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개념의 차이
시간이란 무엇일까. 나에게 시간이란 인생에서의 금이고, 약속에선 지켜져야 하는 예절이며, 그저 멈춰줬으면 하는 소망의 대상이다. 작은 테두리 안에 새겨진 1에서 12까지의 숫자와 눈금. 시간과 분과 초는 인생이 흘러가는 것을 직접적으로 느끼게 해준다. 나이가 들어감도 동시에 느껴져서 슬프기도 하다. 흘러가는 시간을 보면 무엇이 생각나는지 스스로 생각해 본 적 있는가? 저 시간이 아깝게 느껴질 수도 있고, 그래서 조급함이 느껴질 수도 있다. 빨리 흘러가주길 바랄 수도 있고, 세월아 내월아 식으로 내버려 두고 싶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어쨌거나 시간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그것을 기준으로 시간을 정의한다. 하지만 만약 그 시간의 중심이 나만을 위해 흐르지 않는다면? 그리고 나의 시간에 대한 개념이 옳지 않을 수도 있다면? 한 번쯤은 생각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다.
프랑스에는 Quart d’heure de politesse(꺄흐 되흐 드 뽈리떼스) 라는 말이 있다. ‘15분의 예절’이라는 말인데, 만약 7시가 약속이라면 정시에 가지 않고 15분의 여유를 두고 가는 것을 뜻한다. 초대문화가 있는 프랑스는 정해진 시간까지 준비가 되지 않는 경우를 고려해 손님 쪽에서 15분의 여유를 두고 방문한다고 한다. 한국에선 약속된 시간의 5분 또는 10분 전에 도착해서 기다렸는데 15분의 여유라니, 참으로 이색적인 개념이 아닐 수 없었다. 이것 때문에 정시 또는 그 전에 도착해서 기다리던 내 습관이 한 동안 무너졌던 적이 있다. 그리고 분별없이 적용해 폐를 끼친 적도 있다. 왜냐면 이게 모든 프랑스인에게 적용되지 않는 다는 것을 몰랐으니까. 그리고 모든 사람이 프랑스에 와서 이 15분의 여유를 아는 것은 아니니까..
프랑스가 15분이라면 아프리카는 기본 30분에서 1시간을 기다린다. 공무원과 약속을 잡고 만날 때도 정시에 만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일부러 기다리게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들 정도였으니 아프리카 인들의 느긋한(?) 시간관념은 가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본인 존재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손님을 기다리게 하는, 일종의 기 죽이기라고 할까.. 어떤 이유가 됐건 간에, 내가 있었던 콩고민주공화국에서는 기다리는 것이 일상이었다.
한 번은 농산물 판매자를 만나기로 해서 킨샤사의 약속 장소에 시간 맞춰 갔던 적이 있다. 습관이란 참 무서운 것이, 프랑스에서 그렇게 당하고도 나는 정시 전에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30분, 한 시간이 지나서도 오고 있다는 말 뿐, 나타나지 않았다. 그 동안 나는 콜라와 환타를 얼마나 들이켰는지 모른다. 지금 생각해도 속이 터질 것 같은 기분만 생생히 기억날 뿐이다.
빨리빨리를 외치던 한국과 극의 대조를 이루는 문화기에 누구든지 처음엔 시간에 적응하기 힘들 것이다. 처음 프랑스 유학을 왔을 때 계좌를 열기 위해 은행을 간 적이 있다. 그 날 바로 만들고 한국에서 송금을 받으리라는 계획. 얼핏 보면 문제 없이 진행될 것 같았지만 그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계좌를 여는데 까지 자그마치 2주정도 걸렸던 것 같다. 먼저 은행원과 상담을 받는다. 그리고 다시 약속시간을 정한다. 나의 경우엔 일주일 뒤에 다시 만나기로 하고 필요한 서류를 구비해 가서 제출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몇 일을 더 기다려서야 계좌가 열리는데 그것도 카드가 우편으로 날라온다. 서류준비가 늦어지면 당연히 더 늦어질 수 밖에..신청한 자리에서 10분도 안돼 일사처리로 이루어지던 한국의 행정 시스템이 사무치도록 그리운 순간이었다.
여담으로, 프랑스 친구들과의 만나기로 한 날, 약속 시간에 늦은 채 멀리서 웃으며 다가오는 녀석들에게 눈 빛 레이저를 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프랑스 인들이 시간을 대하는 여유로운 자세와 수 많은 이민자들이 섞여 복잡한 행정이 이루어지는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면 조금은 여유 있고 관대한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아프리카도 마찬가지다. 시간 약속의 무지함에 순간 화는 치밀어 오르지만, 냉정하게 현실을 보면 왜 그들의 시간은 우리의 시간과 다른지 이해할 수 있다. 수도는 그나마 아스팔트 도로가 있다. 시내를 벗어나면 약속시간이 의미가 없어진다. 몇 명을 채워 넣는지 모르는 구식 세단 택시, 좁은 좌석에 꽉 찬 폐차 직전의 벤츠 모델의 봉고차, 수 많은 중국산 오토바이는 제 시간에 맞춰 갈 수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교통편이 엉망이다. 이런 환경이기 때문에 그들의 시간개념을 조금씩 이해할 수 있었다. 약속 시간을 정확히 정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 일이며, 단지 숫자는 ‘그 때’가 아니라 ‘그 때쯤’을 의미할 뿐이다.
