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을 Dec 08. 2020

오늘도 사주를 봅니다.

요즘 들어 점을 많이 본다. 역병이 창궐한 시기인 만큼 전화를 활용한 비대면으로 점을 본다. 우리나라는 이런 시스템이 참 잘 구축되어 있다. 우선 점을 봐줄 인력 풀이 충분히 확보되어 있고, 카운슬러 별로 평점뿐 아니라 세부 리뷰까지 잘 작성되어 있으며, 가격도 아주 세밀하게 (심지어 30초 단위로) 책정이 되어 있어 주머니 사정에 따라 상품을 선택할 수 있다. 


나는 점을 보는 그 순간이 참 설렌다. 그것이 사주이건, 신점이건, 타로이건 상관없이 누군가와 내 인생에 대해 얘기한다는 사실이 참 좋다. 아무리 사례를 한다고는 하지만 대체 세상의 누가 약속된 시간 동안 온전히 내 이야기만 듣고, 내 과거를 위로해주고, 내 미래를 격려해주겠는가. 물론 때론 호통을 치며 괜히 겁을 주거나, 과거 사실에 대해 틀려 놓고 우기는 경우도 있지만, 그래도 내 경험상 열에 여덟 정도는 만족스럽다.


내가 점을 볼 때 가장 많이 물어보는 질문은 과연 내가 내 진로를 올바르게 선택했는가, 즉 통번역사가 정말 내 인생 직업이 맞는가에 대한 것이다. 솔직히 나이 사십이 넘어 진로 고민을 할 줄은 몰랐다. 진로 고민이라는 것은 보통은 스무 살 이전 학생들의 전유물이라 생각한 적도 있었다 (내가 스무 살 이전에는 말이다). 그런데 살아보니 이 진로라는 것은 평생 고민거리이더라. 취직을 해서도 이 직종이 나에게 과연 최선인가라는 고민을 퇴사할 때까지 하더니, 통번역사로 경력을 전환한 이후에도 내 직업에 대한 확신이 없다.

 

통역을 하기 전에는 죽을 것처럼 떨리고 통역을 시작하면 이 시간이 제발 빨리 흐르기만을 빌고 통역이 끝나면 더 잘할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에 우울하다. 이러한 악순환이 요즘 들어 더 심해진 듯해서인지 점을 더 자주 보고 직업에 대한 질문을 쏟아낸다. 혹시 당장이라도 온라인 쇼핑몰을 오픈하면 대박 날 수 있는데 팔자에도 없는 영어 하느라 고생하는 것은 아닌지 심히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하지만 희한하게 대부분의 카운슬러들은 내가 내 진로를 잘 선택했다고 한다. 


“이런 사주는 해외랑 관련 있는 일을 해야 해요. 외국어나 무역 관련된 일 말이야. 내년까지는 힘들 거 같은데 그래도 견뎌야 해요. 그럼 2년 후부터는 쭉쭉 풀립니다.”

“견디면 좋은 날이 오나요? 체력도 딸리고 머리는 더 딸리는 것 같은데요.”

“견뎌야 합니다. 올해는 다 갔으니, 일 년만 버티세요. 그래도 내년은 올해보다 버틸만할 거예요.”

넵 믿습니다! 


생각해 보면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는 정해져 있다. 그리고 카운슬러들은 귀신같이 그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그것은 바로 내가 지금 올바른 길을 가고 있고 지금 비록 힘들더라고 미래는 나아질 것이라는 것. 그 뻔한 이야기를 역사와 전통에 기반한 사주를 근거로 듣고 싶어서 일이 힘에 부칠 때마다, 현실이 울적하고 미래가 암울할 때마다 나는 전화사주, 인터넷 사주를 결제한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런 얘기를 늘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으면 얼마나 힘이 날까 하는 생각도 든다. 지금 괜찮다고, 잘하고 있다고, 내일은 오늘보다 나을 것이라고. 사실 그런 좋은 사람 곁에 없어도 괜찮다! 나 스스로가 그렇게 믿을 수만 있다면, 현실에 대한 강한 확신과 미래에 대한 무한한 희망이 내 안에 가득하다면, 얼마나 완벽할까?


아니면 그냥 명리학을 배워볼까?

작가의 이전글 신발 본전 뽑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