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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야 Mar 21. 2019

겉절이 담갔습니다

어설픈 시작의 맛 

엄마는 내가 한글을 떼고 글을 쓸 수 있게 되자 저녁마다 일기쓰기를 시켰다. 


잠들기 전 책상에 앉아 500원짜리 일기장에 하루를 돌아보며 나와 내 주변의 이야기를 썼다. 지금도 일기 쓰기는 양치질 같은 일상이지만, 동시에 글쓰기는 아주 멀게 느껴진다. 


작년에 사람들과 글을 쓰고 합평하면서 겨울의 끝자락과 봄과 여름을 다 썼다. 글을 써볼수록 잘 써야 한다는 생각에 몸과 마음에 힘이 들어갔다. 만사에 나를 피곤하게 하는 오래된 버릇이기도 하다.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 바짝 긴장하는 버릇. 힘이 잔뜩 든 글은 형편없었다. 그래서 오래도록 선뜻 쓰지 못했다. 전에 한번 뜀틀을 넘지 못한 기억 때문에 두려워서 도움닫기를 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그런 시간을 보내는 동안 미숙하지만 시작하는 사람과 무엇이든 꾸준하게 하는 사람을 보며 감탄했다. 힘을 빼고 뭐라도 하는 그들의 용기가 부러웠다. 나는 완벽하지 못한 결과가 부끄러워서 시작도 못 했기 때문이었다. 여전히 어설프지만 이렇게 써보고 있는 건 노래하고 글쓰고 요즘은 인터뷰도 하시는 요조님의 말 덕분이다.


“책을 사랑하고 있으니까 만드는 동시에 음악을 듣고 책을 읽잖아요. 제 눈이 너무 높아진 걸 느껴요. 어떤 게 좋은 글인지 너무 잘 알겠어요. 동시에 내 글이 얼마나 구린지도 너무 알겠어요. 예전엔 도취도 됐었고 신나서 자랑도 하고 그랬는데 내가 글을 참 잘 썼다고 느낀 게 언제인지 가물가물해요. 보는 눈만 높아지고 내가 만들어 내는 일이 얼마나 허접한지 너무 잘 보니이까”


매일 하는 생각을 다른 이의 목소리로 적확히 들으니 뜬금없이 용기가 났다. 

그녀의 말을 들은 한 소설가는 “처음 쓰는 사람이 잘 쓸 수 없고 많이 써야 잘 쓸 수 있는데 그 단계에 이르기 전에 재능이 없다고 포기하는 게 아쉽다”고 했다. 


위의 이야기 말고도 보고 들은 ‘완벽하지 않아도 시작해’ 시리즈는 메모장에 가득하다.  


“작가들이 글을 쓸 때 딱 그 나이에 맞는 글을 쓰는 것 같아요. 김치에도 겉절이가 있고 묵은지가 있잖아요” 

– 「태도의 말들」 중에서,


김장김치가 아니라 겉절이를 담근다는 마음으로 쓴다. 김치를 처음 담가보는 사람의 어설픈 솜씨로. 간이 잘 됐는지  모르겠지만. 처음에는 어려웠지만 익숙해진 일들을 떠올리면서 쓴다. 시작하지 않으면 나아갈 수 없으니까. 오늘 써야 내일도 쓸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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