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게트와 커피
프랑스 말에 Metro-Dodo-Boulot(메트로-도도-불로)란 말이 있다. 지하철-잠-일이라는 말인데, 챗바퀴처럼 반복되는 일상을 풍자한 말이다. 나 역시 청춘의 대부분을 버스-잠-도서관의 반복된 일상을 보냈다. 지루한 생활의 연속이었고, 무엇보다 무료했다. 그런 나에게 프랑스 유학의 기회가 왔다. 다양성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내게 이민자들의 나라로 불리는 프랑스는 마치 미지의 세계처럼 호기심을 들끓게 했다. 인종과 국적이 다른 만큼 그들의 생각은 어떻게 다를까? 그 궁금증을 직접 마주하기 위해 떠나기로 결심했다. 영어공부, 봉사활동, 인턴 등 무언가를 계속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잠시 뒤로하고, 반대하시는 아버지를 설득해 보내달라고 빌었다. 집안 사정이 힘든 건 알았지만 나를 위해 가족의 희생을 요구했다. 그렇게 나의 프랑스 생활은 시작됐다.
내가 유학을 한 곳은 프랑스 북동쪽 알자스로렌 지방에 위치한 ‘스트라스부르(Strasbourg)’라는 도시다. 수세기 동안 독일과 프랑스에 점령되었다 뺏기기를 반복했던 다사다난한 지역이고, 서로 국경을 맞닿고 있어 두 문화가 함께 공존하는 곳이다. 알자스어(알자스 지역에서 쓰이는 독일어 방언, 주로 고연령층이 많이 사용)가 사용되는 곳으로 가끔 어르신들과 대화를 나눌 때 이해를 할 수 없어 그저 웃음과 감탄사로 반응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 이 곳에서 나는 여유를 느끼는 방법을 배우게 되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프랑스에선 흔하디 흔한 갓 구워진 바게트(Baguette)와 커피를 통해서다.
유학생활의 어느 이른 아침, 아직 문을 열지 않은 어느 가게 앞에 길게 줄 서 있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 가게의 이름은 ‘Le Pain de mon grand père((르 빵 드 몽 그랑 뻬흐); 나의 할아버지 빵집)’이다. 실제로 어떤 백발의 온화한 할아버지가 웃음으로 반겨주진 않는다. 그땐 정말 할아버지가 빵을 판매하는 곳인 줄 알았지만 실제로 할아버지는 없어 적잖게 실망했던 기억이 난다.
어쨌든 출출하기도 하고 군중심리도 작용하여, 내 몸은 자석에 이끌리듯 그 줄의 일부가 되었다. 6시가 되자 빵집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들어섰다. 입구에 들어서자 젊은 직원들의 아침인사가 들렸다. Bonjour~!(봉 주흐). 아침의 활기찬 에너지가 뿜어져 나왔다. 유리 진열대 안으로, 마카롱, 타르트, 밀풔이, 에끌레어 등 형형색색의 프랑스식 과자들(Pâtisseries)이 보인다. 살다 살다 내 인생에서 과자에 감탄사를 내뱉긴 처음이었다. 무엇보다 내 시선을 사로잡은 건, 하얀 옷을 입은 Boulanger(불랑제; 제빵사) 한 명이 바게트 모양의 하얗고 누런 밀가루 반죽을 나무판에 올려 화로에 밀어 넣고, 동시에 화로를 살짝 돌려서 완성된 바게트를 꺼내 통에 담는 모습이었다.
