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워도 너무 덥다. 한낮의 기온이 35도에 육박하는데 하필 제일 더운 시간에 산책을 하러 나왔다.
나는 여든이 다 되신 친정 엄마를 모시고 산다. 그리고 이십 대 후반의 아들도 데리고 산다. 손자를 키워주시는 친정 엄마와 합가를 한 이후 남편의 눈치까지 보고 산지 어언 이십칠 년이 되어간다. 3대가 모여 살면서 사이에 끼어 스트레스를 받다가 폭발할 것 같아서 무작정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하필 8월의 한낮, 온도계는35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아들이 미국 여행을간다고 해서마일리지로 항공권을 예매해 주겠다고 했다. 쌓여있는마일리지가 꽤 되는데앞으로해외여행을 갈 일도없을 것 같고 유효기간이 다가오는 마일리지도 있기에 선심을 쓰려고한 것이다. 날짜가 다 되어가는데도 아무 말도 없길래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항공권을 빨리 구매해야 한다는다급한 연락이 왔다. 허둥지둥집으로 달려와서항공권을 예매하고 유류세 결제를 한 후 아들에게 보냈더니 잠시 후 아들에게 전화가 왔다. 날짜를 잘못 보내서 항공권 변경을 해야 한단다.
아들을 키우면서 이런 일은 일상이었다. 매일 108배를 하고 마음 수련을 하면서 어느 정도단련이 되었건만 순간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서 소리를 지르고 전화를 끊었다. 마일리지 항공권은 즉시 결제를 해야 하고 날짜를 변경할 때는 위약금으로 3천 마일리지와 재발행 수수료를 지불해야 한다.날짜를 두 번이나 확인했는데 5분도 안 지나서 변경을 하라니 짜증이 났다. 출장 다니면서 고생고생해서 쌓은 마일리지를 선뜻내주겠다는 호의를 무시한 것 같아서 부아가 났다. 변경하려면 돈을 내야 하니 알아서 하라고 쏘아붙인 후 전화를 끊었다.
철저한계획형 엄마는 모든 것이 다 즉흥적인 아들과의 관계가 여전히어렵다. 해외여행일주일 전에 비행기 표를 예매하는 것도 이해할 수가 없고 재차 확인을 했는데 틀림없다고 하던 날짜를 5분 만에 변경해 달라고 하는 것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사실 아들의 이런 행동은 평소 같았으면 조용히 넘어갈 수 있는 일이었다. INFJ 엄마가 ENTP 아들을키우는 일상은고난과 수련의 연속이었다. 초보 엄마 시절에는 아들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아서 고전분투했지만 이십육 년 동안 아들에게 하드 트레이닝을 받아서 이제 아들은 나와 다른 종족이라고 생각하고 산다.
문제는 친정 엄마까지 나를 힘들게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지난달에 임플란트를 시작해서 살이 계속 빠지고 힘들어하시던 친정 엄마가 급기야대상포진까지 걸리셨다.임플란트를 하느라 몸이 힘들어서 그런 것이라면 정성껏 간호를 할 텐데 복잡한 사정이 있었다.
몇 년 전부터 친정 엄마에게 임플란트를 하시라고 권유를 했다. 시아버님이 임플란트 때문에 고생하시는 것을 봐서 하루라도 빨리 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무슨 이유인지차일피일 미루시더니 여든이 가까운 나이에 임플란트를 하겠다고 선언을 하셔서 급하게 치과를 알아보고 병원을모시고 다녔다. 치아 대부분을 교체해야 하는 임플란트라 한 달넘게 유동식 밖에 못 드셨고 몸무게가 5킬로 넘게 빠지셨다. 그런데 그렇게 몸이 안 좋은 상태로 복지관에 가서 에어로빅을 하고 회식까지 가셔서 대상포진에 걸린 것이다. 대상포진이라는 진단서를 보고 어이가 없어서 한참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어린애도 아닌데 몸이 안 좋으면 알아서 조심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한 달 사이에 몸무게가 5킬로 넘게 빠졌는데 그 몸으로 무리하신 것이 못마땅했다.
나는 70년대 생이다. TV 프로그램에서 유명한 강사가 우리 세대가 불쌍한 세대라며 위로하는 것을 보았는데 내가 절실하게 실감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 세대는 평생 열심히 일해서 자식을 키웠다. 그런데 자식들은 서른이 넘어도 부모 품을 떠날 생각이 없다. 물론 취업도 어렵고 지금 세상이 우리 때보다 더 살기 어렵다는 것은 이해한다. 그런데 우리는 늙은 부모님도 책임져야 한다. 오십 년 넘게 험하게 사용한몸뚱이는 예전 같지 않은데 성인이 된 자식도 돌봐야 하고 나이 드신 부모까지 책임져야 한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자식들에게 최고의 환경과 교육을 제공하느라 모아놓은 돈도 없는데 회사에서는 우리를 내치려고 한다. 대체 우리들은 어디에 가서 숨을 쉬어야 할까?
집에서는 도저히 숨을 쉴 수가 없어서 나섰는데 하필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날 오후 2시였다. 35도라는 온도계를 보고도 달리 갈 데가 없어 땀을 흘리며 한없이 걸었다. 답은없지만 땀을 흠뻑 흘리고 나니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서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엄마 죽을 끓여드리고 아들 비행기 표를 변경해 주어야겠다.
오십이 넘으면 인생이 조금은 평안해질 줄 알았는데 평안은 대체 언제쯤 오는 것일까? 나는 오늘도 참고 인내하며 하루를 삼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