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실패한 인생이야."
평소에도 말을 함부로 하는 아빠라 그러려니 생각하려 해도 씁쓸함은 남는다. 아빠의 논리는 이렇다. 애초에 난 이과가 아닌 문과에 진학했어야 했고, 대학 전공도 적성과 무관하게 잘못 선택했으며, 첫 직장으로 간 호텔에서는 연애나 하느라 제대로 된 기회를 잡지도 못했고, 그러고는 그냥 어영부영 지금까지 그렇게 살고 있다는 거다.
"이과 간다 했을 때 문과 가라고 말리지 그랬어요?"
"니랑 네 엄마가 내 말을 듣나."
"호텔 겉보기랑은 달라요. 그렇게 잡을 기회 많은 곳 아닌데..."
"다 니 하기 나름이다."
"그래도 뒤늦게 통역대학원 나와서 밥벌이하잖아요."
"그게 뭐 니 적성이가, 그냥 먹고살려고 한 거지. 너는 애초에 문과에 가서 신방과 같은 전공을 하고 언론이나 방송일을 하면서......"
나는 귀를 닫는다.
아빠는 내 인생을 적성과 무관하게 밥벌이나 하는 실패한 인생으로 규정지었다. 좋게 보면 자식이 기대한 만큼 인생을 살지 못해 부모 된 입장에서 안타까운 마음을 아주 많이 세련되지 못한 방식으로 표현한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 뭐? 그냥 비옷을 입고 물 한 바가지 뒤집어쓴 기분이다. 좀 꿉꿉하긴 하지만 젖진 않았다.
아빠가 말한 실패라는 것은 과거의 나에 관한 것이다. 누군가가 실패라고 정의한다고 해서 뭐 하나 달라지는 게 없다. 그냥 난 그렇게 살아온 것이다. 그리고 내 과거는 대학 전공, 직장 등 몇몇 가지로 요약될 수 없는 것이다. 그 안에 아빠가 모르는 수많은 스토리가 겹겹이 끼워져 있다. 며칠을 밤샘 작업을 하고 지하철에서 기절한 적도 있고, 대학 축제 때 술에 취해 학교 잔디밭에서 숙면을 취한 적도 있다. 평생의 사랑이라 믿었던 사람과 이별도 했고 후회되는 사랑도 했다. 상사들 앞에서 벌벌 떨며 프로젝트 발표도 해보고 내가 기획한 상품이 팔리지 않아 밤에 잠을 못 이룬 적도 있다. 내 인생은 이렇게 수많은 스토리로 가득하다. 어느 누구의 인생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 시간 시간들을 실패니, 성공이니 규정하는 것은 좀 오만한 일이 아닐까?
앞으로도 나는 죽는 순간까지 계속해서 스토리를 써 내려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또 누군가가 내 인생에 성공이니 실패니 하는 잣대를 들이대겠지. 그러든지 말든지 오늘 하루 내가 쓰고 있는 스토리에 집중하자. 어차피 내 인생이다. 성공이나 실패도 나만이 결정할 수 있는 문제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