너무 이색적이었다. 고풍의 화로는 그 빵집이 얼마나 오래 이 자리를 지켰는지를 연상케 했고, 화로에서 갓 나와 살아 숨 쉬는 것 같은 바게트의 모습을 넋 놓고 바라봤다. 뒷사람이 말을 걸어서야 정신을 차리고 앞으로 움직였다. 바게트에는 Traditionnellel(트라디씨오넬, 전통의란 뜻), Banette(바넷뜨, 바겟뜨의 한 종류) 등 여러 종류가 있는데, 나는 지금도 Traditionnelle이 고소하고 입맛에도 맞아 자주 사 먹는다. 내 차례가 오자 홀린 듯 바게트를 주문했고, 갓 나온 바게트를 받을 수 있었다. 40cm 정도의 길이에 끝이 둥그런 나무 작대기처럼 생긴 뜨거운 바게트를 받자마자 설렘에 허겁지겁 머리 부분을 손으로 잘라한 입 베어 물었다. 겉은 바삭하고 안은 쫀득쫀득 찰진 그 따뜻한 식감과 촉감. 밀가루와 친하지 않았던 내 인생에서 온기가 담긴 그 빵은 색다른 설렘을 선사했다. 난 바게트란 설렘을 품에 안고 곧장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냉장고에서 버터를 꺼내고 향을 내뿜는 커피를 여과지에 담았다. 뜨거운 물을 여과지에 붓고 커피의 차오름을 기다리며 바게트를 잘랐다. 그렇게 아침의 공기가 커피와 고소한 빵의 향기에 젖어듬을 느꼈다.
꺼내놓았던 버터를 바게트의 속살에 바르자 뜨거운 열기에 녹아 촉촉하고 부드럽게 스며들었다. 과도한 버터 섭취는 몸에 안 좋다지만 고소한 맛을 위해 더욱더 버터를 발랐다. 아삭 거리는 둥그런 윗 면과 적당히 딱딱하고 평평한 아래 면, 그리고 버터가 가미된 쫀득쫀득 따듯하게 찰진 바게트 속살. 어느 정도 씹은 뒤 따뜻한 커피를 한 모금 삼켰다. 그리고 그 맛을 조용히 깊게 느꼈다. 아침 바람이 불어오는 방 안에서 나른한 기분과 함께 편안함이 느껴졌다. 온기를 담은 빵 한 입과 커피 한 모금. 그 날 이후, 바게트와 커피를 통해 내 삶은 조금씩 달라졌다. 마치 고삐가 당겨져 서서히 속도를 줄이는 질주하는 경주마같이. 프랑스에선 흔하디 흔한 빵과 커피겠지만,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그 흔함에서 발견한 소중한 순간이었다.
여유의 순간, 문득 고향 한국을 생각났다. 내가 겪은 치열함이 생각났고, 바쁜 삶을 보내고 있을 친구들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학점과 토익에 치이고, 스펙 쌓기에 고통받는 투쟁의 일상. 그곳을 벗어나 지구 반대편의 공간에서 아침을 느끼고 순간의 여유를 만끽하는 내 모습. 두 모습은 내가 치열하게 달려온 그 일상에 대해 하나의 물음을 던지게 해 주었다. ‘무엇이 그렇게 급해서 스스로를 옥죄였을까’. 아침의 고요한 공기 속에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메마르고 척박했던 하루하루의 삶 속에서 여유를 즐길 권리를 잊고 지냈다. 그리고 그 사실이 지금까지 나를 끊임없이 압박하여 구석으로 몰아붙였던 스스로에게 죄책감을 느끼게 했다.
생기를 품은 바게트, 향을 담은 커피의 차오름. 한국에서 느낄 수 없었지만, 나를 온전히 마주할 수 있었던 그 순간은 오롯이 나만의 것이었고 나만이 만들 수 있는 것임을 깨달았다. 이제 나는 어느 곳을 가든 여유의 순간을 만든다. 조용히 나무 아래 산책을 하거나 읽고 싶은 책을 들고 거리를 걷는다. 걷다 마음에 드는 카페나 벤치에 앉아 책을 읽는다. 공원에 잠시 앉아 숨을 들이쉬고 나무를 보거나 편의점에서 즉석으로 고른 음료수를 사들고 벤치에 앉아 노래를 듣는다. 하늘을 바라보고 바람을 느낀다. 이제 나는 나만의 방식대로 여유를 마음껏 느낀다. 그리고 그 여유가 이젠 내 삶의 숨 쉴 틈을 만들어 주는 것을 느낀다.