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점을 많이 본다. 역병이 창궐한 시기인 만큼 전화를 활용한 비대면으로 점을 본다. 우리나라는 이런 시스템이 참 잘 구축되어 있다. 우선 점을 봐줄 인력 풀이 충분히 확보되어 있고, 카운슬러 별로 평점뿐 아니라 세부 리뷰까지 잘 작성되어 있으며, 가격도 아주 세밀하게 (심지어 30초 단위로) 책정이 되어 있어 주머니 사정에 따라 상품을 선택할 수 있다.
나는 점을 보는 그 순간이 참 설렌다. 그것이 사주이건, 신점이건, 타로이건 상관없이 누군가와 내 인생에 대해 얘기한다는 사실이 참 좋다. 아무리 사례를 한다고는 하지만 대체 세상의 누가 약속된 시간 동안 온전히 내 이야기만 듣고, 내 과거를 위로해주고, 내 미래를 격려해주겠는가. 물론 때론 호통을 치며 괜히 겁을 주거나, 과거 사실에 대해 틀려 놓고 우기는 경우도 있지만, 그래도 내 경험상 열에 여덟 정도는 만족스럽다.
내가 점을 볼 때 가장 많이 물어보는 질문은 과연 내가 내 진로를 올바르게 선택했는가, 즉 통번역사가 정말 내 인생 직업이 맞는가에 대한 것이다. 솔직히 나이 사십이 넘어 진로 고민을 할 줄은 몰랐다. 진로 고민이라는 것은 보통은 스무 살 이전 학생들의 전유물이라 생각한 적도 있었다 (내가 스무 살 이전에는 말이다). 그런데 살아보니 이 진로라는 것은 평생 고민거리이더라. 취직을 해서도 이 직종이 나에게 과연 최선인가라는 고민을 퇴사할 때까지 하더니, 통번역사로 경력을 전환한 이후에도 내 직업에 대한 확신이 없다.
통역을 하기 전에는 죽을 것처럼 떨리고 통역을 시작하면 이 시간이 제발 빨리 흐르기만을 빌고 통역이 끝나면 더 잘할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에 우울하다. 이러한 악순환이 요즘 들어 더 심해진 듯해서인지 점을 더 자주 보고 직업에 대한 질문을 쏟아낸다. 혹시 당장이라도 온라인 쇼핑몰을 오픈하면 대박 날 수 있는데 팔자에도 없는 영어 하느라 고생하는 것은 아닌지 심히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하지만 희한하게 대부분의 카운슬러들은 내가 내 진로를 잘 선택했다고 한다.
“이런 사주는 해외랑 관련 있는 일을 해야 해요. 외국어나 무역 관련된 일 말이야. 내년까지는 힘들 거 같은데 그래도 견뎌야 해요. 그럼 2년 후부터는 쭉쭉 풀립니다.”
“견디면 좋은 날이 오나요? 체력도 딸리고 머리는 더 딸리는 것 같은데요.”
“견뎌야 합니다. 올해는 다 갔으니, 일 년만 버티세요. 그래도 내년은 올해보다 버틸만할 거예요.”
넵 믿습니다!
생각해 보면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는 정해져 있다. 그리고 카운슬러들은 귀신같이 그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그것은 바로 내가 지금 올바른 길을 가고 있고 지금 비록 힘들더라고 미래는 나아질 것이라는 것. 그 뻔한 이야기를 역사와 전통에 기반한 사주를 근거로 듣고 싶어서 일이 힘에 부칠 때마다, 현실이 울적하고 미래가 암울할 때마다 나는 전화사주, 인터넷 사주를 결제한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런 얘기를 늘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으면 얼마나 힘이 날까 하는 생각도 든다. 지금 괜찮다고, 잘하고 있다고, 내일은 오늘보다 나을 것이라고. 사실 그런 좋은 사람 곁에 없어도 괜찮다! 나 스스로가 그렇게 믿을 수만 있다면, 현실에 대한 강한 확신과 미래에 대한 무한한 희망이 내 안에 가득하다면, 얼마나 완벽할까?
아니면 그냥 명리학을 배워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