 작업이 훨씬 수월하지 않을까? 갈퀴로 바닥을 찍어 몸쪽으로 끌어당기자 산양똥이 카페트처럼 둘둘 말렸다. 그 아래에서 오랜 시간 눌리고 화학적 변화를 일으켜 석유처럼 번쩍거리는 새로운 산양똥층이 드러났다. 그걸 보며 생뚱맞게 과학시간에 배운 암석의 퇴적작용이 떠올랐다. ‘아... 석탄과 석유가 이런식으로 압력과 시간에 의해 만들어졌겠구나...’ 잘못하다간 똥만 치우다 오늘 하루를 보내게 될 것 같은 불안감에 사로잡힌 우리는 작업을 대충 마무리짓기로 했다. 세발 수레를 세워놓고 삽으로 퍼넣는데 똥덩이가 워낙 무거워 잘 들리지 않았다. 내가 끙끙댈 때 한결씨가 삽으로 함께 들어주자 커다란 똥덩이가 순간적으로 확 들려 수레안으로 집어넣을 수 있었다. “방금 이 상황, <피구왕 통키>에서 맹태가 통키랑 손 겹쳐서 ‘더블슛’던지는 것 같지 않았어요?” 산양똥으로 더블슛한 상황이 웃겨서 우리 둘은 한참동안 파하하 배를 잡고 웃었다.      


오후 나절을 무얼 하며 보낼지 궁리하던 우리는 농구를 하기로 했다. 한결씨 집에 있는 농구공은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 바람이 빠져 물렁했다. 상병씨 집주위를 아무리 뒤져봐도 농구공에 바람넣는 펌프는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평산동 체육공원에서 농구를 하기로 했다. 한결씨의 파란색 SUV트럭을 타고 체육공원가는 길에 한결씨는 중학교때까지 본인이 농구선수였단 얘기를 들려주었다. 그 시절 가장 가슴 뜨겁게 하고싶은 일이 농구여서 농구선수가 되려 했는데 가혹한 훈련과 위계질서를 견디다못해 그만두었다 했다.     


체육공원 근처의 문구점에 들어가 공기충전을 부탁했더니 펌프가 없다고 했다. 농구코트를 찾아 체육공원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7000평 규모의 대지에는 초록색 인조잔디가 깔린 정식규격 축구장과 사방으로 펜스가 설치된 풋살장과 배드민턴 코트와 테니스 코트와 우레탄이 두텁게 깔린 육상코스와 음수대와 깨끗한 화장실이 있었지만 농구코트는 없었다. 나는 이것이 세금낭비와 행정실패의 전형이라고 양산시를 욕했다. 심지어는 공기펌프도 없었다. 도대체 체육공원에 공기펌프가 없다면 세상 어느곳에서 공에 바람을 넣을 수 있단 말인가?       


우리는 농구코트를 찾아 웅상전역을 헤맸다. 차를 타고 가다 운동기구점을 발견했다. 주인아저씨께 부탁하자 선뜻 바람을 넣어주신다. 공기를 충전한 뒤 바닥에 퉁퉁 튀겨보더니 ‘너무 탱탱한 것보다 적당히 넣는게 좋다’고 하시면서. 젊은 시절 스포츠를 사랑했던 분임에 틀림없다. 오토바이로 오가며 대승아파트 근처에서 농구코트를 봤던 게 생각나 그곳으로 향했다. 오후4시였다. 오월의 노란 햇살이 초록코트 여기저기에 고요히 내리쬐고 있었다. 수많은 고난을 겪고서야 이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코트에 도착하자 몇 달의 도보순례끝에 성지에 도착한 신자들만큼이나 가슴이 벅차올랐다.     


과연 체계적으로 농구를 배운 사람은 복장부터가 달랐다. 한결씨는 힙합간지가 나는 농구선수용 반바지를 입고 나이키 조던 농구화를 신었다. 머리에 밴드까지 착용하니 왠지 농구를 잘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집에서 입던 후줄근한 반바지를 입은 내 차림과 비교가 되었다. 한결씨의 슛폼은 농구만화의 3점슛터처럼 깨끗했다. 그가 던진 슛은 높은 호를 그리며 올라가 링 에 꽂혔다. 나를 가볍게 제치고 족제비처럼 날렵하게 골대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한결씨에게 슛팅자세를 배우고 슬램덩크 이야기를 나누었다. 각자의 전세계약금을 걸고 내기 투바운드를 하는 사이 어느덧 저녁이 됐다. 땅거미가 지고 바람이 불자 땀에 젖은 피부가 서늘하게 추웠다. 볼일을 마치고 돌아온 상병씨가 농구코트로 와서 함께 공을 던졌다. 우리는 다시 상병씨 집으로 돌아왔다. 은아씨와 용진씨를 불러 상병샘이 사온 생선초밥 도시락을 나눠먹었다.      


인생은 끊임없이 변한다. 두 달이 채 지나지 않아 한결씨는 아빠가 됐고 다음 해에는 대안학교 대표 선생님이 됐다. 육아와 대안학교 수업을 병행한 그는 쉴틈없이 바빠졌다. 나 또한 산양유 배달을 그만두고 공공근로를 하게 되면서 모모의 정원에 잘 들르지 않게 되었다. 은아씨와 상병씨 둘이서만 고군분투하며 농장을 돌봤다. 오후 내내 농구코트를 찾아헤맸던 그 날이 한결씨와 농구할 수 있는 몇 안되는 날이었단 것을 그때는 잘 몰랐다. 삶은 그런 것이다. 누군가와의 만남이 마지막일지라도 그 당시에는 알 도리가 없는 것. 이따금 혼자서 농구하러 가던 나는 이내 코트를 찾지 않게 되었다. 말동무 없이 하는 농구는 재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오전에는 우리에서 똥을 치우고, 오후 내내 농구코트를 찾아 헤매다 잠깐 농구를 했던 이 날의 기억이 내게는 가슴 한켠에 흐믓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선량한 사람들, 바람빠진 농구공과 선도가 떨어지는 생선초밥, 간간히 터지던 소탈한 웃음... 이것으로도 그날의 나는 충분히 만족할 수 있었다. 내가 가진 따뜻한 기억들은 대게 이런 것들이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한다면 똥치우는 일도, 길을 헤맨 일도 웃음섞인 추억으로 남는다. 코로나 때문에 마을 사람들 얼굴 못본지도 참 오래 됐다. 언젠가 다시 게토레이와 농구공을 챙겨들고 사람들과 대승아파트 농구장으로 가고 싶다. 땀흘리며 농구를 한 뒤 소소한 농담을 나누며 점심을 나눠 먹고 싶다.     



#정나무#농구가하고싶어요#마을살이의슬픔과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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