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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필 Sep 01. 2020

유감스럽지만, 의사는 공공재다.

의료인은 공공성을 갖는 존재일 수 밖에 없다.

병원이 멈췄다. 정확히는 종합병원이 멈췄다. 개업의의 휴진 참여율은 높지 않기 때문에 전공의들이 중심이 되는 종합병원만 멈췄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간호사, 방사선사 등, 병원을 구성하는 다른 이들은 여전히 병원을 지키고 있다. 하지만 의사들이 자리를 비운 순간, 의료 현장은 불확실성이 커질 수 밖에 없다.


병원에서 의사의 존재와 역할은 가벼울 수 없다. 요양병원과 같이 간호업무가 중심이 되는 예외적인 경우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의료행위는 의사의 주도로 이루어지는 것이며, 앞으로도 그래야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의사가 사라진 병원은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게 된다.


파업은 빈 자리를 만든다. 비어 있는 자리로 말하는 행위다. 무엇이든 제 자리에 있으면 그 소중함이 와닿지 않는 법이다. 사라지고 나서야 비로소 생각하게 된다. 그것이 파업이 지니는 힘이다. 약자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며, 이를 통해 많은 현실이 변화한 것은 사실이다.


빈 자리를 바라보며 생각해야할 것은 이 빈자리가 왜 생기게 되었는가다. 무엇이 이들을 제 자리에서 떠나게 했는지 생각해봐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에 주목해야한다.


하지만 의사들의 주장에 공감하기는 어렵다. 의사협회는 '의사는 공공재가 아니다'라는 구호를 내세웠다. 의사가 물건은 아니라는 점만 수긍할 수 있을 뿐이다. 의사가 없는 공공의료는 불가능하며, 병원 역시 의사를 포함한 의료인력이 충분히 공급되어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혹자는 의료 서비스의 질이 떨어질 우려가 있다고 주장한다. 충분한 교육환경이 마련되지 않은 의대에서 부실한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는 공감한다. 하지만 일각에서 나타나는 "'최상위권 학생'들만 들어가는 의대에 그렇지 않은 학생들이 진입하면 문제가 될 것"과 같은 주장은 의료인에게 요구되는 윤리성에 대한 의심만 키울뿐이다.


스스로 사회 엘리트라고 자처한다면, 그리고 진정 공공의료에 대해 생각한다면, 의료정책에 대해서도 무거운 판단이 필요하다. 의사의 숫자가 부족한 것은 엄연한 사실이며, 지역 간 의료격차가 작지 않다는 것 또한 무거운 현실이다. 서울과 경북의 치료가능 응급환자 사망률이 3배 수준이라는 점, 서울과 경남의 건강 수명 격차가 5년 가까이 난다는 점은, 지역의료 환경 개선을 위해 양적 성장 역시 필수적임을 보여준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지방 인구는 감소하는데, 무작정 의사를 늘리는 것이 옳은가?" 하지만 '소멸 위기'의 지역현실의 원인 가운데에는 의료접근성의 부족도 적지 않은 기여를 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또한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의사 정원 확대가 아닌, 처우개선이 해결책이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의사 숫자가 늘어나는 것은 처우개선과도 연결된다. 종합병원에서 의사들이 엄청난 노동강도를 감당하고 있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많이 단축되었다해도 주당 80시간이다. 수련과정의 의사들이라도 더 나은 노동환경에서 생활할 권리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의사들 역시 주당 52시간, 더 나아가 주당 40시간 노동을 보장 받는 것이 필요한데, 이게 가능하려면 의사 숫자 역시 마찬가지로 늘어나야한다.


처우개선과 수가 현실화를 요구한다. 그렇지만 의사 숫자가 늘어나는 것은 원치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의사들의 주장을 어떻게 해석해야하는가?


의료현장에서 의사는 다른 의료인들을 압도하는 처우를 누린다. 여기서 우리는 '의사가 누리는 처우가 어디에서 온 것인가'라는 질문을 할 필요가 있다. 이는 그들이 고등학교 3년간 '최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했기 때문도 아니며, 방대한 공부량을 소화해냈기 때문도 아니다. 모든 직업은 저마다 나름의 노력을 요구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이유에서 의사들을 더 특별하게 대우해야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그저 신분의식에 불과하다.


 "도대체 어느 정도까지 처우가 나아져야 하느냐"는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의 일갈이 의료인의 처우를 더욱 개선해야하는 자신의 역할을 부정하는 것처럼 들리면서도, 한 편으로는 공감이 가는 것도 사실이다. 


의사의 처우는 의사가 짊어져야하는 책임에 대한 대가다. 의사는 의료현장에서 핵심적인 권한을 수행한다. 의사의 판단 하나 하나는 사람의 생명을 좌우한다. 대체의료의 성격이 강한 한의학이 어디까지나 환자 개인의 선택영역에 남아야하는 것인 반면, 의학은 사회의 건강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존재다.


여기에서 의사들이 누리는 독점적 권리가 생긴다. 평범한 노동자 한 사람이 상상하기 어려운 의사의 수입은 그들이 지는 책임에 대한 금전적 보상이다. 그리고 그 책임은 다양한 형태의 의무로 구체화 된다. 전시와 비상시에 의료인력이 국가의 통제에 응해야하는 것은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의사는 자신의 직업이 가진 공적 책임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파업이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 파업의 동기가 문제다. "의사는 공공재가 아니다"라는 의사들의 주장은 결국, 그들이 누리게될 미래의 기득권을 보장 받고 싶다는 욕망의 표현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의사는, 의대는, 병원은 공공재라는 사실을 다시금 생각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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