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쓰는 사람 Feb 07. 2022

한여름, 교차로의 횡단보도

한여름, 교차로의 횡단보도

초록불이 깜빡인다

체격이 마른 안경낀 소녀가 길을 건널 때

파란색 에스유브이 승용차가 급정거한다

퍽 하는 소리, 튕겨나가는 소녀


A는 이런씨발 욕지기를 내뱉으며 달려간다

소녀가 움직인다, 피는 흘리지 않는다

괜찮아요? 

괜찮아요.

운전석에서 내린 30대 중반의 사내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일단 차를 안쪽에 댈게요


소녀가 일어나 비척대며 도로변으로 걷는다

안움직이는 게 좋아

괜찮아요

검은 아스팔트에 시뻘겋게 긁힌 오른 종아리

부들부들 떨리는 어깨

덜덜 떨리는 빨간 빗금이 여러 개 그어진 팔

너 부모님한테 연락해야 될 것 같은데


일일구죠. 여기 국민은행 수서역지점 앞인데

네. 의식은 있고 걸어다녀요. 겉보기에 상처는 없어요

A는 덜덜 떠는 소녀의 반팔위로 가만히 손을 얹는다

괜찮아요

아니야, 너 안 괜찮아, 좀 앉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괜찮아요

A는 소녀의 떨리는 어깨에 손을 얹고

창백하게 질린, 놀라고 겁먹은, 까맣게 탄 동그란 얼굴의

까까머리 운전자의 어깨도 쓰다듬어준다


A의 친구가 도로 저편으로 날아간 

앞코에 진주장식이 달린 소녀의 슬리퍼를 주워웠다

119 구급차와 빨간 소방차가 미용미용하면서 요란스레 나타났다

주황색 옷의 구급대원이 소녀의 상태를 살핀다

괜찮아? 이렇게 하면 아파?

소녀의 할아버지가 왔다

할아버지 애가 많이 놀랬어요, 좀 잡아주세요

경찰이 까까머리 운전자에게 다가간다

운전자십니까


A와 친구는 다시 목적지로 걷는다

울컥 눈물이 나려 한다

사람의 삶이란 이렇게 한순간에 끝날 수 있는 거구나

저렇게 어린 애가 한순간에 죽을 수 있었어

우리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삶은, 생명은

이렇게 간단히 없어져버릴 수 있는거야

다행이야, 죽지 않아서 다행이야



(픽션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응급실에서 보낸 16시간(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