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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 Apr 25. 2020

이것은 애증......

좀 편하게 살 순 없는거지?




통역 시작 한 시간 전부터 통역을 하기 직전까지, 개인적으로 제일 힘든 시간이다. 매를 맞는 것보다 매 맞는 시간을 달달 떨며 기다리는 것이 더 고통스러운 것처럼 말이다. 이 시간이 되면 나는 통역이라는 직업이 나라는 인간에게 과연 적합한 것인가, 계속할 수 있는 직업인가, 라는 질문을 수없이 한다(아마 앞으로도 할 것이다). 게다가 가끔은 약을 복용해야 할 만큼 긴장의 정도가 심하다.


하지만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막상 통역을 시작하면 어떻게든 회의가 무사히 진행되어야 한다는 직업적 사명감(?)에 내가 긴장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힌다. 나는 그저 최선을 다해 듣고 최선을 다해 말할 뿐이다. 비록 가끔 믿기지 않을 만큼 구린 영어가 나오기도 하고, 소리는 들리기는 하는데 뭔 말인지는 모르겠는, 식은땀나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하지만 어찌어찌 시간은 끝을 향해 흐른다.


가끔 미디어를 통해 소개되는 당당하고 여유 있는 통역사들을 보면 난 더 쭈구리가 된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그들의 모습에 은근 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한다. ‘이봐, 세상에는 나 같은 쫄보 통역사도 있다고, 통역사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을 심어주지 말란 말이야!’라고 소리치고 싶은 심정이다.


나는 마흔을 앞두고 통역 대학원에 합격했다. 대학원 동기들은 대놓고 “Forty is around the corner(마흔이 코앞이네)”라고 나를 놀렸다. 당시 초등학교 3학년인 아이를 키우면서 대학원 생활을 병행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또 어찌어찌 대학원을 졸업하고 회사에 취직해 통번역사로의 경력을 쌓고 있다.


하지만, 통번역사로써 실제 일을 해보니 내가 얼마나 큰 착각과 환상 속에서 이 일을 택했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나는 단순히 ‘영어는 마스터해야지’라는 오만방자한 생각으로 통번역 대학원에 입학했다. 졸업하면 세상 모든 영어를 듣고, 세상 모든 영어를 말하게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여전히 영어는 저 멀리서 나의 미천한 실력을 비웃고 있다.


통역사는 언제 어디서든, 무슨 말이든, 다른 언어로 별 어려움 없이 휙 휙 옮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정말 크나큰 착각이다. 통역해야 하는 분야가 전문적일수록 충분한 사전 지식이 필요하고, 그만큼 많은 시간을 투자해 ‘공부’ 해야 한다. 나로서는 이 점이 정말 괴롭다. 어떤 통역이든 잡히면 ‘공부’를 해야 한다. 마흔이 넘었는데, 대학원도 졸업을 했는데, 정말 끊임없이 지겹게 ‘공부’를 한다. ‘공부’와 ‘공부’ 간에 무슨 연결성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전 공부는 ‘재생 에너지’에 대한 것이었는데, 다음 공부는 ‘석류 수입’에 관한 것일 수 있고, 그다음 공부는 ‘자동차 232조’에 대한 것일 수 있다.


그리고 요즘은 웬만한 쉬운 영어, 즉 나도 당당하고 여유롭게 통역할 수 있는 부분들은 대부분 직접들 하시기 때문에 내 유려한 영어를 잠시나마 뽐낼 기회도 별로 없다. 전문용어 가득한 긴장감 가득의 통역을 하고 나면 손발이 후들후들 떨리고 당장 집에 가서 술 한잔 하고 드러눕고 싶다. ‘정말 이 짓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면서……


이전 글에서 밝혔다시피 나는 우울, 불안, 강박 등의 병을 가지고 있다. 이런 병을 가진 사람이 긴장 가득한 통역사라는 직업을 가진 것은 어떻게 보면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이제 마흔도 훌쩍 넘어 직업을 바꾸기도 참 애매하다. 그런데 말이다, 극과 극은 통한다고 했던가, 참으로 아이러니한 것은 한동안 통역이 잡히지 않으면 ‘통역 금단현상’이 나타난다. 통역 전에 달달 떨면서 공부하던 시간과 통역을 마친 후 들이마시던 시원한 공기가 문득문득 그리워지는 것이다. 마치 스톡홀름 증후군에 걸린 인질처럼 통역이란 못된 범인에게 감화되는 비이성적인 심리 상태를 보이는 것이다.


의사는 내가 불안장애 등으로 늘 긴장해 있기 때문에 긴장이 없는 상태보다 긴장한 상태를 더 편하게 느끼는 것 같다고 한다. ‘엥, 그럴 수도 있나요? 선생님, 긴장한 상태를 더 편하게 느끼는 사람도 있나요?’라고 묻고 싶었지만, 세상엔 별 사람 다 있으니까 그럴 수 있다고 치자.


중요한 것은 통역 준비가 힘들어도, 통역 전 긴장하는 순간이 괴로워도, 때론 구린 퍼포먼스로 죽고 싶어도, 꾸역꾸역 통역사로서 오늘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나는 가끔 그런 내가 못견디게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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