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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 Dec 08. 2020

신발 본전 뽑기

나는 길에서 잘 넘어진다. 사십하고도 중반인데 종종 길에서 대자로 뻗는다. 어쩌다가 아주 가끔 넘어지는 사람이라면 많이 창피하겠지만, 나는 종종 그런 편이라 아무렇지도 않게 툭툭 털고 일어나 가던 길을 간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아무렇지 않을 수 없었다. 또 넘어지는 바람에 내가 아끼던 운동화 겉면에 스크래치가 심하게 났기 때문이다. 그것도 하얀색 운동화인데 말이다. 스크래치를 모른척하고 이 운동화를 신자니 내가 너무 무신경한 사람 같았고, 새로 사자니 돈이 아까웠다. 여하튼 그 운동화가 편하고 정이 들었다는 이유로 꾸역꾸역 신고 다녔는데 그 모습이 열세 살짜리 내 조카한테는 좀 거슬렸나 보다. 


“이모, 그 신발 산지 얼마 됐어요?”

“여름에 샀으니까, 한 사 개월쯤 되었지? 왜?”

“얼마 줬어요?”

“비싸게 샀어. 한 십육만 원은 줬을 거야.”

“그럼 한 달에 사만 원, 하루에 천삼백 원 정도네요.”

“으응, 그런가?”

“하루에 천삼백 원 정도면 본전은 뽑은 건가요?”

“글쎄, 거의 매일 신긴 했지. 본전은 뽑았다고 봐야 하나? 왜 너무 긁혔나? 그만 신을까?”

“이모가 본전을 뽑았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하세요.”


대놓고 신발이 그게 뭐냐고, 새로 하나 장만하라고 하면 내가 상처라도 받을 거라 생각한 건가. 아마 신발이 흉하다는 것을 나름의 방식으로 돌려 말한 것이려니…기특한 녀석.


하지만 하루 천사백으로 본전을 뽑았다고 보기에는 좀 비싼 감이 있다. 그래서 난 하루 오백 원이 될 때까지, 즉 육 개월 더 이 운동화를 신기로 했다. 그렇게 결심을 하니, 스크래치 난 신발을 보아도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스크래치가 조금 부끄럽다가도 어차피 육 개월 후에는 버릴 신발인데 라는 생각에 신경이 덜 쓰였다. 그리고 버리는 시점이 되면 하루에 오백 원 꼴로 십 개월은 꼬박 신은 것이니 나름 본전은 뽑았다고 수긍할 수 있다. 


“이모는 이 신발 육 개월은 더 신을 거야. 그럼 본전 뽑은 걸로 생각할 수 있을 거 같아.”

“그럼 그렇게 하세요. 그런데 이모, 저라면 그냥 계속 쭉 신을 거 같아요.”

“으응?”

“이 신발을 버리면 또 새 신을 사야 하잖아요. 그럼 쉬는 날 백화점에 가야 하잖아요. 저는 휴일에 집 밖에 나가는 게 세상에서 제일로 싫어요.”

뭐야, 이 녀석, 그냥 내 신발 가지고 단순 산수 계산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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