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개봉한 영화로 사무엘 잭슨이 연기한 흑인 아버지는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될 만큼 슬픔과 분노가 가득했다. 영화 속 그는 백인 남성 두 명을 무자비하게 총으로 사살했다. 그리고 그는재판에서 자신을 추궁하는 백인 변호사에게 소리쳤다. "그들은 죽어 마땅했다. 그리고 나는 그들이 지옥에서 타버리길 바란다." 그는 자신의 살인에 대해 티끌 같은 죄책감조차도 보이지 않는다. 그는왜그런짓을한걸까? 그리고왜그렇게도당당한걸까?
영화 타임 투 킬 中
그를 변호하는 변호사가 재판 말미최종변론시 배심원들에게 이야기하는것으로 그의 이유는 충분히 드러난다.
"한 가지 얘기를 들려드리죠. 제가 얘기하는 동안 모두 눈을 감아주십시오. 저와 여러분 자신의 이야기를 들으십시오. 그래요. 눈을 감으세요. 어느 날 오후 가게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어린 소녀가 있습니다. 갑자기 트럭이 서고 두 남자가 소녀를 잡습니다. 근처로 끌고 가서 소녀를 묶습니다. 소녀의 옷을 찢어 냅니다. 그리고 올라탑니다. 번갈아 가면서 어린 소녀를 범합니다. 순수한 모든 것을 파괴합니다. 술과 땀 냄새에 절어서는 거칠게 말입니다. 그 일이 끝나자 아이의 작은 자궁은 죽습니다. 그녀 이후의 생명들과 자손들을 잉태할 기회가 모두 사라진 것입니다. 아이를 표적으로 삼아서 그들은 캔 맥주를 던집니다. 얼마나 세게 던지는지 살이 찢기고 뼈가 드러납니다. 그녀에게 오줌을 쌉니다. 이제 목을 매달 차례입니다. 밧줄이 있습니다. 올가미를 만듭니다. 순식간에 그녀의 목이 졸리고 허공 속으로 끌려 올라가서 발버둥 치는 걸 상상하십시오. 하지만 나뭇가지는 튼튼하지 못해서 부러지고 그녀는 떨어집니다. 그래서 그들은 소녀를 트럭에 싣고 다리로 가서 그녀를 내던집니다. 그녀는 다리 밑 9미터 아래로 떨어집니다. 그녀가 보입니까? 성폭행당하고 맞아서 부러진 몸이요. 그들의 오줌에 젖고 그들의 정액에 젖고 자신의 피에 젖어 죽도록 남겨진 것이 눈에 보입니까? 그 어린 소녀를 그려보십시오. 이상입니다."
남성들의정액과자신의출혈로온몸이젖어버린채발견된 어린 소녀는 사무엘 잭슨이 연기한 흑인 아버지의 소중한 딸이었다. 그 백인 두 명은 술과 마약에 취한 채로 흑인 소녀를 납치해서 수 차례나무자비하게강간했지만 당시 그 지역은 백인우월주의가 심한 곳으로 법의 심판은 그 백인 두 명에게 관대할 것이 불 보듯 뻔했다. 결국 흑인 소녀의 아비는 자신이 직접 그들을 심판한 것이었다. 누가 그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아무리 살인이라고 해도 말이다. 누가 그처럼 행동하고 싶지 않을 것인가? 제아무리 살인이라고 해도 말이다. 그리고 그는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는다. 하지만그의 사연을듣지 못한이들에게 그는 그저무자비한살인자였을 것이다.
우리는 수학문제를 풀 때 보이지 않는 것도 존재함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우리는 정작 서로를 바라볼 때 그런 전제가 더욱 필요하다.
사과는빨간색인가?수박은녹색인가? 실상사과는 빨갛지만깊이보면 속은 하얗다. 수박은 녹색이지만 깊이보면속은 빨갛다. 각자의생각에따라답은다르겠지만어느것도사실이아닌것은없다.사람도 그렇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있다. 우리는 보이는 것에 집중하며 사람을 판단하고 사람과관계한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는 노력을 멈춰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사실에는보이지않는것도포함되어있기때문이다.그 사람을 깊게 보는 것. 그 사람의 사연을 깊이 들어주는 것. 그것이 우리 모두가 교과서처럼 말하는 공감의 시작이다. 그리고 우리병원에입원한 지 1개월이 지난 그녀또한깊게봐야지만알 수있는아픔이 있었다.
40세 하루 씨. 그녀는 8살, 10살인 두 딸의 엄마이고 가정주부다. 남편은 동갑내기로 평범한 회사원이다. 하루 내내 직장에서 일에 시달리다 오는 남편은 항상 바쁘지만착하고부지런하다. 원래 둘은 서울 도심에위치한명성 있는 대학교 커플이었다. 6년 간의 연애 후에 결혼했고 그들에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두 명의 딸이 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그렇듯이 그들에게도 행복만이 준비되어있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