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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산결 Sep 27. 2021

동고동락하고 계신가요?

괴로움을 함께하는 방법을 조금은 알 것 같다

동고-동락 同苦同樂
명사
1. 괴로움도 즐거움도 함께함.


최근 한 커뮤니티에서 '남자들 술자리 공감'이라는 글을 봤다.


"만날 때마다 똑같은 레퍼토리임 ㅋㅋ

ex) 사고 쳤던 썰, 싸웠던 썰, 누구 짝사랑한 썰 등등

똑같은 썰 재탕에 재탕인데도 풀 때마다 빵 터지고 재미있음 ㅋㅋ

시간 흐를 때마다 기억 변조하는 XX 꼭 나옴 ㅋㅋ"


나 역시 생각해보면 많은 경우 친구들과 즐거움을 함께한 추억을 안주삼아 술을 기울였고,

이 글에 크게 공감이 됐다.

이제는 학창 시절 친구들을 자주 만나지는 못하는 터라 만남과 만남 사이 추억엔 먼지가 소복이 쌓이고,

이 때문에 오랜만에 끄집어보는 기억들은 항상 신선하고 반가웠다.


즐거움을 함께한 기억이 또 다른 즐거움을 낳는다.

'동락'이 '동락'을 낳는 아주 선순환적인 구조다.


그렇게 한참을 웃고 떠들다 보면 문득 마음 한편이 공허해질 때가 있다.

각자의 삶에, 그 모든 순간에, 즐거움 이면에 자리 잡고 있는 고초가 있을 텐데 애써 덮고 있는 느낌이다.

누군가 먼저 얘기를 꺼내지 않으면 그냥 그렇게 한바탕의 즐거움으로 자리는 늘 끝난다.

'동락동락'의 반복이다.


하지만 요즘따라 우리에게 더 필요한 건 '동고'가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동고동락'이라는 말에서도 괴로움이 즐거움을 앞선다.

'동고'가 우선되어야 '동락'도 더 큰 즐거움이 되지 않을까.


최근 서울에 있는 고등학교 친구 둘을 만났다.

오랜만에 만난 그 자리에서 인생에 대해 꽤나 진지한 얘기를 하던 와중에,

친구 하나가 생각지도 못한 질문을 했다.


"결아, 니는 내한테 힘든 일 다 털어놓을 수 있겠나?"


친구가 던진 질문은 내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예전의 나는 사람들과 슬프거나 힘들거나 혹은 괴로운 얘기를 나누는 것이 어려웠다.

특히 친구들에게는 더더욱 그랬다.


20대 중반 마음이 정말 힘들었던 적이 있다.

조금이라도 위로를 받고 싶어 친구들을 불러 얘기를 했지만 공감을 받지 못한 기분이었다.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았고 친구들의 위로가 위선처럼 느껴졌으며,

그럴수록 나는 스스로를 고립시켰다.


지금 돌이켜보면 친구들이 나에게 전해준 말 한마디 한마디는 소중했다.

하지만 나 스스로가 마음의 문을 열 준비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사실을 깨달은 지금은 예전보다 편안하게 마음을 열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친구의 저 질문은 오히려 이렇게 느껴졌다.


"결아, 혹시라도 힘든 일이 있으면 내한테 편하게 얘기해도 된다."


친구는 괴로움을 털어놓는 방법뿐만 아니라 남의 괴로움을 담는 방법도 아는 듯했다.

친구의 그릇에 나의 고초를 잠시 담아놓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나도 언제든지 친구에게 내 마음의 그릇을 잠시 내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는 괴로움을 함께하는 것이 아니라 해결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잠재되어 있었던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애초에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상대방의 괴로움에 진정한 공감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하지만 '동고'라는 말 뜻처럼 괴로움을 함께하는 것이지 덜어주는 것이 아니다.

'동고'란 상대방의 감당하지 못할 만큼 차오른 마음이 넘치지 않도록

내 마음의 그릇을 잠시 옆에 놓아주는 것이다.


이제는 괴로움을 함께하는 방법을 조금은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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