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일주일 살기 : 2일 차
제주에서 처음 들른 책방은 ‘그리고서점’이라는 곳이다.
애월읍 수산리에 위치한 작은 책방이다.
인적이 드문 위치와 소박한 책방 정문의 모습에
혹시 영업을 하지 않는 건 아닐까라는 걱정이 피어올랐지만
유리창 너머 부서지는 형광등의 흔적에
다행히 헛걸음을 하진 않았단 확신이 들었다.
책방에 들어섰을 때 처음 눈에 띈 것은
멈칫 놀라는 책방지기님의 모습이었다.
책방지기님의 놀라는 모습에
잠시 어색한 분위기가 맴돌았다.
문 앞에 놓인 출입 명부를 작성하려고 보니,
마지막 방문 기록이 며칠 전이었다.
명부를 작성하지 않고 들른 동네분들도 계시겠지만,
추측컨대 내가 꽤 오랜만의 손님이라
놀란 기색을 보이신 게 아닐까 추측해본다.
책방지기님께서 황급히 일어나
책방 중앙에 위치한 테이블을 치워주셨고
커피를 한 잔 하겠냐며 물으셨다.
염치 불고하고 마시겠다고 하니
직접 드립 커피를 내려주신다.
커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곳은 아니었지만,
다른 사람들의 후기를 찾아보니
지기님께서 손님들에게 종종 이렇게 직접 커피를 내려주시는 듯했다.
지기님의 이런 섬세한 마음 챙김에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이곳에 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책방을 둘러보니 책방지기님의 취향을 조금이나마 훔쳐볼 수 있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여러 종류의 ‘빨강머리 앤’과
가수 윤종신님의 에세이, 그리고 앨범이었다.
처음에는 들리지 않았던 노래가 어느샌가 재생되기 시작했고,
서점을 가득 채운 것도 윤종신님의 노래였다.
‘9월’
비록 지금은 10월이지만 가을을 노래한다는 점에서
제법 잘 어울리는 노래였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노래라 더욱 좋았다.
잠시만 머물렸고 했지만
책방이 전해주는 따뜻하고 여유로운 분위기에 제법 오래 있게 되었다.
책방지기님과의 사이엔 특별한 대화도 없었지만
제법 가까워진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김영하 작가님의 단편 ‘아이를 찾습니다’를 다 읽을 때 즈음
책방지기님께서 백신 2차 접종으로 이만 가봐야 한다 말씀하셨다.
금방 다른 분이 올 테니 천천히 책을 읽다 가시라 하신다.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을 것 같아,
혹시 추천해주실 만한 책이 없는지 물었다.
지기님께서는 자신이 가장 재밌게 읽은 소설로
박현욱 작가님의 ‘새는’을,
최근에 재밌게 읽은 책으로
김봉철님의 ‘작은 나의 책’을 추천해주시곤
책방을 비우셨다.
잠시였지만 빈 책방에 나 혼자만 있었다.
마치 이곳의 주인이 된 듯한 느낌이었다.
제주의 어느 시골 서점의.
곧 다른 분께서 책방을 지키러 오셨다.
그리고 갑자기 책방 바깥으로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잠시 비를 피해도 되겠냔 물음과 함께 한 여학생이 들어왔다.
맞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 같은 소나기의 차가움과 대비되는
소나기를 피해온 학생을 품은 책방의 따뜻함이 좋았다.
잠시 책에서 눈을 떼 바깥을 바라본다.
마음은 따뜻하고 시선은 차가운 느낌이 좋았다.
마치 노천탕에서 머리만 내놓은 것처럼.
책방지기님께서 추천해주신 두 권의 책 중
‘작은 나의 책’과
‘그리고서점’이라는 문구가 적힌 책갈피를 결제하고
책방을 나섰다.
‘그리고서점’이 전해준 작고 따뜻한 책방의 온기가
아직까지도 마음에 남아있는 것 같다.
책방이 선물해준 경험에 감사하며,
부디 책방지기님께서 백신을 맞고 아프지 않으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