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을 Nov 15. 2020

이젠 좀 쿨해지자.

인생 후반기를 준비하며. 

자꾸 무서운 것이 많아지는 마흔 중반. 폐경이 다가오는 것도, 노화와 더불어 몸의 기능이 쇠퇴할 것도, 밥벌이할 수 있는 날이 하루하루 줄어드는 것도 다 무섭다. 그중 가장 무서운 것은 단연 건강에 관한 것. 나는 건강에 관해 불안과 강박증이 심하다. 인터넷에 떠도는 질병 관련 기사만 봐도 꼭 그 질병에 걸린 것처럼 기분이 불쾌해진다. 내 의사 선생님은 "인터넷에 있는 건강 관련 기사는 그냥 연예계 가십거리 정도라고 생각하면 돼요."라며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라지만 그게 맘대로 되면 병원에 갈 이유도 없겠지.   


그런 내 주변에 요즘 몇몇 친구들이 수술을 했다. 한 친구는 자궁에 혹을 떼어 내었고, 한 친구는 가슴에 혹을 떼어 내었다. 아무리 별거 아닌 수술이라고들 하나 여하튼 전신 마취를 하는 수술이고, 떼어낸 혹을 조직검사를 해서 예후가 안 좋을 수도 있으니 당연히 걱정스러웠다. 만일 나라면, 마취가 잘못되어 깨어나지 못할 가능성에서부터 개복해 보니 혹이 두 새개쯤 더 있을 가능성, 조직검사 결과 암일 가능성, 전신 마취로 기억력이 감퇴할 가능성까지 온갖 경우의 수를 생각하며 불안과 두려움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렸을 것이다. 


내 친구들은 어땠을까?


자궁 혹을 떼어낸 친구는 휴가 일수와 수술 후 호캉스에 관해 걱정했다. 

"병원에서 수술 후 이 주 쉬라고 하는데 회사에 그대로 말해도 괜찮을까? 그리고 수술 후 일주일 있다 호텔 예약했는데 미뤄야 할까? 에이, 요즘 날씨도 좋은데 여행 가고 싶다. 수술 날짜를 잘 못 잡았어."

"넌 수술 걱정은 안 되니? 혹도 크다면서?"

"그건 뭐, 내가 걱정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잖아."


가슴에서 혹을 떼어낸 친구는 수술 후 언제부터 술을 마실 수 있는지와 골프 약속에 대해 걱정했다. 

"넌 가족력도 있다면서, 수술 걱정은 안 돼?"

"가족력이 있으니까 미리미리 혹을 떼는 거지. 정기적으로 검사하고 생기면 또 떼어내고 그러면 된데."


이런 대인배들. 

그들에게 혹을 떼어내는 수술쯤은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것이나 골프 라운딩 이상의 의미는 아닌 것인가? 그냥 살면서 어쩔 수 없이 발생한 조금 귀찮고 신경 쓰이는 그런 해프닝에 불과한가? 그들의 이런 태도는 나에겐 좀 충격이었다. 나에겐 상상만으로도 무시무시한 "수술"이란 이벤트가 그들에겐 그냥 일상 속에서 발생할 수도 있는 이런저런 일 중 하나라니.  물론 이들이 나에겐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고는 밤마다 불안에 떨며 수술 걱정에 잠 못 이루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병이나 수술에 휘둘리지 않고 담담하게 일상을 유지하는 모습은 나에겐 상당히 대단해 보였다. 


친구들은 다들 아무 문제없이 혹을 떼어내고 일상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다. 다시 회사에 출근하고 지인들을 만나 와인을 마시고 가족들과 여행을 간다. 나에게는 매우 심각한 수술이란 이벤트는 그들의 일상에 별 스크래치를 내지 못했다. 


나도 친구들을 닮고 싶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내가 걱정한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잖아"라며 쿨하게 넘기고 싶다. 그럴 수만 있다면 인생 후반기 이러저러한 걱정거리가 좀 덜해지려나. 



작가의 이전글 실패한 인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