아프리카의 시간개념을 이해 했다고 생각했지만 석사 2년 차에 또 다른 혼란에 빠지게 됐다. 내가 다녔던 학교에는 다양한 인종의 학생들이 있었다. 프랑스인은 물론, 나이지리아, 러시아, 독일, 가나, 중국, 이탈리아 등에서 온 학생들이었다. 이들과 함께 지정학 수업을 듣게 되었다. 한 학기에 걸쳐 준비가 이루어지는 이 수업은 조별로 각 대륙(아메리카,유럽,아시아,아프리카,중동)을 선정하여 한 학기 동안 수업을 진행했다. 그리고 학기 말에 프레젠테이션으로 마무리 하는 수업이었다.
내가 선택한 대륙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였다. 아프리카는 크게 북아프리카(왼쪽부터 모로코,알제리,튀니지,이집트)와 그 밑 사하라 사막, 그리고 사막 이남지역으로 나뉜다. 크게 삼등분으로 나눠서 보면 될 것 같다. 총 47개의 국가가 존재하며 과거에는 여러 국가를 포함하는 왕국들의 존재는 이 대륙이 역사적으로 얼마나 오래된 곳인지 가늠하게 해준다. 이 지역을 선택한 후 나머지 조원들도 하나 둘 합류했고, 국적으로 나누면 프랑스인, 나이지리아인, 그리고 한국인인 나였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으나, 프랑스와 아프리카 문화를 동시에 접해야 했던 것이다. 머리로는 알고 있었으나 마음이 따라가지 못하던 시절, 걱정부터 앞섰다. 프랑스 유학시절 뼈저리게 느꼈던 ‘느림의 미학’과, 1개월 간의 콩고민주공화국 생활에서 고민했던 ‘이들에게 시간은 존재하는가’라는 질문. 과연 정기적으로 만나 제시간에 팀 프로젝트를 끝낼 수 있을 것인가.. 차라리 처음이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면 쉽게 받아들이니까.
예상은 현실이 됐다. 방대한 자료 정리를 위해 각각 맡은 부분들을 정리해서 정기적으로 만나 정리를 하기로 했지만 약속은 미뤄지기 일쑤고, 정시에 오는 경우는 드물었다. 다행스럽게도, 프랑스인 친구가 책임감이 컸는지 본인이 나서서 잘 이끌려고 했다. 물론 예상 외로 약속시간도 잘 지켰다. 하지만 나이지리아 친구들은 프랑스 친구를 능가했다. 빨리 빨리에 익숙했던 나는 답답했다. 내 부분을 끝내더라도 그들이 완성해주지 않으면 프로젝트를 마치긴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마지막 날엔 모두가 민감해진 상태에서 목소리와 반응들은 점점 날카롭고 민감해졌었다. 발표 삼십 분 전까지 이어진 수정과 토론. 필요 없는 정보, 난해한 설명,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내용 등 서로의 의견으로 난타전을 벌였다.
그렇게 1학기의 길고 긴 대장정의 끝에 발표를 마치고, 우리는 언제 피해를 끼쳤냐는 듯 고생했다며 서로 토닥거려줬다. 발표를 마치고 프로젝트의 성공여부를 떠나 혼자 앉아 생각을 해봤다. 근본적으로 이 모든 게 제때 약속이 지켜지지 않은 것과, 시간의 중요성에 대해 대하는 태도의 문제로 보였다. 그렇다고 모든 잘못이 한 쪽에만 있다고 할 수 없다. 애초에 평등하지 않은 조건의 환경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에게 평등을 핑계로 나와 똑같은 행동을 강요할 수 있을까? 일 분배 자체가 잘 못된 것은 아닐까? 그들의 문화적 배경과 살아온 환경들을 사전에 충분히 이해 해야 할 나의 노력은 부족하지 않았는가? 그룹워킹은 뿌리가 다른 다양한 문화의 토대 위에 자라온 주체들이 하나의 정체성을 만들어 공통의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이다. 그 길은 지루하고 답답하면서도 어려우며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서로 다른 특성을 이해하기 위한 침묵의 노력 또한 필요하다.
시간은 모두에게 평등하게 흐른다. 동의한다. 하지만 시간은 나를 중심으로 흐르지 않기도 한다. 타인과 함께 일 땐 더욱 그렇다. 빠르게 흐를 수도, 느리게 흐를 수도 있다. 급하게 쫓기고, 여유롭게 활용할 수도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본다.
‘시간에 대해 가지고 있는 서로 다른 개념을 어떤 자세로 바라볼 것인가?’.
특히 다양한 문화 속에서 공존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노력과 이해, 그리고 희생이 필요하다. 설령 그 상황 속에서 내가 가진 개념이 맞다 하더라도, 강요하는 건 자유주의사회에서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다. 왜냐면 시간은 모두에게 다르게 흐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